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2008년의 책읽기 52

자몽미소 2008. 12. 26. 12:18

 

 

출판사: 예담

지은이: 에르만 에르세, 옮긴이 이세진, 요리 레시피 조슬린 리고

 

  • 다른 사람이 읽은 이 책 

미술 평론가 유경희(책 뒤 날개에서 옮김)

 

피카소의 식탁에서 맛볼 수 있는 세 가지 맛- 축제의 맛, 예술의 맛, 인생의 맛

 

피카소에게 음식은 여자와 똑같은 탐미의 대상이었다. 그는 여자를 사랑하듯 음식을 사랑했다. 피카소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세상에 오로지 그 한 여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여자만은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집중적으로 공격적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피카소가 떠나면 죽거나 미친다.

 

음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피카소가 송아지 머리 요리를 먹다가 갑자기 자기 위장 속에 들어간 송아지 머리가 위장을 따라 꾸부러져 있을까, 머리 모양 그대로 서 있을까를 궁금해 한다. 이런 황당한 호기심은 얼마나 피카소적인가? 때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옆 사람에게 스무 번 이상 강권하는 피카소의 억지는 한편으로 과도하게 무례하고, 한편으로 징글맞을 정도로 정감 있게 느껴진다.

식탁이야말로 한 인간이 벌거벗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단 침대는 빼고! 그러나 침대에선 육체의 옷을 벗지만 식탁에선 영혼의 옷을 벗는다. '벌거벗은, 감각하는 영혼', 바로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이 보여주는 성찬이다.

요즘 나의 화두는 '몸으로 밀고 나가는 삶'에 관한 것이다. 그런 삶이야말로 지치고 황폐해진 나의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회복시켜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때 만난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은 내 안의 꿈틀거리는 창조적인 활력을 끌어낸다. 더불어 그런 식탁에 초대하고픈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나는 잠시 행복해진다. 

 

 

옮긴이(이 세진)의 말에서 발췌 

 

 

피카소의 왕성한 작품활동과 화려한 여성 편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게 정말 한 사람이 해 낸 일이란 말인가.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만큼 피카소는 극도로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동원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  예술가가 그렇게 정력적으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되겠다.

 

'위대한 괴물'이라는 칭호도 살짝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화가의 삶에 대한 범인들의 이해불능을 함축하는 듯 보인다. 사실 작품 세계를 차치하고 피카소의 생애만 들여다보더라도 보통 사람의 눈에 "괴물'로 보일 법한 요소가 다분하지 않은가. 친구의 여자를 가로챈다든가, 보통 사람 같으면 운신하기 힘들 팔십 노구에 서른 살 남짓한 여성과 결혼을 한다든가.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피카소는 일단 '일반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정열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피카소는 먹을 거리에 대한 작품을 굉장히 많이 남겼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화가는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가 하면, 그 식탁에서 그림도 그렸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나 아주 머나먼 문명에서나 함께 영감의 원천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일상의 가장 단순한 것들을 변화시켰다.

 

이 책 <맛있는 식탁>은 좀더 인간적인 피카소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독자들은 피카소의 내밀한 기쁨, 아련한 그리움, 식도락의 희열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평생 좋아했던 투박한 에스파냐 산골 요리들에서 자신의 뿌리를 결코 잊지 않았던 에스파냐인 피카소를 엿볼 수 있는가 하면, 페르낭드 베이컨과 채소만으로 푸짐하게 끓여내는 스튜에서 가난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을 다 가진 듯했던 보헤미안 피카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에 있는 것

 

 피카소의 인생에 관해-그림과 곁들여 풀어낸 인생사

  

 

먹을 것이 들어간 그림들 

 

 

사진 -피카소가 먹었던 음식의 재현

 

 

 

요리 레시피 -그림을 재현하는 요리

 

 

 

 

피카소 사진 

 

 

 

 

  •   내가 읽은 이 책

음식에 관한 책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광고하는 것을 보고  이 책을 구입했다. 편집에 성의를 모은 게 느껴지는 책이다. 피카소는 그림을 그린 화가인데, 이 책의 작가는 화가의 삶을 그려 내고 있다. 그림의 재료는, 피카소가 그린 음식이 들어간 그림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피카소를 재료로 끊임없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이 책은 피카소라는 기본 재료를 이용한 또다른 요리책이다.

 

피카소 그림을 많이 보지도 못했고. 그저 그의 그림은 난해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피카소에 대한 내 선입견이었다. 그의 인생은 뭐가 어땠는지 알려고도 안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건성으로나마 그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책의 감상을 쓰는 데 중요한 건 내가 이 책을 건성으로 읽었다는 것이다. 훨딱훨딱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기 보다는 봤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재현하여 만든 요리의 레시피는 낯설었다. 피카소가 먹었다는 음식은 우리 음식과는 식재료가 달라 먹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니 요리의 만들기에 관한 글은 읽혀지지 않았다. 슬쩍 그림을 보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군데군데 글쓴이가 밝히는 피카소의 인생 이야기를 읽었다. 

옮긴이나 또는 책날개에 감상을 적은 미술하는 이의 느낌엔 피카소에 관한 찬사가 가득했지만, 찬사라기 보다 경외에 가까운 그들의 한국말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소문을 듣다가 다 듣지도 않고 아이 그만 해라 치워 버려라 하듯이 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식의 편견이 더 두꺼워졌다. 나는 피카소가 살아낸 삶이 조금은 징그러웠다. 그의 수많은 삶의 모양 중에서 여성편력은 크게 싫었다. 우리 아버지도 아닌데 뭘 그러나 싶었지만, 이 책의 작가나 옮긴이가 그의 인생을 가리켜 "정열적"이라 하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다. 뭐 이런 식으로 살았지? 그런 걸 정열적이라고 해야 해! 예술로 다 용서 할 수 있다니, 참 웃긴다. 나는 목욕탕에 앉아 수다떠는 한국 아줌마의 단단한 잣대로 세계적인 예술가를 폄하하였다.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 >은 맛있는 책이 아니었다.  연애 많이 하는 남자를 싸구려로 생각하는  이 한국 아줌마의 눈엔 그러했다. 그림은? 뭐 밥 먹다가 그릴 수도 있지 뭐, 그런 걸 또 예술이라고 마구 올려 놓다니, 화가가 그림 그린 게 뭐 별 거 라고 그걸 죄다 엮어서 책으로까지 만들어서 또 파냐? 하는 못된 심사가 끓어올랐다. 책값이 아까웠나? 미술 또는 예술 문외한에겐 특히 돈 아까울 책이겠지만, 몰라, 이건 나만의 어리석은 판단일 뿐,  책값 아깝다고 널리 알릴 건 절대 못 된다. 무식쟁이 아줌마라고 야단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