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읽기/ 그 전쟁은 어떤 전쟁이었나.

자몽미소 2006. 7. 29. 11:30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일본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생각하는 건, 이들이 역사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고 있나 하는 것이다. 어제 만난 한 사람도 임나일본부설을 공부했다고 했고 가야에 그들의 나라, 리틀 자팬이 존재했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사실이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던 때가 있었고 우리 나라 역사 선생님들조차 그렇게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역사에 대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우기는 일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 하다. 어떤 집단이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역사 교육은 정치의 하수인이 될 때가 있다. 민족주의적인 애국학자의 힘이 강할 때 그러하다. 그러나 요즘은 일본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 보다 훨씬 젊은 친구는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아예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근대사에 어두울 수 있는 것처럼 일본 사람들도 메이지 시대 이후, 국가 중심주의로 흐르던 시대의 역사에 모든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찌오지 시, 중앙도서관에서 열리는 독서 클럽에 나간 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전쟁은 1942년-1945년 사이의 태평양전쟁만을 일컫는다. 이 전쟁으로 일본인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전쟁에 나간 아들이 죽었고, 아버지는 소식을 몰랐고, 그랬으므로 가족은 가난했으며 전쟁에 시기 동안  배를 곯았다. 그래서 이 전쟁에 대해 일본 사람들은 할 말이 많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36년의 통치, 36 년 동안 피해 받은 한국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들의 체험은 기억하지만 왜 그래야만 되었는지, 그들을 힘들게 했던 전쟁, 태평양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1942년부터의 전쟁을 태평양 전쟁이라 하기도 하고, 1930년대 중국과의 전쟁이 시작으로 15년 전쟁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시작된 메이지 이후의 정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을 하지 않는다. 일본의 전쟁에 관해 학자들 사이에서 마저 15년 전쟁이니, 태평양 전쟁이니 하는 게 통일되지 않았으니   일반 민중들의 역사관은 더욱 더 모호하다.

 

그런 일본인의 역사관에 답답함을 느끼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한다길래 참가 했던 하찌오지시 독서 클럽,  나는 그날 안 들리는 말을 들으려고 너무 애를 쓴 나머지 저녁에 집에 왔을 때 쓰러질 지경이었다는 것을 먼저 밝혀 둔다. 그래도 그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싶어서 미리 책을 읽어 갔다는 것을 밝혀 둔다. 그러나 다 읽지 못하고 머리말만 읽었다는 것도 고백하자. 가서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고, 우리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토론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에 열이 올라 이 책을 번역해 볼 꿈을 꾸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그 각오는 거의 일주일 쯤 유지되었지만 ,그러나 사전을 후벼 파는 그 작업을 미루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까맣게 잊어 버렸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5월이 오고 6월이 지나는 사이 공사다망했으며 또 더 중요한 건 블로그질 하느라 책은 우리 집 거실에 있긴 했지만 너무 먼 데 있었다.

오늘  그 너무 먼 데 있던 책장 앞에 섰다가 그 사이 읽으려다 말고 건드렸다 만 책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고 원래 내가 책을 읽는 여자 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 책 중의 하나. 머리말을 번역까지 했던 이 책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군가 이 책을 번역해 주면 그때가서 한국어로 읽으려고 마음을 바꾸었다. 일본 본토에 가서 일본어를 익혀 일본어 원서로 책을 읽으리라는 커다른 꿈 및 희망은 그 사이 변하고 말았다. 일본어 공부하느라 머리 싸매는 사이 한국어를 사랑하자, 그러니까 이 책은 이제 누구나 번역해 내 놔도 된다. 내가 먼저 번역하여 보겠다는 거 고스란히 내려 놓고 이제 선을 보인다.

 

책 제목은 <그 전쟁은 어떠했습니까> 이다

 

그리고 내가 번역한 머리말 부분은 아래와 같다.

 

****

保阪正康  <그 전쟁은 어떠했습니까>


1. 머리말


<태평양 전쟁은 도대체 어땠습니까?>, 전후 60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일본인은 이  문제에 정확히 대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몇 개의 상징적인 것을 제시해 보자.

하나는  여름의 갑자원(주: 공원)에서의 8월 15일의 세레모니다. 정오의 싸이렌이 울리면 그곳에 모인 고교 야구부원들이 모두 묵념을 올린다. 이것은 당연한 것처럼 되풀이 되면서 <아름다운 풍경>으로 평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이상하다. 헤이세이(平成, 1989년 이후)에 들어와 태어난 그들이 정말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벌써 60년 전의 전쟁에 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묵념을 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동정하게 된다. 무의미한 의식(儀式)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일에도 나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히로시마 시의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의 원폭사몰자 위령비에는 <평안히 잠드세요, 실패는 되풀이하지 않으니까> 라고 씌여진 비문이 있다. 무엇을 호소하고 싶은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은 미국이 틀림없는데도 마치 우리들이 죄를 저질렀던 것처럼 되어 있다. 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전후  60년 사이에 태평양전쟁은 다양하게 말해지고 파악되었다. 그러나 <그 전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있었는가, 왜 시작했고, 왜 패배했는가> 하는 태평양전쟁을 본질적으로 총체화해서 파악한 발언은 전혀 없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던 미국을 상대해서 전쟁을 하는 것은 정말 무모했다고 초등학교 학생 정도라도 아는 것을 역사적 검증조차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우선은 이른바 평화교육이라는 역사관이 오랫동안  지배하고 전쟁 그 자체를 본래의 역사로 파악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을 말하는 경우는 반드시 <침략>이라는 역사가 있다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전> <평화> <자유> <민주주의> <진보> 라는 미사여구로 바꾸어 말하면서 역사의 사실적인 이해도 없이 불쑥 일원화해 말해 왔다.  그래서 나중에는 구린내 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고 모든 역사를 그렇게 했다는 테두리 안에서 기억해 왔다.

 그 결과. 나는 일본사회 전체가 역사라고 하는 <전쟁>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 하게 되고 말았고 지적퇴폐가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진행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는 어느 사립대학에서 사회학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본의 근현대사를 정말로 모르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들어 보니 고등학교에서 일본 역사는 배우지 않았다는 학생도 있다. 교육과정에는 일본역사가 필수과목이 아니고 선택과목이 되어 있어서 죄다 복잡한 일본사를 피해서 세계사를 선택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는 아시아의 국가들이 <일본은 침략을 했기 때문에 사죄하라>고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따라 이야기 하면 상대가 말하는 대로 사죄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란 걸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이해한 다음에 정확히 반론하고 혹은 공통의 기반을 만들어야 토론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소화 21년 (1946년) 4월, 나는  소학교 1학년생이었다. 그 즈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에서 자주 영화관에 데려가서 미국이 전쟁 중에 찍은 전투기록을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일본특공대의 비행기가 차츰 격침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소학교 2, 3학년 학생들의 보고 있는 가운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가 박수를 치고 있나 봤더니  교사들이었다. 내 자신에게 그 기억은 정신적인 상처가 되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이런 것들이 평화 교육이었다.

확실히 패전직후는  3년 8개월의 태평양전쟁이 계속 되고 있어서 <아아 괴로움이 싫어, 두 번 다시 전쟁은 싫다> 라고 말하는 감정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전쟁에 대해서는 반성의 빛은 짙어지고 내용없이 빈 껍데기가 된 감정론만으로 말해지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너무나도 일원화된 역사관의 반동으로서 지금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대동아전쟁을 자학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여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똑같은 감정론으로 역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평화와 민주주의>로 전쟁을 말하는 사람들과 동전의 양면처럼 같아 보인다.

게다가 또, 자주 <전쟁을 말로 전해 준다>는 전쟁체험자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전쟁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은 매우 울림이 크지만 이런 것에도 어떤 종류의 트릭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전쟁체험자에게 <태평양 전쟁이란 건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떤 이는 <남방의 전선에 동원되어 총격전과 기아 로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왔다>고 대답하고 또 어떤 이는 <하루 종일 참호의 구멍을 파고 있었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더러는 옥쇄의 전쟁터에 있으면서 <내일 죽을 건가 돌입해 들어갈 건가>하는 아수라장의 희생자도 있는 반면, 동경의 대본영의 한 집무실에서 잘 먹고 잘 입으면서 도면을 이리 보고 저리 보던 지도자도 있다. 저마다 백사람이면 백사람 모두의  다양한 전쟁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전쟁이 삶의 전체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긴 하다. 분명히 그들은 실제 전쟁의 한 부분을 알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전쟁에서 무엇이 일어났었는가는 아무도 알고 있지 않다.

자신의 사적인 체험을 보편화해서 얼마나 역사의 흐름과 겹쳐 만나는 게 하는 것, 그것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비로소 지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그저 단순히 전쟁의 체험을 말하는 것과 전쟁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말로 평화의 진면목을 생각한다면, 전쟁을 알지 않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전쟁의 속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때뿐 이었던 전쟁을 체험하면서 전쟁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다. 일본 사회 전체가 전쟁의 역사를 망각해 가는 것이 하나의 진보와 같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느낌마저  든다. 국민적인 성격의 약함, 교활함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일본사람은 전쟁을 아는 것에서 도망쳐왔다.

런던에 있는  <전쟁박물관>은 제 1차 전쟁 이후의 전쟁의 역사를 담담하게 전시하고 있다. 나치 독일의 제복이라든가 무기 까지도 기록화 해 두었다. 그러나 결코 비난조로 진열한 것은 아니다. 또 그 건물의 입구에는 <전시를 잘 보십시오. 정말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도 스스로 생각해 볼 일입니다> 라는 관장의 말이 있다.


 지금 새삼스럽게 나는 태평양 전쟁 그 자체가 일본의 국책을 따르는 한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3년 8개월은 당시의 문명론의 단계나 혹은 역사인식, 전쟁에 대한 사고 방식 등 일본인의 국민적 성격이 완전히 응축되어 있는 최고의 교과서이다. 태평양 전쟁을 통해  무한한 가르침을 이끌어 내는 일이 가능 할 것이다.

대중화된 현대사회에서 정확한 역사를 검증하려고 시도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 역사를 역사화 해서 제시하려고 한다는 그 정도로도 반드시 <침략의 역사를 전제해라> 든가 <자학적 역사관으로 이야기 하지 말라> 는 등의 목소리가 들끓어 오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선악의 이원론만으로 해결되는 물건이 아니다. 그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무엇을 위해 310만의 일본인이 죽었는가 확실히 응시해야 한다.

역사를 역사로 돌리면 먼저 단순하게라도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확인하려고 하게 되고 그것을 보편화 한 후에 치밀하게 보고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 내게 된다. 그  위에 <그 전쟁은 어떤 의미였는지, 왜 패했는지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인가>하는 것을 명확히 하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어쩌면 이미 늦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 나라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태평양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피해 버려서는 결코 그 답을 얻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 그 최고의 기회가 아닌가생각한다.

*****************************************************

여기 까지다.

지금부터 8월까지의 독서는 일본에 관한 것들이 될 것이다.

책과 다시 친해지자.  7월의 달이 가고 8월의 달이 뜨고 있다.

   (2006년 7월 29일 토요일, 쓰고, 썼던 글 옮겨 적다, 후니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