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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잉걸 15 쌀밥

쌀밥 딸이 쌀 한 포대를 주문해서 보내왔다. 향기가 난다고 수향미라는 이름이 붙은 쌀이었다. 주문을 받은 후에 도정을 해서 보내준다고 한다. 쌀 냄새도 좋았지만 쌀이 익어가면서 집안에 퍼지는 밥 냄새가 푸근하다. 며칠 동안 냄비에도 해 보고 솥에서도 밥을 해 보고 있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할 때와는 다르게, 쌀을 미리 씻어 놓고 불리고 보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불조절도 하다 보면 어느새 재밌는 친구와 노는 듯하다. 밥을 푸고 나서 누룽지도 만들어 보았다. 마른 누룽지로 먹어도 끓인 누룽지로 먹어도 구수한 맛이 돌고 속이 편안해진다. “쌀밥만 있으면 반찬이 없어도 되지 뭐!” 며칠 동안 쌀밥과 깍두기만 먹으며 혼자 지낸 적이 있다. 여고 1학년 동안 자취를 하며 난방도 안 되고, 부엌도 없는 방에서 혼자 ..

글잉걸14: 책과 육아, 내게 좋은 일

책과 육아, 내게 좋은 일 며칠 동안 교정 원고를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어로 번역한 책의 원고입니다. 제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 넣은 글자들이지만 책으로 나올 것이다 보니 독서할 때와 다른 읽기가 필요해요. 어제는 일본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5월까지 일본어 확인을 마치고 책은 7월 말에 간행 예정이라고 합니다. 책이 나오기까지는 저자, 번역자, 편집자의 눈이 여러 차례 원고에 닿을 거예요. 독자에게 책으로 내놓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여러 번 확인을 거쳐서 더는 문제가 안 보였다고 해도 책이 되어 나온 후에 오자와 탈자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번 책은 번역서이다 보니 저로서는 번역한 문장에 자신 없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오늘 다시 책상에 앉았어요. 일에 ..

글잉걸13:모르는 여자의 사랑고백

모르는 여자의 편지 어느 시인의 고백을 들었다. 그녀는 오래 사랑을 앓아왔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남편과 함께 간 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애정 상대가 내 남편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자리가 불편한지 돌아가려 했지만, 오랫동안 교류하던 시인의 말은 끝이 없었고, 나는 가슴이 아픈 그녀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이 내가 아는 여자와 바람이 났는데, 나는 화도 안 나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나도 내 마음도 아니고, 사랑을 잃은 시인이었고, 시인이 겪는 아픔이었다.이야기의 끝에 시인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는 이미 죽었다며 그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는 내가 사는 섬의 정치인이었다. 그랬구나..

글잉걸12:정리정돈, 먼저와 나중

정리정돈- 먼저와 나중 지금 오전 10시 13분이에요. 저는 책상에 앉아서 오늘의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게 몇 가지 있지만, 오늘은 그걸 쓰지 않겠어요.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은, 일단 쓰기 시작하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예요. 제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남짓, 11시 반에는 점심 준비하러 일어날 생각이니까요. 한 시간 동안 저는 오전에 노트북에 글을 쓰기로 한 저와의 약속, 글을 쓴다기보다 글자를 빈 화면 속에 채워 넣기로 한 을 지키기 위해서 책상에 앉았어요. 글을 쓴다 생각하면 너무 많이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글을 못 쓰는 것 같아요. 그러나 글자를 채워 넣더라도 매일의 글쓰기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노트북의 흰 화면..

글잉걸 11:자몽책방의 오전루틴

오전 루틴 책상에 앉는 시간 지키기 TV에서 문제가 많은 부부를 보았다. 남편은 알콜중독자, 사업에 실패하였고 술을 많이 마신다. 남편은 술로 도망가고 잘 씻지도 않는다. 그 남편을 돌보느라 아내는 진이 다 빠져 있는데, 본인은 자기가 힘든 줄을 잘 모른다. 힘들다고 느끼긴 하지만 같이 사는 동생이 자기 보다 힘들고, 알콜중독이 된 남편도 더 힘들 것이라고 여긴다. 본인이 불쌍한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더 불쌍한 사람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부부를 상담한 전문가는 남편의 알콜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에게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남자가 변하더라도 아내는 남편 못지않게 중독 상태인 게 문제였다. 상담 전문가는 여자에게 자신에게 가장 원하는 것..

글잉걸 10:마음회복과 고양이 복복이

글잉걸 7-회복과 복복이 “반대쪽을 봐봐, 너무 돌렸어. 조금 이쪽으로!” “에휴, 대강 해!” “엄마, 머리핀을 빼 봐봐!” 엄마라고 불린 여자가 단발머리에 꽂았던 핀을 빼며 손빗질을 한다. “주름살 그만 찍어!” “아냐,아냐, 엄마 예뻐!” “너도 내 나이 되어 봐, 사진 찍기 싫어!”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줄을 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모녀의 바로 뒤에 서 있다. 내 바로 앞에서 스마트폰을 든 여자는 옆모습만 보이지만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 딸과 마주한 여자와 닮아있는 걸 알겠다. 자그마한 키만이 아니라 얼굴형의 인상 같은 게.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기 전 탑승용 복도에서도 딸은 엄마를 불러세운다. 제주로 타고 갈 비행기를 배경으로 넣고 사진을 찍으려는 모양이다. 엄..

글잉걸 9:피같은 돈, 물같은 돈

누나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아들이 용돈을 보냈다. 며칠 전에는 며느리가 따로 챙겨주었는데 또 보낸 것이라 안 받겠다고 했지만, 받아달라고 한다.  누나랑 백화점 가서 옷 사입으라, 백화점 옷이 좋더라, 엄마는 자기 옷을 못 사니까 이 돈으로 꼭 엄마 봄 외투를 사 입어라, 아기낳고 정신없이 지내느라 정작 엄마를 챙기지 못하고 있더라, 엄마가 돈을 받아주면 미안한 마음이 덜어지겠다. 아들의 메세지를 읽고 안 받겠다던 말을 뒤집고, 고맙다 잘 쓸게, 로 대답했다. 내 통장에 또 돈이 쌓인다.아들이, 며느리가, 딸이, 사위가 주는 용돈을 받을  나이가 아니야, 라면서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주는 건 작고 받는 건 언제나 미안하다. 자식의 돈에는 이 돈을 벌기 위..

사회학책 읽기모임 시작

당산서원 글방 시작 방법: 읽고, 쓰고, 말하고 토론 한 달에 한 번, 세번째 토요일 도움주실 분 : sungyoon_cho 장소 : 당산서원 날짜와 책 2024년 5월 18일 1회: 핀란드역으로 2024년 6월 15일 2회: 독일이데올로기 2024년 7월 20일 3회: 프랑스혁명사 3부작 4회 이후 추후 책 목록 결정굥부책을 다시 잘 읽어보아야겠다. 시즌 1을 잘 마쳐보자. 읽고 설명하기 읽은 내용 메모하기 읽은 내용 토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