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일본학과 2020-

방송대 방방톡톡원고

자몽미소 2020. 12. 1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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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U위클리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그 학교 졸업하면 뭐 할 거냐?” “그 과 나오면 뭐, 일본 책 번역가라도 되는가?” 지인들의 질문에는 보이지 않는 괄호 안에, “그 나이에!”라는 말이 생략돼 있었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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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의 맛

 

그 학교 졸업하면 뭐 할 거냐?”

그 과 나오면 뭐, 일본 책 번역가라도 되는가?”

지인들의 질문에는 보이지 않는 괄호 안에, “그 나이에!”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아예 대놓고 손자 볼 나이에 무슨 공부를 한다고...”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딸이 또 마음에 안 든다는 어투로 나무라기까지 하였다. 모임 알림 전화에 리포트 때문에라고 말하면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입술이 삐죽해지는 것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번 학기에는 리포트가 많긴 했다. 중간고사에서는 4과목을, 기말고사에서는 6과목이 리포트를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여름 끝 무렵부터 겨울 초입까지 리포트를 하다 보니 시간이 다 갔다. 바깥에 나가지 말고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은 정부가 코로나 방지 대책으로 권장하는 일이었지만 친정 가족이나 지인들은 내가 리포트 때문에 바빠서 나가지 못하겠다고 하면 보이지 않는 괄호를 넣어 핀잔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덧붙였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밉상이 되어 버린 것은 ! 공부하는 여자야!”라는 철딱서니 없는 내 태도도 한몫했으리라.

 

철딱서니 없기로는 그것 또한 같은 생물이었다. 그것은 검은 돌담이 둘러쳐진 밀감밭 기슭에서 초겨울의 바람을 맞으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원줄기에서 가까스로 뻗어나가 있던 초록색 줄기 끝에 그 꽃이 있었다. 노란 별 모양의 호박꽃이었다.

밭 돌담 위에는 늙은 호박 하나가 밭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몸속 가득 씨앗을 담뿍 안은 채 몸을 키웠고, 이제는 두꺼운 껍질로 씨앗을 보호하며 밭담 위에 앉아 차가운 날을 견디고 있는 호박은 누렇게 비틀어진 줄기 끝에서 오히려 늠름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막 핀 호박꽃은 겨울의 과일인 귤과 경쟁이라도 하듯 철딱서니 없이 맑은 노랑으로 밭담 위로 고개 내밀어 있었다.

이제 와서 꽃을 본들 무엇을 할 수 있는 건데!’

벌이 오지 않을 테니 열매 맺기 어려울 것이고, 혹여 꽃이 열매가 되더라도 겨울이 가까워진 이때 바깥에서 몸을 키우기란 더욱더 기대할 수 없는 꽃을 보면서, 나는 호박꽃에게 생존의 목적을 묻고 있었다. 내 지인들이 내게 하는 말처럼, 뭐하러 그걸 하느냐고.

 

방송대 나와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없다. 어떤 무엇이 되는 게 목적이라면, 방송대 일본학과를 다니고 있는 나는 이미 꽃피고 열매를 키울 시기를 놓쳐 버린 사람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떤가.

이번 학기에 리포트를 하면서 <일본 근현대사와 중요한 정치가들의 이력, 일본어 작문, 일본 젊은이들의 문화> 등등, 리포트로 나오지 않았다면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모르고 지나갈 것들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맛이란 홀로 만족하는 기쁨이었지만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이 어려워진 시기에 여행자가 되어 이전의 시간과 여기와 다른 공간을 누비며 다녔다. 리포트 제출은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통행금지 시간이 있던 때의 연애처럼 시간이 항상 모자랐다. 그 바람에 과목의 주제에 몰입하였다. 숙제를 업로드할 때는 산 정상에 깃발을 꽂는 등반가처럼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그 작은 마침표들은 은밀한 기쁨이었는지 저절로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서 나는 전보다 더 철이 없어지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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