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서원 출판사 堂山書院/편지, 나에게 또는 당신에게

담장을 넘는 마음에 관해

자몽미소 2024. 9. 5. 10:07

수박을 사려했지만 동네 마트에서 보이지 않는다.
수박은 1통을  가르면 두 번으로 나누어 즙을 짜서 쥬스로 먹고 있다(남편에게 마시게 하고 있다). 수박이 신장에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신장 수술 후 수박을 리어카 하나 분량이나 먹었다는  이야기는 30년 전에 흘려 들은 것이다. 그래도 하루의 수분보충을 물로만 마시는 것보다 낫지 싶고 한의원에서도 과일 중에는 수박이 cho에게 맞는 음식이라 해서  남편이 먹을 음식으로 수박, 배, 메론 등을 챙기고 있었다.
남편이 아프기 전에는 수박을 잘 사지 않았다. 수박을 먹고 내가 체한 경험이 있어서 먹고 싶은 과일은 아니었다. 올해는 마트에서 수박을 봐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가격이 올라 비싸기도 했고. 몇 번  사온 수박도 내가 먹지 않으니 썰어둔 것은 냉장고에서 얼어버릴 때도 있었다. 남편은 혼자서 심심하게 수박을 먹었다.
수박을 괄시하던 나는 남편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배뇨곤란에 고생하고 나서야 수박을 귀하게 여기며 부랴부랴 챙기고 있는 것이다.  동네 마트에서  수박을 구하지 못했다고 동생에게 연락했더니 동생이 다니는 마트에서 수박 두 통을 사왔다.
이틀 동안  수박 한 통을 쥬스로 해서 나도 마셨고 남편에게도 마시게 하고 있다. 1회 소변량이 좀더 좋아지는 것 같다.

집에 온 동생이 수박과 함께 <오성의 무화과> 라며 건네는 걸, 나는 얼른 보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했다. 이웃집 무화과의 가지가 담을 넘어오더니 열매가 열리고 동생네 마당에서 익어가고  있어서 가끔은 하나 둘 따 먹고 있다고 한다. 담장을 넘은 것은 누구의 것이냐! 동생 집  담을 넘어온 이웃집의 무화과는 누구의 것이냐.
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소유권 문제를 지혜롭게 풀었다는, 옛날 이야기  오성과 한음, 담 하나를 두고 먹을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꽤나 복잡한 마음이 되는 것 같다.
무화과의 껍질을 벗겨 먹으며, 동생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자기네는 껍질째 먹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껍질째 먹었는데 괜찮았다. 이웃집에서 심었지만 동생네 마당으로 넘어와 익은 무화과를 먹으며 나는 오래전 우리집  초가 뒷곁에 있던 앵두나무가 생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집 서쪽집 아이들( 이라지만 친척이기도 한) 이  담장의 돌틈으로 앵두를 따 먹는  걸 보기가 싫다면서 별로 키가 크지 않은 앵두나무를 잘라 버렸다. 그래서 나도 어린 시절 몇 번은 행복하게 앵두를 따던 뒷곁의 풍경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앵두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가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중  한 사람이 그랬을텐데,   앵두나무의 키가 아주 크지 않은 걸 보면 아버지의 형제였을 수도 있을 앵두나무.

잘려버리고 나자 내 동생들은 그곳에 작고 단 앵두열매를 따 먹을 기회마저 갖지 못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인 것 같으니 동생들은 앵두나무가 거기에 있었는지조차도 모른다. 동생들은 너무 어리고, 아직 막내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다.
포악한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나는 고향집을 생각할 때, 앵두나무 아래서 동생들과 앵두를 따며 서로 입에 넣어주거나, 소쿠리에 담아와서 어린 동생의 입에 넣어주는 그림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옆집의 옥란이 언니, 양자와 함께 돌담을 가운데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앵두를 땄을 수도 있어서 앵두나무가 크는 동안 이웃과 더 다정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옆집의 옥란언니네는 조금은 우리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그랬는지 몰래 앵두를 따려고 했던 것 같다. 삼춘! 이라고 부르면서도 앵두를 먹고 싶다고 말도 못하고 따는 건 도저히 드러내놓고는 못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팔을 돌담 사이로 넣어 붉어진 열매를 땄을 것인데, 그걸 알고 나자 도둑이나 본 듯이 그 꼴을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당장 앵두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 성격으로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살아왔던 것이고 내 것을 누가 가져가는 것에는 당연히 분노만 하는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앵두 몇 알이 뭐라고 그래야만 했을지 아버지의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제 내가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나며 아버지를 봐 왔으니까  비로소 이해가 간다. 아버지는 한결같이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굳센 힘이 되어 매우 건강한 몸으로 나이들어가는 늙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