양반의 사생활-2008년의 책읽기 35
아버지는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문을 하지 않는 아들, 그러면서도 입신을 위해 끊임없이 과거 시험을 보러 다니는 아들은 아버지의 눈으로는 소인배와 닮아 보였다. 아들이 어울리는 친구들, 아들이 도모하는 일 어느 것 하나 좋아보일 때가 없었다. 아버지는 편지를 통해 아들을 가르치려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여러 곳으로 보내는 편지를 먼저 읽었고 그 속에 자신에게 건네는 가르침을 보긴 했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살아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산골에 살면서 책을 읽었고 아들은 번화가에 살면서 벗과 놀았다. 서로 상반된 삶을 마주하며 아버지와 아들은 자기 삶에 더 몰입했다. 아버지는 더욱 더 공부를 했고 공부한 내용대로 삶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책을 봤고 답답한 아버지의 권유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사선이었다. 접합점이 없는 두 인물은 공부의 목적이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사는 방법, 사는 장소까지 상반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버리지 않았고, 읽고 나면 태워버리라는 부탁을 적은 쪽지까지 보관해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아버지는 1700 여 통의 편지를 아들에게 남겼다.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세상 밖으로 전달하고 세상에서 아버지에게 오는 편지를 받아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아들은 우체국이었고, 아버지와 세상 사이의 다리였다.
종이 편지가 거의 사라져 버린 오늘날에 이르러 이 편지들은 다시 우리들에게 발송되었다. 조선 후기 양반의 글자가 아니라 한글로 만든 한 권의 책으로 온 것이다. 이십 여년 전 버려진 듯 상자에 담긴 고서를 발견한 이가 있었다. 저자 하영휘 씨는 이단 문고라는 대기업의 문화 사업의 일원이 되어 고서를 정리하고 분류하다가 이 편지 묶음을 발견하였고 그 편지 속에서 조병덕이라는 몰락양반을 만나게 되었다. 조병덕의 편지는 하영휘 씨에게 와서 해석되기 시작했다. 순한문인 조병덕의 편지는 전공자가 아니면 읽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꼼꼼히 그의 가계를 살피고 그 시대를 함께 연구해가면서 조병덕의 삶을 그려나갔다. 저자 하영휘 씨의 새로운 글쓰기 덕분으로 나는 오래 전 시간을 살았던 아버지의 한 생을 읽고 그와 관련한 인물들의 삶을 어렴풋이 보게 되었다. 인물 뿐만이 아니라 그 시간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지방의 몰락한 양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그때 고민하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고고한 성리학의 이념이 땅으로 내려와 실천되고자 할 때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지를 볼 수 있었다. 또한 편지 속에는 양반이기때문에 겪어야 하는 말못할 고민까지 들어 있었다. 누추하고 때로는 유치하기 까지 한 사람살이, 아들에 대한 잔소리, 며느리에 대한 섭섭함, 제사를 지낼 돈이 부족하거나 밤에 불을 밝힐 초가 부족한 것에 대한 염려, 와야 할 선물이 늦을 때의 초조함도 있었다. 아버지는 평균 6일에 한 번은 편지를 썼고, 끊임없이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배운대로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꺽지 못했다.
이 책의 소중함은, 19세기를 살았던 조선 양반을 통해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다는 데서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더 가치있게 보이는 것은, 공부한 대로 살고자 했던 유학자 조병덕과 그런 아버지가 싫어 그와는 정반대로 살아갔던 아들의 갈등이다. 아들의 답장이 없으니 그 소상한 내막을 알 수는 없다. 아버지의 편지만으로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수많은 일들의 전후맥락을 다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편지는 아버지가 죽는 날까지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잘 읽힌다.
한문장인 편지의 한글 번역이 매끄러운 덕분이다. 또, 조병덕을 둘러싼 역사와 사회 상황을 잘 읽어낸 저자의 학문이 보태져서 조병덕 개인을 넘어 조선시대 양반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겠지만, 배운대로 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우며 강을 역류하며 헤엄치는 것처럼 고달퍼 보인다.
그러나 이 100년 전 인물의 궁색해 보이는 삶은 이 시대를 다시 묻는듯 하다. 배움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배움을 자기 수신으로 여겼던 이에게 그 질문은 일생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이다.
*****종이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
요즘에 종이 편지를 쓰려면 시간과 돈이 걸린다.
이 메일에 익숙해지다보니 손으로 글자를 눌러 쓸 일, 우체국을 찾아가 우표를 사고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는 일이 간편한 이 메일 기능에 덧붙이는 비용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 이메일조차도 받기 어렵다
나 또한 메일을 거의 쓰지 않는다
정해진 곳에서 보내오는 스팸메일과 광고메일을 매일 지우는 게 로그인 후 해야 하는 일이다
이 메일은 휴대폰 문자 메세지 기능이 나오면서 서서히 안 쓰게 되는 문명의 이기인데
바로 이 메일이 종이 편지 쓰기를 지워 나가듯 문자 메세지 힘에 눌려 뒤로 물러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신속하고 값싼 것들이 더디고 비싼 것들을 대체하는 시대다
그런데 그 내용도 껍데기와 비슷해져서 알맹이 없는 것들은 무게도 없다
무엇을 들여야 하는 것, 정성, 시간, 돈, 마음,
그래야 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