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읽기/ 성석제의 소풍과 ----

자몽미소 2006. 7. 21. 09:34
 

비 오는 날의 책읽기


일본어 소설을 읽기 시작해 근 두 달, 어느 날부터 책갈피는 책의 이등분 표시를 하겠다는 건지 책 가운데 가만히 누워 있고, 일본어 공부의 목표가 일본 소설 읽기라던 책 주인은 가끔 그의 첫 포부가 무엇인지도 잊고, 책이 놓인 장소까지도 잊는다. 일본에 온 지 5개월, 일본어는 제자리 수준이거나 내리막 길인 것도 같고 따로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니 사전 없이 일본 소설을 읽겠다던 초심은 낡은 옷처럼 헐렁거린다.

무얼 읽고 싶긴 하나 책장 가득한 일본어 책은 아니었다. 고국의 말로서 달래 주어야 할 말의 허기를 느꼈다. 한국 인터넷서점에서 최근의 베스트셀러를 주문하였다. 바다 건너 제주도로 배달된 책들은 다시 현해탄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인생수업』,  『소풍』, 『바람의 그림자 1,2』



1)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류시화 옮김/이레

삶의 수업 시간, 어떻게 살아야지란 과목을 수업 받는 학생처럼 선생의 말을 경청했다. 수업을 받다 보니, 이전에 많이 받아본 수업 내용 같다. 이내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선생님의 열변, 그래도 책읽기에 게으름을 피워선 안 되지, 이런 저런 예화가 많은 선생님이 끝없이 이야기 하시고, 지루하다고 중간에 덮어선 안 되지, 마지막 장부터 보기 시작하기도 하면서 다 읽긴 했다.

수업을 받고 나서 생각하는 거.

어떤 깨달음이 있다고 그 다음부터의  삶의 색깔이 책의 사람들처럼 잘 바뀌나?

삶의 습관을 바꾸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계속해서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그 결심이 지속되나?


책의 저자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말한다. 우리가 삶의 한계- 시간의 한계, 경험의 한계,-를 깨닫고, 유한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길 바란다. 죽기 전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가 만났던 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가르치면서 이 책의 독자들이 인생의 핵심을 배우기 바란다.

중요하고 소중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나는 또 궁금하다.

그들이 만났던 사람들, 저자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이들이 여러 번의 상담 후에 “ 아, 제가 이제까지 잘못 했군요,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제부터 나는 이러이러하게 살게요” 했다고 해서 그 후로는 결코 다시 우울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고 이 생에 대한 불안의 뿌리를 깨끗하게 뽑아 버릴 수 있고, 매사에 환한 삶으로 꾸며 나갈 수 있을까.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체로 생각이나 감정이 잘 바뀌어지지 않고, 거울 앞에 서서 애써 자기 얼굴에게 웃어 보이며 뭔가를 바꾸겠다고 결심 굳게 하고서도 작은 부딪힘에 하루가 또는 한 달이, 일 년이, 또는 오랜 시간 일상이 흔들거리고 내 마음이 흔들거리고 내 삶이 흔들거리는 게 사람들이 아닌가?

이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좋은 정신병원 상담자를 만나면 편견을 벗고 생각이 바뀌어서 남아 있는 인생을 활기차고 명랑하게 주변을 도우며 보람있는 삶으로 멋지게 변신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거 복습해 볼 수 있도록 내 말 잘 들어주고 교정해 줄 가정교사 같은 사람이 있긴 하나? 언제나 나를 위해 무료로 봉사해주냐 그렇게 그게 쉬운 일인가.

많은 부분 내가 실수하고 있구나, 내가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구나, 책에 이런 좋은 말이 있던데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안 되는 게 사람이고 안 되어서 사람인데

공부를 하고  잘 하고 싶다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모두 우등생이 되고 다음 달 시험 성적이 쭉 올라가지는 않는 것이다, 좋은 책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어쩐 일인지 요즘 나는 좋은 선생님에게 삐딱해져 있는 것 같다. 선생에게 삐딱해 있는 학생이 우등생이 될 리 만무하지만 선생님 말씀이  옳으시다고 나도 꼭 따라 할게요. 이제부터 저도 제 인생을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하는 맘이 들지 않는다.

책을 덮으며, 좋은 수업을 받고 성적을 확 상승시킬 수 있는 우등생들 보다는, 언제나 공부는 잘 하고 싶고 노력은 하는데도 반의 꼴찌를 면할 수 없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 노력은 하는데도 어쩐 일인지 가난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든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기도를 하는 데도 마음이 늘 슬픔으로 가득한 우울한 이들에게 <말처럼 쉬운 게 어디 있나, 생각처럼 쉬운 게 어디 있나, 쉬워 보여도 안 되는 거 많은 거, 그게 인생 아니어요? 우리끼리 위로하며 살아 봅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건 이제 내가 선생님의 눈 밖에 나 버린 문제아여서 그런 것일까.



2)소풍 성석제 산문집/창비

먹을 거 갖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구나.

책을 읽고 나니 그 동안 내가 먹은 음식과 식량과 일용할 양식들, 입맛과 밥맛들이 비빔밥이 되어 내 상에 놓여진 것 같다. 나도 이런 느낌 가진 적 있는데, 똑같이 먹었던 밥과 국들이 훌륭한 이야기꾼의 입으로 가더니 멋진 화보에 실려 입에 침 고이게 하는 음식 사진이 된 것 같다.

재미있다.

짬짬이 남편이 읽다가 그의 능수능란한 묘사에 킬킬 거린다. 만화책을 보다가 웃는 웃음 소리와 비슷하다. 어떤 장면을 읽는지 궁금해 살짝 들여다 보고는 나도 따라 웃는다. 가끔 만화도 나온다. 글 만큼이나 만화도 재미있다. 순수 문학 하는 사람이라고 폼잡던 문학가들께서는 만화는 양서가 아니니 아이들에게 멀리하도록 엄마들을 위한 책읽기 교실에서 가르쳤을 수도 있으실텐데. 그 순수문학가들 보다 더 글 잘 쓰는 성석제씨가 만화와 제휴한 걸 아시면 이 책은 그냥 잡글 이다 라고 폄하하진 않으실까, 하긴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는 내가 볼 책이 아니라고 믿었던 사람이니 더 할말도 없다.

아빠와 엄마가 킬킬거리니 아들이 그게 무슨 책이야요? 하고 궁금해졌다. 요즘은 아들으 방에서도 가끔씩 킬킬킬킬, 소리가 난다.


3)바람의 그림자1,2/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문학과 지성사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 좋아했다가 인생을 완전히 망쳤다. 왜냐하면 그들 두 사람 사이에 그들이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 그 남자는 반 거지로 사는데다가 그 첫사랑의 기억 때문에 결혼도 못해보고 한 평생을 보내다가 지금은 남자와 여자  둘 다 어디에 있는지 생사를 모른다. 가족들도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이런 얘기를 아무나 다 할 수 있다. 동네 사우나에 앉아 수다의 오징어땅콩으로도 만들 수 있고, 신문 기사에도 올릴 수 있고, 사랑의 허상에 대해 너무 잘 아는 현실파의 교훈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이 유행가 가사에 공감하는 이 읽어 보시기 바란다. 그 가사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분도 꼭 읽어 보시기 바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억이 희미하다는 분도 읽어 보시면 좋고, 이 세상 하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사랑이라는 게 있어서 사는 걸 힘들게 하는 거야 질문하고 있는 분도 읽어 보면 좋겠다. 아니면 사랑 때문에 행복한 분도.

바람의 그림자는 물론 사랑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보는 이들마다 그 사랑의 무지개, 무지개 빛 속에 든 무수한 색깔 중에 눈에 띄는 색깔이 서로 다르듯, 이 책의 역자의 후기 중에 유독 아버지에 관한 글이 길었던 것처럼,  사랑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 마다 매우 다른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덧붙여 말하자면 나에겐 <만년필>의 흐름이 눈에 띄었다. 빅토르 위고의 만년필이 손에 손을 거치고 이 책의 화자에게 오는 동안 이야기는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어떤 사람의 평엔 책의 무덤과 서점이, 어떤 사람의 평엔 글쓰는 일에 대한 것이, 어떤 이에겐 친구와의 우정이 크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본다.

벌써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고 하니 더 붙일 말도 없다. 권하고 싶은 책이다.

(2006,7,21, 후니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