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008-9쪽
일반인은 내심 병역이 싫더라도 이를 일종의 불가피한 '인류의 숙명' 혹은 '남자로 태어난 숙명'으로 여겼다. 인간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서 '일단' 태어난다. 그리고 특정 시대와 장소에서 '결국' 죽는다.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등한 전제로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쇼와 10년대(1935-44년)에는 일반적으로 병역 자체를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큰 틀의 일부로 여겼다.
죽음을 태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람은 숙명으로 여기는 모든 상황과 마주하기를 꺼린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2년 4월, 아주 평범한 청년이었던 나는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도 어렴풋이 정체모를 긴장감만 느낄 뿐이었다. ...
일본은 전쟁 개시 이후 4개월간 진주만 군함 전투를 시작으로 마닐라 점령, 뉴기니 섬 상륙에 성곡하는 등 연이은 전투의 승리에 기고만장해 있었다. 따라서 대일본 제국이 임종을 앞둔 소강상태에 있다는 점은 가려진 채, 사람들은 그저 모든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징집이나 전쟁터도 오히려 막연한 미래의 숙명처럼 여겨졌다.
016-17쪽
군대와의 첫 대면에서 겪은 이 놀라운 경험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꽤 오래전, 어느 교수에게 특수한 상황 하에 특정 역할이 주어진 위치'에 서는 순간 그 사람의 태도가 돌변하는 현상에 대해 불가사의하다고 말하자 그 교수는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지극히 일본인다운 현상이라고 했다.
"무원칙이 아니라 이게 바로 사대주의, 즉 '대의를 섬기는 사상'이에요. 그런 점에서는 일관적이라 생각해요. 외판원에게 단골 고객은 '大'겠죠. 그래서 이를 '섬기는' 겁니다. 다만 그때 그는 자신보다 '小'한 존재에 대해서는 검사장에서 당신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태도를 보였던 게 트립없어요. 당신이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때까지의 입장이 서로 역전됐기 때문이지 그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사대주의 원칙에 따라 일관적이었던 거죠. 아마 그는 징병검사장에서 징병관에게만큼은 예전에 당신에게 튀한 태도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을 겁니다."
사대주의를 기반으로 항 이렇듯 일순간에 변모하는 태도는, 일본인 포로 혹은 포로를 다루는 일본군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며 전후에 활동하는 공해운동가들(환경운동가?) 중 일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소질'을 단위로 하여 구성된 제국 육군이 철저히 '사대주의적'인 것은 오히려 당연한 귀격이며 다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052쪽
연대의 모든 상황은 전쟁에 대처하기보다는 '조직자체의 일상적인 필연'에 의해 목적 없이 '자전'하는 듯 보였다.
사실 7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1943년 현재) 이 방대한 조직은 모든 것이 정형화되고 고착되어 견고했으며 그 자체로 완전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규칙투성이로 지극히 보수적이었으며 목표 없이 기계적인 자전을 반복했는데, 그 결과 생겨난 틀에 갇힌 듯한 일상의 작업과 생활의 순환에 손을 댈 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바로 이런 상태가 미군이 사이판 섬에 상륙하기 4개월 전 연대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위기감이 없진 않았다. 다만 위기감과 일상이 서로 연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엔 분절된 쌍방을 분담이라도 하듯 세 가지 유형의 장교가 존재했다.
첫째, 큰소리로 위기를 알리며 위기에 대한 인식과 이를 근거로 한 자각의 결여를 비난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고 단순히 눈앞의 현상에 분개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 행동이나 태도는 조직의 논리를 따랐으며 이에 대해 모순이라 느끼지 않았다.
둘째는 군대 내 만물박사 같은 존재로 규칙 및 선례 등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조직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지배하면서 이를 원활히 작동시키는 사람이었다. 이들에게 엘리트 의식은 없었으며 과묵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나, 자신감이 강하고 일종의 폐쇄성을 띠었기 때문에 내심 첫째 유형의 사람들을 경멸했다.
셋째는 나처럼 소위 "단순 사무직 종사자' 같은 존재였다.
간부후보생 출신 장교는 군대는 타의로 얻게 된 직책으로 여길 뿐,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으레 '지나쳐가는' 통과의례로 여겼던 터라 정식 군대 인력 외적인 존재였다. 이런 상황이 직무 태만을 초래하지는 않았으나,' 톱니바퀴 의식'이 강해서 입만 열면 방관자처럼 냉담한 관찰 및 비평을 했기 때문에 무심코 내밭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종종 순수 배양된 청년 장교나 완고한 노장 대령의 신경을 거스르곤 했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 및 자신의 미래를 군대 내로 상정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이상의 세 가지 유형의 장교 중 첫 번째가 주로 사관학교를 나온 소위 '청년 장교'에 해당되었다. '군부 파시즘'이 있다면 이를 지탱하는 건 그들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 실체는 한마디로 '파시스트 흉내내기' 수준이었다. 그들은 나치스·독일 군부에 심취하여 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찬미했다. 물론 복장도 '나치 스타일' 이었다.
소위 ''나치 모드'로 스스로 그런 분위기에 심취해 있었는데, 막상 나치즘에 대한 지식은 나치 선전용 연출 사진과 그에 대한 해설이 전부일 뿐 독일 국방군의 총병력, 편성, 장비, 전략, 전술에 관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은 없었다. 게다가 교만했다.
쇼와 15년 전쟁(1931-1945에 일어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끝에 있어서 군의 기본적인 체제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149쪽-
이 시기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다음과 같은 오래된 잠언 뿐이다. "하늘은 사람들을 자멸시키고자 하면, 먼저 그들을 미치게 한다."
'미친다!" 미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관점'을 절대시,신성시 하고 관점이 다른 자는 배제하면서 자신의 관점에 동조하는 사람하고만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으로만 모든 문제를 정리한다. 설령 파이프를 휘두르더라도 분명 모든 것을 나름대로 철저히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미친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리하다'라는 말은 정말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관점에 따라 대상과 자신 간에 질서를 만든다는 의미인데, 야쿠자들은 '성가시다, 정리해버려' 라고 말한다. 일본군의 방식은 언제나 '속전속결 눈앞의 적을 정리한다' 였다. '정리하다.' 분명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정리하려고 하며, 정리되지 않으면 '자기 기분이 정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리하는 행위의 전제에는, 선험적인 틀에 박힌 '절대적 관점'의 기초를 이루는 심적 질서가 존재할 것이다.
이런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서 대상을 허구화한다. 그러나 실체로서의 대상은 아무래도 '심적질서'로 정리할 수 없다. 그러면 '사회의 벽이 높았다'는 식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게 되는데, 군사행동에 있어서는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실제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레이테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었ㅇ며, 수많은 '반자이 돌격(만세돌격)이 이에 속했다.
1억 옥쇄는 이런 현상의 집대성일 것이다.
159쪽-
형식화된 군대에서는 실질보다 숫자, 숫자만 맞으며 다른 건 괜찮다는 라는 사상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철저히 깔려 있다. 고무줄 숫자로 만들어진 비행장은 한 번 내린 비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될지라도 참모본부(최고 통수부)의 도면에는 그럴듯한 비행장으로 그려졌다. 필리핀 방면에서 00만 병력을 필요로 하면 본토에서는 대대적으로 병사를 소집하여 본토 항구를 통해 어느 정도의 병력을 내보냈으나, 결국 도중에 격침을 당하는 등 목적지에 도착하는 인원은 몇 퍼센트에 불과했고 살아남은 병사들 역시 알몸이나 다름없는 행색이었다. 필리핀에 가면 무기가 있다는 말에 빈손으로 일본을 출발했지만, 도착해보니 총 한 자루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죽창을 든 군대가 되었다. 일본의 최고 작전조차 이런 식으로 숫자 중심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바로 자전하는 '조직' 위에 군림했던 '불가능한 명령과 이에 대한 고무줄 숫자 보고'로 구성된 허구 세계를 '사실'로 여겼기 때ㅜㄴ이다. 일본군은 미군에게 패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미국에 의한 타격을 받고서 허구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자 항복한 것이었다.
결국 숫자로 보면 있으나 실체는 '없다'는 의미이며, '실체는 없다'는 말을 들으면 항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직과 자살
-263쬭
자살하는 원인이나 동기는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타살에 가까운 강요에 의한 자살도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강요된 자살은 어떨가. 이건 타살이 아닐까. 전장에서도 다양한 자살이 있다. 물론 자결이라 불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중에는 강요당한 자살, 바꿔 말하면 강요한 사람의 타살, 자살을 핑계 삼은 온전한 살인도 있었다.
강요당한 사람의 대부분은 무모한 작전 계획과 무책임한 참모의 지리멸렬한 '사물명령' 때문에 현장에서 온갖 고난을 겪은 책임자였다. 그들은 고난 끝에 자살을 강요받아 죽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살인자이자 '기개를 연기하던' 우등생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전후에도 살아남아 계속 '연기'를 하면서 민중의 갈채를 받았다.
이를테면 '자결이란 이름의 확실한 타살'로서 규탄받아야 마땅한 살인자의 존재가 드러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틀림없이 벌어질 이런 상황을 예견함으로써, 굴욕적인 죽음을 피하고자 미리 자살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자살과 타살의 중간에 위치하며, 본인의 의지인지 혹은 타인의 의지인지 명확하지 않은 예다. 결말이 뚜렷이 보이면, 많은 사람은 '굴육 프러스 죽음' 보다 단순한 죽음, 즉 명목적으로 명예가 남는 죽음을 선택하며, 자신의 사체를 향한 채찍질과 유족을 향한 세상의 규탄만큼는 피하고자 하였다. 이런 경우, 지금은 오로지 제국 육군의 비정함과 비인간성을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두려운 것이 있다. 그건 世間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군이 가족을 추궁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렇다면 모자 가정의 어머니조차 군영에 아들을 면회화서 자식에게 "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도망가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그녀가 두려운 것은 제국 육군이 아니라 세간이라는 이름의 민간인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은 군보다 더 냉혹했다( 앞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손가락질 하는 인간이 불명확하다는 점에 있어서 말이다)
..
육체적인 피로가 극에 달하면 인간은 그저 더 이상 움직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살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피로가 극에 달하면 만사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욕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또 자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물 한 잔과 담배 한 대 그리고 파란 하늘 조각에 목숨을 거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자신이 걸어가는 길 끝에 기다리는 것이 '굴욕적인 죽음' 이라는 게 분명하다면, 굳이 고생하면서 '굴욕적인 자리' 까지 걸어가지는 않는다.
전쟁책임
-323쪽
제국 육군에는, 장관이건 이등병이건 간에, 객관적인 법이 존재한다는 의식이나 법에 근거해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를테면 포탄이 없는 대포를 인력으로 300킬로미터 끌고 오라는 명령에 의해 부하들이 죽더라도, 명령에 맹종하여 대포를 끌고오면 책임감 왕성한 훌륭한 장교가 되지만, 스스로의 결단과 책임감에 따라 파라난 강으로 대포를 처넣는다면, 이는 마땅히 자결해야 할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장교로 여겨졌다.
제국 육군이게 반성이란, 권위에 대한 맹종이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이를 고백하고 앞으로는 철저히 맹종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술했듯이 포병은 화포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을 강요받았고, 대포를 잃어버린 경우 적어도 직접적인 책임자인 하급장교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칼은 무사의 영혼'이라 하여 무기를 신성시 하고 빼앗길 시에는 할복자살을 해야 했던 도쿠가와 시대부터 전해진 전통이라 여겨지는데, 포병 역시, 비행기와 운명을 같이했던 특공대와 다를 바 없었고, 결코 특공대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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