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서원 출판사 堂山書院/편지, 나에게 또는 당신에게

숨이 막히네

자몽미소 2024. 9. 1. 10:47

내게 있어 '기가 막히다'는 말은 상대의 언행이 상식에 어긋나거나 무례함이 정도를 지나칠 때, 어이가 없다는 말 대신 쓰는 말이었다. CHO의 상태를 진단 받은 날 부터, 나는 다시 기가 막힌 느낌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이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숨이 막히는 것 같이 괴로운 상태가 되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남편의 몸에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 의사의 치료를 따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두지만 곧 안에서는 신경들이 폭발하는 것처럼 숨통을 조여왔다.
목요일 오후에 진찰을 받고, 일요일에는 입원하기로 수속을 밟아 두었다.
금요일 아침에는 전날 밤에 하나도 못 잔 것에다가 내 몸 안에서 성게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 온 신경세포를 돌아다니는 것 같이 날카로워진 느낌으로, 이걸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봉개의원에서 링겔을 맞았다. 곧 안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낮 동안은 밤보다는 숨을 쉴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남편과 함께 영양제가 들어간 링겔을 맞았다. 병원을 나오니 11시 반이 되었고 남편은 배가 고프다고 병원 건물 1층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가자고 하였다. 집에 가서 밥을 할 기력이 없었으므로, 식당에 따라 들어가기는 했으나, 내가 전혀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 상태.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토할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은 집에 있던 밑반찬과 국으로 먹었다. 나는 잘 먹을 수 없었다. 지금 남편이 중환자인데, 내가 환자노릇을 하고 있었다. 잠을 10분 만이라도 잘 수 있으면 꼭대기까지 올라가 폭발할 것 같은 몸 안의 무언가 (이런 걸 신경이라고 하겠지)를 누그러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눈을 붙여봐도 피곤하고 몹시 뾰족해진 신경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든 때가 있었다. 쇼파에서 잠이 깜빡 들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 받기 힘든 곳이긴 하지만, 그걸 알아도 가서 사정을 해 보기로 하고 다니고 있는 한의원에 갔다. 저녁 6시 무렵이라 손님이 거의 빠진 때였다. 다행히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가슴 부근을 짚는데 아팠다. 내가 놀라서 그런 것이라 한다. 이미 부신을 수술했던 몸이라 밖에서 태연한 척 해도 몸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간편한 한약재를 받아왔다.
 
저녁에는 양의에서 받은 신경안정제를 한 알 먹고 잤다. 꽤 자고 일어났더니 살 것 같았다. 숨을 쉬고 있었다.
긴장하기 쉬운 몸이라, 긴장을 하는 게 몸에 나쁘다는 것을 잘 알므로 긴장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생각을 특히 걱정으로 가버리지 않도록.
 
오늘도 어젯밤 먹고 잔 신경 안정제의 도움 덕분일까. 7시 무렵에 일어났다. 그래도 가끔씩 숨이 콱 막히는 때가 있다. 가슴을 펴는 동작을 하고 창문을 열고 공기를 함뿍 들이마신다. 내뱉는 숨도 길게  해 본다.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 아들이 왔다. 서귀포에서 왔다.  아침에 방을 쓸면서 생각했는데, 저 아들이 없었으면 나는 이런 시간에 어떻게 될까, 잠시 그런 생각들로 빗자루를 잡았고 방을 쓰는 동안 아들이 고마웠다. 아들이 고마워하는 내 마음을 한라산 너머에서 느꼈나. 올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했는데도 아들의 마음은 이곳으로 달려오게 되었나보다.
 
참, 중요한 일을 하나 적어두어야겠다.
이준이 이빨이 돋았다. 아랫니. 사진으로봐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게 돋았다.
이준이를 보고 웃었다. 웃으면 아픈 걸 잊는다.
 
 2024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