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옮겨 온 글- 그믐달/ 나도향

자몽미소 2013. 10. 13. 10:06

 


  

그믐달

 

나도향

 

나는 그믐날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날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도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 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조선문단>(1925)

 

 


 

---자료출처: 동우님의 리딩북   http://blog.daum.net/hun0207/13291589

첫사랑에 반한다고 할 때처럼, 이 글을 읽었던 열아홉 무렵, 이 글에 반했다. 한동안은  앞의 몇 문장을 통째로 외기도 했다

이 짧고 아름다운 글은, 창작과 비평사에서 묶은  무슨무슨 전집에 있었다. 월부책으로 샀던 그 책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몇 달 후에 회수해 가버려 다시 그믐달을 읽지 못하고 지냈다. 달을 볼 때마다 특히 보름달에서 반달로, 반달에서 조금씩 여위에 가는 달을 볼 때마다, 이 글이 생각나곤 했지만 일부러 찾지는 못했다.

내 블로그 친구인 동우님께서 부지런히 리딩북을 올려 주시고 계시어, 이 글을 얻을 수 있었다. 내 방에 두고자 가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