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서원 출판사 堂山書院/남양군도의 조선인

남양군도 전시회 감상/ 2019년 8월 15일

자몽미소 2019. 8. 16. 09:54


남양군도의 조선인을 생각하며

 

2019815, 나는, 동경 신주쿠에 있는 스미토모住友 빌딩 33층에서 남양군도에서 돌아온 일본 사람들에 관한 전시를 보고 있었다. 1945815일을 일본인들은 종전終戰日이라고 하고 있고 두 번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일부에서는 종전이라는 말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서 패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 책임에 대해서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말이라며 종전이라고 하지 말고 패전敗戰이라고 해야 한다고 한다. 종전이라고 이야기 하는 측에서는 패전이라는 말의 반대쪽에 승전勝戰이라는 말이 있어서, 이기고 지는 것으로 전쟁을 이야기 하면 안 될 것이라고 한다.

815일을 종전이라 하든 패전이라 하든, 이 날을 매년 기념하고 기억하면서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면에서 서로의 생각은 같아 보인다. 일본 사람들이 1945815일 이후 이날을 패전의 날이라 하고, 종전의 날이라 할 때, 우리에게는 쭉 이날을 광복의 날이라고 했고,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이라고 하였다. 일본이 미국과 벌인 태평양 전쟁에 패배한 후, 우리는 일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815일은 대한민국으로 독립하는 기점이 되었다.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라고 하던 광복절의 노래에는 조국을 되찾은 감격과 환희가 출렁인다. 그렇게 74년이 흘렀다.

전시는 군인과 시베리아 유형지로부터의 귀환에 대해 보여준 다음, 남양군도에서 돌아온 사람의 사진 자료와 기증 물품으로 이어졌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노인이 나와서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잃은 소년이 겪은 전쟁과 그 후 일본으로 돌아오기 까지의 험난한 귀로의 경험이다. 전쟁은 군인들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가족을 잃고 목숨을 잃는 일이었고, 일본 땅에서는 물론 그들이 지배했던 만주와 조선, 남양군도에서도 그러했다. 이때의 경험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들이 전하는 전쟁의 참화는 점점 옛날 이야기의 삽화쯤으로 풍화되어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소환을 위해 1945년의 패전, 또는 종전 이후에도 그때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전시장의 한 곳에 1945년 무렵의 사이판 시가지가 그려져 있다. 가라판이라고 하는 시내 중심가에는 일본인들의 상점들이 즐비하다. 상점 이름으로 봐서 오키나와 사람의 가게로 추정되는 곳도 보이고, 남양흥발의 회사, 일본인이 다니던 소학교와 원주민들이 다니던 공학교가 있다. 일본에서 파견된 공무원 또는 군인들의 관사가 있고, 시내 한쪽으로는 음식점과 유흥가로 보이는 가게들도 있다. 그 상점 가운데 대동강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지도는 사이판에서 돌아온 일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을 모아 재구성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았던 동네의 모습을 가게와 도로, 건물들을 종이 위에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지도 한 끝에 넓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 있었다. 수수케 호수 옆으로 수용소다. 수용소 앞에는 미군의 캠프가 있다. 미군이 사이판을 점령한 후 일본인들을 일본으로 보내기 전에 수용하였던 곳이다. 그런데 일본인 수용소 옆으로 조그맣게 그려진 게 있다. 하나는 조선인 수용소, 또하나는 차모로 캠프다. 조선인들이 사이판의 수용소에 있었다. 다른 전시 사진 중에는 미군들이 운영하던 건강검진 센타에 한글이 보인다. 일본인과 한국인들을 함께 진료하고 검사하였던 곳인 것이다.

일본인이 소장하였던 사진이나 기록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흔적을 보는 것이다. 일제 시기에 남양군도에 갔던 조선인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그 이후 여러 문헌을 보았다. 상당히 많은 것을 일본의 자료 또는 미국의 자료에서 찾았다. 오늘도 나는 남양군도에서 돌아온 어느 사람의 기증품에서 조선인들의 자취를, 아주 조금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남양군도 자료는 주로 강제연행되었던 노동자들이거나 위안부에 관한 것이었다. 밝혀진 자료들을 보면서 비분강개하는 일이 많았다. 일제의 만행과 그 이후 반성이 없는 행태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들은 전쟁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들이 겪은 슬픔과 억울함, 고생과 죽음 등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이 갔던 곳에서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 조선반도에서 연행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쟁의 참상에 관해 이야기를 해도 거의 늘, 자신들 일본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내가 보고 있는 전시에서처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전쟁을 모르고 자라난 후세대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것은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각성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였던지에 관해서는 반성과 각성이 없는 것이, 일본의 전쟁 체험 전시의 한계이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일제 시기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일본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에 관해 이렇게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 사람들이 내 놓은 자료, 기증 자료와 연구자들이 참여한 것들을 모아서 일반인들에게 가까운 과거의 역사를 전하는 기획이, 나는 한편으로 부러웠다.

남양군도에 갔던 조선인들에 관해 연구를 시작한 이래, 나는 우리 나라에서 이 부분에 관한 연구가 아주 많이 미흡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야 비로소 위안부와 강제연행에 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으나, 일제 36년간 우리가 겪은 것은 그것 뿐인가. 그 외에도 우리 삶은 다양한 방면에서 그 시간을 겪었다. 그러므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 때의 시간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조선인들이 살아냈던 일제 시기의 작은 부분을 조명해 보려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더 본격적으로 이 시기의 것들을 연구하여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