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 여자(외국문학 5)
책을 읽고 내 생각
+이 책에 이르러, 김화영 교수와 레몽장의 대담을 읽은 후에야 "누보로망" 이라는 말이 별 말 아닌 걸 확실히 알았다. 그 전에는 분명 "누보 로망" 어쩌고 한 평론을 읽으며 내 무식을 슬퍼하고 주눅들었을 것이다.
<누보 로망>은 <새로운 소설> 이라는 프랑스 말이다. 우리나라말로 하면 신소설이다. 춘향전,홍길동전 같은 우리 나라 고대 소설에서 발전한 한 것이 이인직의 "혈의 누" 같은 소설이었는데, 앞 시대의 소설 형식과 구별된다고 새로운 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게 신소설이었다.
<누보 로망>도 1950년대 말 프랑스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설적 실험을 하면서 만들어낸 말이다. <누보>는 일종의 형용사였던 셈이다. <누보 로망>이 등장할 무렵 도처에서 이 용어는 차용되고 유행이 되었다. <누벨 크리티크-신비평>, <누벨 바그-신파영화>, <누보 데아트르-신연극>, <누벨 필로조피-신철학> 이란 말들이 그렇다.
이 책을 쓴 레몽 장에 따르면 <누보 로망>이 등장할 당시 <누보>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누보 로망>이 지녔던 야심은 정말 중요한 작품을 생산하는 쪽보다는 19 세기에서 물려받은 전통적인 소설, 즉 발자크에서 에밀 졸라에 이르는 소설적 모델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성격을 띤 것이었다. 문학 자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반사하는 가운데 독창적인 작품들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85년에는 <누보 로망> 중에서도 그리 잘 읽혀지지 않는 편이었던 클로드 시몽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레몽 장이 소개한 <누보 로망> 계열의 소설은 찾아 읽고 싶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절판 되었든지 아예 번역이 되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그가 소개하 는 작가 중에서 르 클레지오 와 마그리티 뒤라스를 읽어 보기로 하였다. 르 클레지오의 책 중 가장 최근의 것은 < 황금을 찾는 사람>이라는데 (이 책이 나올 때 소개한 것이니 벌써 20년도 더 된 신작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나 디테일에 대한 관심, 문체에 대한 반성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드러나 보인다는 면에서 <누보 로망>적 탐구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져 봤지만 번역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집에 그의 책 <아프리카인>이 있어서 어제부터 읽고 있다. 마그리티 뒤라스는 우리 나라에 <연인> 이라는 소설의 작가로 알려졌는데 영화를 충격적으로 봤던 기억이 나서 주문을 해 두었다.
현대의 프랑스 문학이 맥이 끊긴 것은 아닐터인데 우리 나라의 출판사정은 여의치 못한 것을 책을 찾아보면서 느꼈다. 요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유럽을 등한시 하고 있기에 어쩌면 영어로 번역된 프랑스 문학을 재번역해서 들여 오는 것을 읽어야 할 날도 올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게 된다.
<책 읽어주는여자>를 읽으며 나는 이 소설이 만들어내는 문학성 보다는 이 책의 독자로서의 나를 기억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 책을 읽은 때가 1998년이었고, 그때 어떻게 해서 이 책이 손에 왔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데 제목< 책 읽어주는 여자> 라는 게 묘한 호기심을 일으켜, 나도 이런 일을 해 보면 어떨까를 상상했었던 건 기억난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 그 장난같은 호기심 때문에 기껏 바로잡고 있던 내 삶이 한 끝 차이로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다. 주인공이 처했던 어려움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간 주인공은 결국 그 일을 못하게 되고 말았으니 제목처럼 멋진 여자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아니라 책 읽는 여자로 만족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을 터.
그러다 세월 흘러 다시 이 책을 보고 무직인 내가 아르바이트로 이걸 해 보면 (주인공처럼) 어떨까 상상을 해보자마자, 나는 이미 부적격자가 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내 목소리가 이제 점점 까마귀 소리로 굵어지고 탁해져 버렸기 때문에, 독서시장에 내 놓았다가 제품 출시도 못해보고 거부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줌마 그 목소리로 어디 책을 읽겠다고 나서요 나서길! 이런 욕이 미리 들린다. 내 자산 평가는 이러한데, 남편은 말도 말라고 반대를 했다. 어떤 놈이 글을 듣겠냐고, 뻔하지 뻔해. 책 읽어주는 여자를 부른 남자 고객은 뻔할 뻔자라니, 소설 안 읽은 남편이 이 소설 속 어떤 남자를 알고 있다.
책 재밌다.
주인공 여자 보다 그 옆의 남자들 (교수,남편, 고객들, 형사, 판사)가 재밌다.
그렇다고 이 남자들이 프랑스적인 느낌이거나 새로운 남성상이라거나 하는 틀이 보이진 않는다. 글쓰기 방식이 좀 색다르고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내 세계와는 다른 가락이라서 재밌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발자크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읽어오던 영미계 소설과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다. 혹시 프랑스 영화를 보고 미국영화와 다르네 할 때의 그 다름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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