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愛라니, 내가 나를 친애하고 있는지 제목을 적다가 놀란다.
친애하는 나에게, 라고 한 것은 지금 잡은 책의 제목이 <친애하는 미스터 최>이기 때문이고, 나를 친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아니, 나는 그걸 잘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목으로 쓰면서 앞으로 나와는 사랑하고 친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다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다시 꺼낸 건, 며칠 동안 사노요코의 다른 책을 읽었고 그 책을 책장에 꽂으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책을 읽고 그 책을 제자리에 꽂으면서 옆의 책을 슬쩍 들여다보기, 그러고는 읽은 지 한참이나 되었구나,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호기심이 들 때 나는 비로소 독서욕이 대단한 사람처럼 책을 꺼내들고 읽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책의 가장 앞장에는 2년 전이나, 5년 전이거나, 또는 15년 전에 읽었다는 메모가 적혀 있긴 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이 책을 도대체 뭘 읽었다는 거야? 하는 식으로 항의하는 목소리도 들리기 때문에, 꺼낸다. 읽어보겠다.
<친애하는 미스터 최>는 나의 아름다운 작가선생님이 선물해 준 것이다. 내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가끔씩 선물해 준 책이 꽤 있었다. 거의 항상 작가님의 예상대로 나는 읽어보고 그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늘 내 손에 들린 이 책 <친애하는 미스터 최>도 읽고 좋았다. 책 앞의 메모에는 <통쾌했다>는 감상이 적혀 있었다.
어제 읽은 책은 사노요코가 40대 무렵 <책의 잡지>에 연재했던 것을 묶은 것이었다. 작가는 수중에 돈이 없다거나, 일을 하는 데도 늘 경제에 쪼들린다거나, 사춘기 아들이 엄마를 놀리는 일 같은 것도 적어 놓았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나는 40대의 사노요코가 처한 여러가지 곤란함이 막 이해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돌파해 나가는 글의 재미 때문에 사노 요코의 가난한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어느 글에는 유방암이 발견되었다고 했고,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울증이라고도 적혀 있었다.
오늘 내가 사노요코의 글을 실은 <친애하는 미스터 최>를 다시 읽어보려는 것은 어느 글에서 평생 이불이 자신에게 가장 친절했다는 마음으로 산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공저 합쳐 170권이 넘는 책을 이 세상에 내 보낸 사람,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지금도 살아있을 수 있는 작가의 슬픔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결에 묻어 평생 떨어질 줄 몰랐던 생의 우울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제 CHO의 상태를 의사에게 듣고나서 몹시 힘들었다. 한마음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할 때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으나 그 큰 병원에서 의사가 <너무 복잡해요! 힘들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하며 영상을 보여 주었을 때는 절벽에 매달려 붙잡고 있던 끈 하나를, 이전 병원의 씨티 판독이 오진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끈 하나를 딱 끊긴 느낌이었다. 나는 요행을 기도하고 바랐던 것이다.
남편의 몸과 병원에서 진행될 앞으로의 일들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잠을 자지 못했고, 숨을 잘 쉬지 못했다. 어제 아침 의사인 지인에게 카톡을 했더니 와 보라고 했다. CHO도 함께, 영양제와 링겔을 맞고 왔다. 나는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낮 동안에도 편안해지지 않았다. 잠을 자면 날선 것들이 꺽이며 편안해질 것 같았지만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핏줄들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다니던 한의원에 예약 없이 바로 갔다. 저녁 마무리 시간이었지만 사정을 해서 의사를 만났다. 침을 맞고 약을 받아왔다. 날숨을 많이 쉬고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2021년에 내게 암일지도 모르겠다는 진단이 나왔을 때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CHO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하기 때문이다. 의사 말대로 양쪽 신장을 다 제거하고 투석을 하며 사는 앞으로의 삶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 상상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담담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전에 신경안정제를 한 알 먹었고, 10시 반 무렵부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7시가 거의 다 되어 일어났다. 어제까지는 목으로 무얼 넘기는 것도 어렵고 맛도 모르겠으나 오늘은 CHO가 일어나기 전에 감자를 굽고 수박 쥬스를 만들었다.
생태숲에 가서 그늘에서만 걷다 왔다. 오후에는 산지천갤러리에서 CHO의 강연이 있으므로, 강의 준비한다고 올라갔고 나는 내 책방에서 <친애하는 미스터 최>를 꺼내서 오늘은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친애하기 위해서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낸 이 편지를 나는 편지를 언제 다시 읽게 될까. 그리고 당신은 이 편지를 읽어주시겠습니까? 편지를 읽어주는 나와 당신을 생각하면서 나는 앞으로 편지를 쓸 것 같습니다. 이곳에.
2024년 8월 31일, 나와 친해지려는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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