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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木の歳時記・ 神無月(2)翻訳

森鴎外が亡くなったのは100年前の1922(大正11)年7月。その3ヶ月後の10月には日本で初めて「ファーブル昆虫記」(第1巻)が発刊されました。フランス語の原著『昆虫学的回想録』から翻訳したのはアナキスト(無政府主義者)の大杉栄です。1919(大正8)年、豊多摩刑務所に収監されていた大杉は『昆虫学的回想録』の英語抄録版を読み、原著からの翻訳を決意。ちなみに大杉には「一犯一語」という有名な言葉があり、投獄される度に一つの言語を習得したといいます。大杉が没したのは、昆虫記出版の翌1923(大正12)年9月。憲兵大尉・甘粕正彦の手にかかり、伊藤野枝(のえ)と共に絞殺(こうさつ)されます。世に言う「甘粕事件」です。享年38歳。その後も存命なら自ら昆虫記の続刊も翻訳したことでしょう。本学の中央図書館には復刻版の大杉栄訳「ファーブル昆虫記」(明石書店)が収蔵されています。 丹木の歳時記2022 ..

삼각숄 코바늘 뜨개

아주 간단하게 삼각형으로, 두코 긴뜨기로 쭉쭉 이어나가는 식으로 만들었다. 하치오지에서 친구들과 같이 갔던 유자와 수예점에서 구입한 실이다. 도안이 있는 것은 들고다니며 뜨기 어려울 것 같아 이 모양으로 떴다. 그래서 여행지를 오고 갈 때, 일하러 갈 때 전차나 기차에서도 실을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공항에서도 떴다.부지런히 뜬 게 아니라 뭔가 손이 허전할 때 삼각형을 키웠다. 그라이데이션이 된 실이 8개 들이였나 10개 들이였나 아니면 6개 들이 한 봉지였나, 하여간 그 실을 다 이 숄에 쓰겠다고 생각했다가 오늘 실 하나를 남기고 마무리를 했다. 시작만 해놓고 끝마치지 못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에 약간 초조해진 것 같다. 뭔가라도 끝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 아침에 끝단의 실..

책이 책을 부른다

아니 에르노가 2022년 노벨문학상 작가가 되었다. 10여 년 전에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고 읽어왔다. 지난 여름에 작가의 책을 함께 읽은 이가 아니 에르노 삶을 지식자본과 계급이동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고 하며 란 책을 소개해주었다. 며칠 동안 독일 작가가 쓴 를 읽었다. 읽다보니 피에르 브르디외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르디외의 에 관한 개념은 몇 년 전, 문화인류학 논문을 읽으며 접한 적이 있다. 읽어봐야지 했지만 이사와서 책정리를 한 후에도 두꺼운 책에 얼른 손이 가지 않아서 책 제목만 읽고 있었다. 올해 읽을 책으로 책장에 꽃혀진 브르디외의 책 제목을 촤르륵 훑어보았다. 괜찮은 계획이다. 2022년이 석 달 남았다.

불면증이 사라졌다.

*불면증이 사라졌다. 꽤 오래 밤에 잘 자지 못했다. 잠들기 어렵고 새벽 두 세시에 깨어 더 자지 못하였다. 푹 잔다든가 상쾌한 아침이라든가.... 이런 표현은 아주 오래전 청소년 시절의 옛일이 되었다. 갱년기 증상이라 하니 나이들어가면서 쭉 이렇게 살겠구나 아예 꿀잠을 포기하고 있었다. 가끔 수면 보조제를 먹기도 해보았는데 광고만큼 잘 자게 되지 않았다. 지난 한 달 일본에서 지내면서 몸이 차츰차츰 달라졌다. 가지고 갔던 영양보조제도 잊어버리고 잘 먹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잠의 농도가 짙어져서 꿈하나 기억나지 않고 산뜻한 아침이 되곤 했다. 밤에 두어 번은 깨던 내가 한 번도 깨지 않고 일어난 날은 하루가 춤을 추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제주에 돌아온 이후 며칠동안도 잠이 달고 아침이 가벼워져..

丹木の歳時記 10/3 翻訳

2022年10月03日 丹木の歳時記2022 神無月(一) 創大Days編集部 출처https://www.soka.ac.jp/_tag/2022/10/7609/ 丹木の歳時記 金木犀(キンモクセイ)の香りに見送られて韓国の大学関係者が帰国の途に就きました。先月から約一ヶ月の滞在期間中、秋のキャンパスを満喫されたようでした。かの大学と本学が学術交流協定を結んだのは20年以上前のこと。それを機に初来学された折はほぼ日本語が話せず、通訳を介しての対面となりました。以来、訪日を重ねる中で日本語を学び、今では日常生活に支障がないまでに。本年初頭、軽くはない病に罹患された夫人の病状が回復し、夫妻で来日されたことは望外の喜びでした。お二人の離日を惜しむかのように韓国の国花ムグンファ(和名ムクゲ)が咲いています。長(ちょう)じてからも真(しん)の友を得ることはできる。そのことを教えてくれた大切な..

반복해서 꾸는 꿈

고3 시절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그때 방을 빌려주었던 성안할머니가 방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방을 비운 몇 년 사이에 가구와 살림이 많아지고 넓어진 방이었다. 실제로 살던 광양의 자취방은 할머니의 집이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살고 있었고 방에서 지내려면 허락을 얻어야 했다. 칸막이 문 너머에 할아버지가 계신지 아닌지 궁금했다. 머리속 어느 한편에는 돌아가신 걸 아는 내 기억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할머니 돌아가시고는 만나지 않았던 이모가 내가 그 방에 왔다는 걸 알고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나기 싫은 마음이 또 남아 있는 탓에 이모를 만나게 되리라는 건 바라는 게 아니라 염려였다. 어머니가 방값을 내어줄까,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사이에 이사를 마칠 수 있을까도 걱정하는 동안 꿈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