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파크 라이프/은행나무

자몽미소 2020. 1. 30. 09:52

 

2020.1.29,읽음.

  책을 앞에 두고, 책 속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 일이 빈번해졌다. 분명히 읽은 책인데도 제목만 눈에 익고 왜 저 제목인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해졌다. 읽지 않은 책도 읽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읽은 책이나 안 읽은 책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말로 할 수 없게 되어 내 독서는 몽롱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나의 이 몽롱함이란 책을 공들여 읽지 못하고 있거나 읽은 후에 공들여 생각해두지 않는 게으름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다. 나이들어가면서 이렇게 되었다고, 자기변명을 해보지만 나이탓은 아니고 사유의 부족 때문이다. 조금씩 귀찮은 것이 많아지고 생각하기 싫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몽롱함이다.

  그래서 내 독서는 몇 년 사이에 읽으나마나 하게 되고 말았지만, 새로운 책은 끊임없이 내게 오고 나는 또 그것들에 반응한다. 어서 빨리 읽고 싶어서 주문을 하는 것이다. 이 책도 그랬다. 이 작가의 소개를 어디선가 읽었고, 여러 권의 책 중에서 두 권을 주문했다. 어제 동네책방에서 주문했던 책을 가져왔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책을 읽으려했는지, 이 책으로 이끈 것이 어느 책, 누구의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만약에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주문을 하지 않았다면, 이 책, 이 작가는 나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었다.

  내 머리 속의 단면을 잘라 본다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희미한 선들이 엉클어지고, 앞과 뒤를 구분할 수 없이 안개에 쌓인 산길처럼 당혹스러울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보고 있단 말인가.


  공원생활( 파크 라이프)의 주인공은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의 몽롱함을 공원의 벤치에 앉아 경험하곤 한다.

  " 시야의 원근감을 완화하자, 신지 연못의 석탑이 눈앞으로 불쑥 육박해 왔다. 벤치 앞을 스쳐 지나던 젊은 직장인이 이쪽을 힐끔 쳐다봤다. 스쳐 지나는 사람에게는, 예를 들어 내가 이 벤치에서 뉴욕의 스타벅스 매장이나 이미 여러 해 전에 히카루에게 키스한 차 안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일까. 이렇게 멍한 상태에서 문득 제정신을 차릴 때, 이따금 전율과도 같은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지금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이 기억 같기도 하고 공상 같기도 하며 어딘가 모호해서 마치 사적인 장소를 스쳐 지나는 사람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34쪽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만약 내가 그의 곁을 지나가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공원의 나무와 새와 꽃과 행인들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벤치에 앉아 공원의 모든 것을 시야에 담은 사람에게는 공원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억 속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 그 곳의 것들과 만난다. 공원의 어떤 장면은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처럼 작용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 앞을 지나는 사람의 손에 스타벅스 컵이 들려 있었고 그의 기억은 여행으로 갔던 뉴욕의 스타벅스 매장으로 가게 된다. 그는 공원에 앉아있지만 뉴욕의 거리에 있다.


  " 풍경이란 실은 의식적으로만 볼 수 있는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파문이 번지는 연못, 이끼 낀 돌담, 나무, 꽃, 비행기구름,그런 모든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상태는 실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이고, 뭔가 한가지, 예를 들면 연못에 떠 있는 물새를 본다고 의식함으로써 비로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진 물새가 물새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을 때 혹은 모든 것이 시야에 들어올 때 실제로는 무엇이 보이느냐 하면, 예를 들어 조그 전 스쳐지나간 스타벅스 컵의 잔상으로 인해 내 눈에는 학생 때 혼자 여행했던 뉴욕에서 난생처음 들어갔던 스타벅스의 매장 풍경이 펼쳐졌다."- 30쪽.


  이 책의 옮긴이는 <파크 라이프>가 잘라보기와 내려다보기, 초점 흩뜨리기의 소설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공원 풍경을 바라보면서 초점을  현실의 풍경에서 기억의 풍경으로 넘기는 것은 의식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것이겠다. 그 외에 인체단면도에 관한 것, 공원에서 기구를 올리려는 노인의 이야기가 소설 안에서 언급된다. 잘라보기와 내려다보기의 소설작법.


  다만, 번역된 이 소설을 읽으며 방해되는 것들은 옮긴이가 괄호를 해 놓고 덧붙인 설명글(124쪽)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신사 앞에서 돈을 넣는 함을 불전이라고 설명해놓았다. 일본의 신사와 절에 가서  함에 동전을 떨어뜨리고 기도하는 모습이야 서로 비슷하지만, 신사에서 부처님에게 기도하지는 않는다. 옮긴이의 실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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