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브라더스-

자몽미소 2010. 5. 10. 13:41

  

 

 

 

감독 :    짐 쉐리단  

 

형의 질투는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연상시킨다. 단순한 질투가 아니기에 위태로운 그는 일상을 견딜 수 없도록 변해 있었다.

 

영화는 아프카니스탄으로 파병을 가는 2007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상당히 기대를 하였다.  파병의 원인을 세계 평화 구축이라고 광고하는 미국의 오만을 개인의 삶에 대비시킴으로써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이 당위성을 찾을 수 없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되도록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진 영화이긴 했다.

 

그러나, 모자랐다. 그랬으므로 여전히 아프카니스탄은 미국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적국으로 남아 버렸고 미국의 파병은 여전히 비판받지 않았다.  샘을 납치한 아프카니스탄의 군사적 폭력만 지나치리만치 끔찍하게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개입이 미국 사람은 물론 아프카니스탄의 사람들의 삶 또한 잔인하게 파괴했다는 진실 까지는 가지 않았다.

 

군대는 살인을 배우는 곳이다. 그러나 그 훈련은 적국의 적을 막아내는 것이기에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에서 멀어지도록 훈련될 수 있다. 살인이 아니라 적을 쳐부수었다는 합리화는 군인으로서 살아돌아온 사람에게 훈장을 주고 영웅으로 기리는 사회 전반의 행위를 통해 강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죽여야 할 사람이 적이 아닐 때,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도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머물러 버렸다. 모든 정황을 보고 있는  관객은 부하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던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그랬을 것이기에 관객은 그에게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아프카니스탄의 지도부에게 혐오했다. 그 죽음의 구렁텅이 속에서 그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그는 자기만 알고 있는 전쟁터의 경험 때문에 자학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아내가 동생과 부정하였다고 믿으면서 자신이 살아 돌아온 일을 혐오할 이유를 만들어 간다. 그는 결국 국가의 지원을 받는 환자가 되어 그 일을 겪고도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영화의 결말이 결국 이 질문만으로 끝나야 하나 싶어 아쉬웠다.  그를 이렇게 만든 아프카니스탄의 수염기른 남자들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적으로 남아 버릴 소지가 다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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