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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워크샵

자몽미소 2023. 4. 30. 21:17

시의 기분

새벽 머리맡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검은 돌은 검은 돌
구두점은 구두점
검은 돌은 말이 없고
구두점은 기다린다

안개빛으로 뿌연 잠의 길에서
눈이 떠지지 않았다  
팔을 뻗어 보았으나 잡히지 않았다
잠결을 헤치며 속삭이는 소리
말이 없는 검은 돌, 기다리는 구두점
구두점은 기다리고 검은 돌은 말이 없다

잃어버려 찾을 수 없게 된 이름을 오래도록 기다린 적이 있다
베개를 적시는 울음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썩어
기다림은 낮 동안에도 검은 칠로 지워져 갔다.
말이 없는 것을 기다리는 고단함
찾을 수 없는 것을 기다리는 공포를 기억한다

그러니 찾기를 멈추고자 눈을 힘껏 감을 때
핏줄처럼 떠오르는 붉은 실의 저녁
저녁 마당에서 불던 바람이 잠의 안개를 벗겼다
구두점이 검은 돌을 업고 내 머리맡에 와 있었다

붉은 실을 쥔 구두점은 시작의 호르라기를 불었다
구두점은 서로의 존재에 묶여 있었다.
구두점 사이에는 괄호와 자유와 텅빔과 머뭇거림이 있었다
춤을 추지 못하는 구두점은 팔을 든 채 울었다
다리를 다친 구두점은 뒤집혀 발버둥쳤다
신발을 잃어버린 구두점은 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방향을 모르는 구두점은 등을 웅크렸다
자기 발을 쪼며 엎드린 구두점 옆으로 게걸음을 하는 구두점이 다가왔다
게걸음만 걷고 싶은 구두점은 자유를 사랑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고개를 떨군 구두점은 빗물 웅덩이에 발을 적셨다.
붉은 줄이 구두점에게 소리쳤다
우리 모두 서로 바짝 안아 주어야 해
가슴이 벅차오른 구두점들이 우산도 없이 비오는 길로 나섰다
붉은 줄을 포승이라고 생각한 할머니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차를 몰고 나가려던 사내가 미친 여자들이라고 비웃었다
구두점들의 발소리가 규칙을 찾자 붉은 줄은 당기고
구두점은 환호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어제 저녁 비오는 마을을 달리던 구두점 하나가
검은 돌을 업고 왔다
엎드려 울며 뒤통수만 보이는
검은 돌을 업고 왔다
고단한 검은 돌을 껴안으며 눈물 글썽이는 붉은 실
시작이며 마침표가 되고 싶은 구두점 사이에서
서로 보고 듣고 만지는 詩의 氣分

2023년 4월 30일 오전 06시 30분
김미정 쓰다. 시의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