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12일
11시 반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정밀검사한 내용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할지, 수술일자는 언제가 될지를 듣게 된다.
어젯밤에는 비가 왔지만 우산을 쓰고 학교 운동장까지 다녀왔다. 비가 와서 저녁운동은 못하겠구나 하다가 나가 보았는데 바람이 잦아들어서 우산을 쓰고 걸을만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서 운동장까지 가보기로 했다. 방과후에 보충수업을 들었을 학생들이 하교 버스를 타려고 주차장쪽으로 몰려 내려왔다. 우산이 없는 아이가 우산 있는 애에게 합류하여 네 명이나 한 우산 속에 엉겨 걷기도 하고, 비를 맞으면서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왁지지껄 명랑하고, 큰소리로 깔깔 웃으며 비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소녀들은 지금 열아홉이겠다. 나도 지나온 나이 열아홉,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초가을, 나에게도 저 시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나이 열아홉.
아이들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를 떠났고, 남편과 나,
우리둘만 남아 있는 학교의 젖은 운동장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제목을 발맞추어 불렀다. 시원한 공기 속에 목소리를 내서 그런지 가슴이 시원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노래를 불렀다.
밤에는 안정제를 먹고 잤고, 지금도 한 알을 먹었다.
● 어머니가 전화를 자주 해 온다. 그리고 마늘 이야기를 하고, 신장이 아팠던 동네 청년 이야기를 한다. 이 집에 이사를 할 때 성주풀이를 하지 않은 탓도 한다. 내가 아팠고 또 지금 남편이 아프게 된 게 그 탓이라 한다. 어머니 말을 하나도 안 듣는다고 화도 냈다가, 아픈 부위에 파스를 붙여보라고도 한다. 어제 전화에서 한 이야기를 오늘도 똑같이 한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다. 치과 치료 중이라 입안이 헐어 그렇다고 했다. 발음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늘 나보다 어른인 존재였지만, 거리를 두고 보는 다른 사람 눈에는 동네 할머니, 배운 것 없지만 평생 흙을 파며 살아 쭈굴쭈굴한 얼굴에 허리가 굽은 노인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내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 있는데 내 머릿속에는 젊었고 참을성 많은 어머니가 더 크게 있다. 나는 어머니의 늙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늙어서도 약해져서도, 말이 어눌해져서도 안 된다고 고집한다. 전화기 너머의 어머니는 수많은 세월 동안 어머니의 의무를 강요받았다. 나에게, 자식들에게.
이준이 이야기 할 때만 잠깐 밝아져서 아기가 토실토실 하게 젖을 잘 먹이고 잘 키웠다며 웃는 목소리였다. 지난 주말에 아들이 아기를 데리고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이준을 처음보고 좋았던 것 같다. 지훈이 할머니가 아기를 참 잘 봐주시더라 했다. 엄마랑 비슷해! 그런 말도 했다.
"그렇지. 너 어릴 때도 할머니가 너를 그렇게 봐줬고, 나도 애기 일 때는 이준이를 안는 그 표정으로 안아주었을 거야. 그리고, 할머니는 애기 업개로 열살무렵부터 부산 이모집에 보내져서 아기도 보고 식모일도 했던 것 같아. "
그 말은 아들에게 하지 않았다.
어제 낮에는 우리 아버지와 살아내느라 애쓰는 이 어머니가 불쌍해져서 울었다. 내 아버지와 사는 것 이외의 다른 삶을 생각할 수가 없던 여자. 젊은 날 한 두 번은 리어카에 짐을 싣고 못 살겠다 떠나보기도 했고, 한 살이던 막내 동생만 업고 자는 우리들은 둔 채 밤중에 떠나 보려고도 했지만, 갈 곳이 없던 이 여성은, 나의 어머니로 60년을 살았다. 나는 아기를 들쳐업고 집을 나가려는 어머니를 자는 척 하면서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살아갈 날들이 아득해져서 울지도 못했다. 잠을 자는 척 하면서 옆마을 교회의 하느님께 빌었다. 어머니가 떠나지 않게만 해주시면 하느님의 착한 자녀로 영원히 착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기도했다..차마 일어나 나도 데려가! 우는 아이는 될 수 없었다. 열 살의 나는 그때 그 기도 때문에 어머니를 잃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나 이제 나는 근 이년 동안 어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처사에 맘이 상해버린 자식들은 아버지가 싫다는 이유로 어머니조차 만나러 가지도 않는다. 간혹은 어머니의 전화를 거부하면서, 부모에게 실망한 마음을 표시한다.
자식도 대하기 어렵고, 남편은 평생 힘들어 이젠 그 무게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한 여자가 밭에 홀로 앉아 평생하던 대로 흙을 만진다. 지나가는 바람이 그녀의 고인 눈물을 말린다. 한평생이 서럽고 외로워진 사람.
그의 젊은 날과 오늘까지의 삶을 기억하다가 나의 어머니로도 한 여자로도 너무 가엾어져서 눈물이 났다.
어제 오후에는 비가 왔으므로 나는 잠깐만 울고 비가 내리는 밖을 바라보며 개인 날을 생각했다.
오늘은 화창하게 개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의사를 만나러 간다. 1시간 후에 나는 그 방에서 온 힘을 다해 의사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아침밥은 채소카레.
남아있던 카레에 토마토즙을 넣어 데웠다. 마늘과 콩을 익혀서 얹었다.
■사과와 복숭아 키위 한 개씩.
■진단: 양쪽 다 암으로 판정. 항암치료 2달 예정.
콩팥 양쪽 다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난 이것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는 암이 아니라 양성종양일 뿐이라고 이야기 해주길 바랐었지만, 그 소망대로는 되지 않았다.
오늘 바로 신장 절제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 날짜를 받을 것도 생각했었다. 그러면 신장 완전 절개와 투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이것만은 아니길 바랐었다. 그 소망은 조금 들어주셨다.
항암을 하고 나서 상태를 본 다음으로 결정의 날이 연기되었다. 두 달 동안 항암을 하는 사이에 환자의 몸은 독으로 무장한 항암제로 힘들겠지만 부디 잘 이겨내서 암세포수가 줄고 암덩어리가 작아져서 절제 외의 다른 방법을 쓸 수 있기를, 지금은 그것을 소망한다.
■ 혈압과 혈당검사
집에서 최고혈압이 130대이거나 120 대도 있었는데 입원실에서 잰 혈압은 최고혈압니 160을 넘는다. 혈당치를 쟀는데 176이 나왔다. 140 을 경계선으로 하는 당뇨경계선.
나는 병실 의자에 앉아 이것을 쓴다.
남편은 책을 읽고 있다. 퇴직후에는 편안히 앉아 소설책을 읽고 싶다더니, 지금 읽는 책은 조지오웰의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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