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읽기/히로히토

자몽미소 2006. 8. 13. 19:08
<히로히토-신화의 뒷편>, 에드워드 베르 지음,을유문화사

 

1945년8월 15일을 일컬어 우리가 광복의 날이라고 말하는 대신, 일본인들은 종전의 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년 8월 15일은 종전기념식이 열리고, 그 악랄한 전쟁을 끝내준 히로히토 천황을 기린다.

과연 <쇼와천황>으로 알려진 이 히로히토가 그의 말처럼 국민을 위해서 전쟁을 끝마쳤는가? 그렇다면 국민을 위해서 그 전쟁에 관한 적절한 사죄를 하였는가? 아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이후 새로운 제스쳐를 통해 자기 목숨을 구했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속과 겉이 다른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1급 연기자였다. 

<히로히토,신화의 뒷편>의 저자 에드워드 베르는 일본이 점령한  만주국의 황제 푸이의 일대기를 그린 <마지막 황제>의 저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푸이의 일대기를 밝혀 나가는 과정에서 히로히토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천황의 숨겨진 이야기를 밝히고자 했던 게 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 살면서 느끼는 하나는 우리나라 보다 일본이 훨씬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는것이다. 민주주의나라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천황제의 유지에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것이 확연하게 보이지만, 그래서 바른 지식인들은 국민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펜을 통해 알리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 나라의 천황제는  유지되고 국민들은  천황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도록 금기시되는 것처럼 보인다. 천황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권의 배후에 있으며 그들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 진실을 말하면 칼을 들이대거나 비열한 위협을 서슴치 않는 집단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관심을 둔 것은 히로히토 개인과 그를 둘러싼 일본군국주의 자들의 권모술수이다. 히로히토가 항복을 한 후(일본인들은 결코 항복했다고 하지 않는다,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표현한다) 서방에서는 히로히토가 전쟁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지만 또한 여러 사람들이 히로히토가 전범이 되지 않게 도왔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 맥아더이고, 맥아더와 히로히토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서로간의 이익을 나누어가졌다.

히로히토를 옹호했던 집단들은 히로히토가 군국주의자들의 압력에 못이겨 전쟁에 동조했을 뿐, 평화를 원하던 인물이었음을 증거하고자 한다.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증언하면서 전범재판에서 천황만세를 외치며 죽어갔고 미국은 천황을 앞세워 그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는 <속과 겉이 다른 사람, 히로히토>를 분석했다. 550여 페이지에 인용된 여러 증거와 인터뷰를 여기서 다 거론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이 세상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다면 바로 히로히토와 같은 인물, 그런 인물들이 천성적으로 타고 나온 성격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결코 앞에 나서서 자기 감정을 내 보이지 않으면서, 자기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애매모호함을 무기로 가지는 사람들이 역사에 거론되는 사건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히로히토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 있는 집단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나기도 했다. 책읽기의 어처구니 없는 결과이겠지만, 나에겐 그랬다. 자꾸 내가 겪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겉다르고 속다는 사람들과 사는 피곤한 이 세상.

 

1926년부터 천황이 되어 1989년 죽음에 이르기 까지 63년의 세월동안 천황의 자리에서 자기 안위에 매우 놀라운 처세를 했던 인물, 히로히토를 읽는 일은 매우 씁슬하다. 이 책에 나오는 우리 나라, 우리 나라의 백성, 또 일본의 양민들에 대한 털끝만큼의 양심도 없는 한 인간을 참아주며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권모술수와 서로간의 힘 겨루기 속에서 파생되는 정책의 변화와 전쟁의 과정을 읽노라면,

그 과정 속에 이름없이 죽어간  힘없는 영혼들이 너무나 억울해진다. 뭐 이런 것(일본 군국주의와 히로히토)에게 이렇게 당하고 말았을까, 이런 것들에게 권력을 내놓고 우리가 왜 그렇게 당해야만 했을까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는 참을 인 자 여러 개가 필요했다는 걸 부연설명해 둔다.

 

내일은 하루주꾸 공원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겨우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역사의 과오가 보잘것 없는 한 인간의 무책임과 양심없음에서 원자폭탄같은 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부시도 이후 역사가 심판할 악의 인물이고, 중동의 포화도 다 사람이, 이권과 관련된 인간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약오르게도 악은 너무 오래 힘이 세고, 반성을 모르며, 자기 합리화에 달변인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해하는 단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한다. 히로히토의 시대를 쇼와라 일컫는다. 昭和,  밝은 평화를 이루었다니, 또 한 번 어처구니가 없지만 아직도 일본의 권력들은 그렇게 믿으라면서 힘없는 사람들을 벙어리로 만들고 있다.

(2006년, 8월 13일, 후니마미)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권함

1)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오오누키에미코 지음/모멘토

-카미카제로 목숨을 바쳤던 젊은 병사들의 기록들을 통해 잔악한 일본병사이기 전에 국가라는 열정에 매달렸던 영혼들을 들여다 본 책

물론 이 사람들이 천황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극구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리고 이들의 기록도 전쟁과 죽음에 관한 고뇌의 흔적을 보여주긴 했으나 어떻게 그렇게 자기 목숨에 관해 권력이 가르쳐주는대로 움직였을까, 읽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책.

 

2)화려한 군주(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다카시후지타니/이산

-메이지유신이후, 근대일본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국가의례가 국민을 동원하면서 새롭게 전통으로 만들어 나갔고 국가의 공식문화를 만들어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

메이지 이전엔 천황은 쇼군보다 가난했었지만, 천황을 중심 축에 놓고 정권을 가지려던 에도 변방의 권력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가면서 이 천황제도가 유구함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입력켜 나갔다.

 

3)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했다/고모리요이치/뿌리와이파리

-'종전조서 800자로 전후 일본을 다시 읽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종전조서가 만들어진 과정과 왜 1945년이전까지는 강력한 천황이던 히로히토가 갑자기 얼굴을 바꾸어 '상징천황'이 되었는지, 왜 그가 전쟁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파헤친 책.


 

4)난징대학살/아이리스징/끌리오

-일본이 아직까지도 부정하는 난징대학살에 관한 보고서인 이 책을 읽고 나면 일본 육군의 만행에 진저리가 쳐진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그래서 전쟁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임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5)근대일본/이안 부루마/을유문화사

일본바다에 흑선이 나타난 시기부터 도쿄 올림픽까지의 기간을 통해 어떻게 일본의 정치와 권력이 변모하는지를 살펴본 책.

조금 어렵게 읽었지만, 읽고 나면 일본의 근대사의 가닥이 어렴풋이 보이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