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4년 [문예중앙]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다.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시힘]의 동이으로 활동 중이며 불교방송 포교제작팀 PD기도 하다. 저서로는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등이 있다.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은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가재미 2
꽃잎, 꽃상여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벌의 옷을 장만했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옷, 꽃상여
그녀의 몸음 얼었지만 꽃잎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두꺼운 땅거죽을 열고 독 같은 고요 속으로 천천히
그녀가 걸어 들어가 유서처럼 눕는다
울지 마라, 나의 아이야, 울지 마라
꽃상여는 하늘로 불타오른다
그녀의 몸에서 더 이상 그림자가 나오지 않는다
붉은 흙 물고기
상두꾼들이 그녀의 무덤을 등 둥근 물고기로 만들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무덤을 붉은 흙 물고기이니
물 없는 하늘을 헤엄쳐 그녀는 어디로든 갈 것이다
개를 데려오다
석양 아래 묶인 한 마리 개가 늦가을 억새 같다
털갈이를 하느라 작은 몸이 더 파리하다
석양 아래 빛이 바뀌고 있다
그녀가 정붙이고 살던 개를 데리고 골목을 지나 내 집으로 돌아오다
가재미 3
-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다
그녀의 함석집 귀퉁배기에는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방고래에 불 들어가듯 고욤나무 한 그루에 눈보라가
며칠째 밀리며 밀리며 몰아치는 오후
그녀는 없다, 나는 그녀의 빈집에 홀로 들어선다
물은 얼어 끊어지고, 숯검댕이 아궁이는 퀭하다
저 먼 나라에는 춥지 않은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끌어낸다
이 세상 저물 때 그녀는 바람벽처럼 서럽도록 추웠으므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식은 재를 끌어내
그녀가 불의 감각을 잊도록 하는 것
저 먼 나라에는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저 먼 나라에서 그녀는 오늘처럼 밖이 추운 날 방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맨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습관처럼 그럴 줄 모르지만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모두 끌어낸다
그녀는 나로부터도 자유로이 빈집이 되었다
2010년 9월 9일 목요일
이 시는 병원에서 읽었다
병원 의자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었다.
일 년 반 전의 아픔과 두려움, 그에 이어진 수술과 입원의 시간이 오롯하게 살아나
우리 옆의 푸른 의자에 와 앉아 있는 동안
남편은 시의 소리를 들었고 나는 시의 글자를 보았다.
시를 읽어주는 동안 나는
수술직전의 의사처럼 친절하고
모든 것을 맡긴 듯한 환자의 표정으로
남편은 숨을 골랐다
시의 마침표가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시가 끝났을 때 남편의 더운 손이 내 손등에 얹혔다.
죽음에 가까이 다녀온 사람의 가슴도 더워졌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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