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책을 읽고 내 생각
나무와 숲, 계절과 생명,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식물의 색깔과 사람의 자세.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단어였다.
감옥에 간 아버지, 아버지와 가까워지지 않는 딸, 섞이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래서 가족으로 묶인 고달픔과 인연의 질긴 구속이 소설이 끝나도록 이어졌다.
자폐증에 걸린 아들과 그 아이를 보살피는 아버지는 서로 다르나 사실은 같은 생명의 흐르고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는 자신을 지키려고 상대를 허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저 스스로의 색을 구현한다.
숲 속에서 오랫동안 버려졌던 군인의 시체와 그 숲에서 살아나는 생명은 매우 이질적인 대상이지만 결국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스러지고 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할아버지가 타고 왔던 말(馬)은 작가가 부리고 있는 말(言語)에 관한 표현으로 읽혔다.
김훈의 이번 소설도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다.
"수목원에서 세밀화를 그리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감옥에 가서 나온 아버지도 죽고, 1년 동안의 계약직도 끝나고 나서 수목원에서 만난 남자와 아이를 만나보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라고 말하고 나면 이 소설에 대해 다 말한 것이지만, 소설은 이야기에 있지 않고 관념에 있었기에 무슨 소설이었는지를 내 언어로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고 쓸 데 없으며 아무 것도 말한 것이 아니다.
김훈의 여느 소설에서처럼 이번 소설에도 의미를 숨긴 언어가 장치되고, 관념이 봄꽃처럼 사방에 퍼져 있어, 문장을 잡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의 문장은 내 눈에 닿아 마음으로 와 녹기도 전에 부스러져 버렸다. 나는 문장에 공감하다가도 더 자주 문장이 나를 거부하는 느낌을 갖기도 했다. 문장을 짝사랑하는 독자, 하지만 문장에게서 사랑받지는 못하는 가련한 독자가 되어 소설에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은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비슷했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여자이거나 심하게는 구체적인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이 있었나? 이 소설에 나오는 꽃들은 이름이 있었지만 여자의 이름이 지금 독후감을 쓰는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이름이 있었나 찾아보다가 그만 두었다. 일인칭의 독백이 자기 이름을 지웠고, 그래서 독자가 읽는 여자는 그 여자가 만난 백골의 병사들처럼 곧 스러질 것 같은 존재, 그러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지닌 인격을 상상하게 한다. 여자의 실루엣은 잘 보이지 않았고, 마음만 자꾸 보였기 때문에 여자를 느끼기 위해 여자가 보여주는 매우 짧은 대사에 심혈을 기울여 보았다. 하지만 여자의 속마음을 문장으로 더 많이 만났기에 주인공 여자는 어떤 여자가 아니라 그냥 김훈으로 느껴졌다. 아니면 김훈의 마음에서만 사는 여자랄까, 나는 잘 만나볼 수 없는, 세상에 없는 여자일 뿐이었다.
당분간 김훈을, 김훈의 문장을 모른 척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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