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진짜 이야기

자몽미소 2006. 9. 18. 03:08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에 대하여


1. 불행한 인연


그의 눈에서 살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무살이었죠, 제 나이. 춘천 어느 동, 어느 집, 문간방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맘을 솔직히 말한 밤이었습니다. 밤새 실랑이를 하다가 새벽녘에 그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말 안 들으면, 너를 죽여 공지천에 넣어 버려도 아무도 몰라, 너의 행방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도망 갈 생각 마, 너 있는 곳 어디든지 쫓아가서 배반한 너를,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어. 사관학교에서 사람죽이는 일까지 배워왔다는 그의 말은 사실처럼 보였습니다. 중퇴한 그 학교에서의 일을 말할 때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그 사람, 나 하나 없애는 건 아주 간단히 처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그 후부터 죽지 않기 위해 그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스무 살 가을에 처음으로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 이후엔 제가 잘못 왔다고 제주도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도 않았고요. 내가 그와 함께 살기 전 6개월 동안 함께 살았던 여자와 임신을 시키는 바람에 고등학교에서 자퇴를 하게 된 다른 여자에 대해서도  더 물어 볼 수 없었습니다. 나와 살고 있는 동안에도 고향에 내려갔다 올 때는 그녀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전에 그와 살을 섞었던 두 사람은 자매였습니다, 나를 데려가기 전에는 언니와 6개월 계약 동거를 했고, 그 전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동거한 여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와 편지를 하는 동안 상상하던 맑은 영혼의 아름다운 남자는 누구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붙잡힌 심정인 나는 사람으로서는 그러면 안 되는 일을 한 그를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 화장실에 몰래 가 울면서, 왜 내가 이 곳에 있는지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는지 궁리에 궁리를 했지만, 내 수중엔 돈 한 푼 없었습니다. 겨우 친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여 구조를 요청한 전화, 그런데 시외 전화비가 걱정 되었는지 그 집의 주인 아줌마가 남자에게  시외 전화한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공포의 밤이 이어졌지요.

그 자매 중에 언니가 찾아온 날, 처음엔 당황했는지 그녀를 그가 전에 같이 살던 누나라고 소개했는데  그는 나를 떼어내고 그녀와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 날 셋이서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 같이 밥을 먹고 그녀가 나를 노려 보면서 아가씨도  정신 좀 차리라고 하고 돌아갔던 그 일에 대해서도 내가 정신 차린 사람이라면 내 입장을 분명하게 말하고 그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따져 말해야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대로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못하고 그를 믿어야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러나 그의 말에 세뇌가 되었던 나는 그를 배반하고 도망가다가 잡히면,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뉴스거리가 될 줄만 알았습니다. 그는 늘 말했지요. 자기는 서울역 앞에서 발가벗고 춤도 출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하면, 제주도의 너희 부모까지 죽인다. 거짓말 같애? 라고 흐흐 웃을 때 나는 그의 손에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그를 믿은 건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아니라, 나를 죽이겠다는 그 말이었습니다. 그 후론 제 입에서 제주도의 제 자도, 제주 바다와 바람에 대해서도,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 부모님이 계신 곳, 다니던 대학이 있던 제주도의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맹세를 하라 해 맹세를 하고, 제주도에 더 이상 내 발로는 갈 수 없게 하기 위해 거짓 편지들을 쓰라 해 편지를 썼습니다.  학과의 교수님들에게는 학교를 자퇴하겠으니 휴학 처리를 자퇴로 처리하락 했고, 또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나를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함부로 말을 하는 편지를 쓰라 해 그렇게 했습니다. 50 통이 넘는 편지를 썼지요. 조금이라도 예의가 있어 보이는 편지글은 그가 퇴자를 놓았기 때문에 더 심한 모욕을 주는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춘천의 소인으로는 소재지가 탄로 나리라고 생각한 그는 서울에 가서 그 편지를 부치게 했습니다. 편지를 보내면서 나는 내가 보내는 모든 편지가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사라져 버린 제자를 휴학 처리 했던 교수님들은 학과 회의를 하여 퇴학 처리 하자고 했고,  <아픈 척하지 말고 죽어 버리세요> 라는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더 이상 사라진 딸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고스란히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내 방의 책과 소지품을 다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더 제주도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춘천 어디선가 죽게 될 것을 무서워한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나의 형제들과 부모, 지인들과 선생님들까지 모욕을 하면서 내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학생인 그는 학교를 다녔고 학생이었던 나는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는 나를 데리러 오곤 했는데 가게의 남자 직원과 함께 이야기 하다가 웃는 것을 목격 당한 날, 어쩌다가 명랑한 날도 그는 무서웠습니다. 밤새 반성하고 뉘우치며 잘못을 빌어야 아침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는 머리를 박고 엎드리거나 방 구석에 거꾸로 서 있는 상태에서 생각해야 했지요.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요, 때려서 울면 웃으라고 하고, 웃지 않으면 또 때렸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한 그는 슬퍼하는 나를 달래며 자기가 너무나 나를 사랑해서 그렇다고 용서해달라고 아기처럼 빌었습니다,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빌 때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과 사는 것 같았습니다. 내 마음이 더 이상은 어찌 해 볼 수 없어 작고 작아지면 울면서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 남자를 두려워하는 동안 서서히 나는 내가 참으로 못난 여자인 것 같았습니다. 얼굴색도 희지 않고, 날씬 하지도 않고, 제주도 사람이라 서울 아가씨처럼 상냥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음식도 잘 못하고, 무엇 보다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못된 성격인 나를, 얼굴 색이 하얗던 전의 여자를 버리고 선택해 주었으니 고마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세뇌되어 갔습니다.

아이가 들어선 후 몇 번을 지우다가 홀로 계신 어머니와 함께 있으라고 해서 그의 고향집에서 갇힌 듯 살았습니다. 아이를 낳았고 그는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부모가 되는 사람들의 너그러움은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그는 교육대학 3학년이었을 뿐이니까요. 내 나이 22살, 그의 나이 24살, 하루는 나의 어떤 말에 기분이 나빠진 그가 얼굴이 변해가기 시작하더군요. 아이 할머니가 딸네 집으로 가 놀다 오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집에는 아이와 그와 나, 셋 밖에 없었습니다. 말다툼은 별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웃집과 전기미터기를 함께 쓰고 있었는데, 왠만하면 우리가 양보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한 것에 그가 화가 난 것입니다. 시집이라고 깔 본다고요, 자기네 편을 안 들고 남의 집 편을 든다고요. 명색이 교육대학생인 그 사람이 이웃집과 전기세를 나누는 일에 꼭 자기 어머니처럼 절대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게 못마땅하였던 제가 혹시 너무 바른 말 하듯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조용히 마당으로 나가 도끼를 들더니 장독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간장이 콸콸 마당을 적셨습니다. 그 다음엔  개를 죽이려 했습니다. 개는 캥캥 거렸고 다음 차례, 부엌에서 돌돌 떨던 나는 방에 누워 있던 아기에게 마음이 가더군요. 그가 내 아이를 내리찍을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몸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어떻게 도망쳤는지 모릅니다. 읍내의 여관 방에서 뜬 눈으로 보내던 그 밤에 젖이 말라 버렸습니다. 아이는 배가 고파 울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뒷날 아침,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이의 집에 갔다가 그에게 들켰습니다. 읍내와 떨어진 집에 돌아왔더니 할머니와 누나와 매형들이 다와 있더군요.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내려 놓으라 하더니 읍내로 가자고 하더군요. 할 일이 있다구요. 그 날, 그는 내가 다녔던 읍내의 모든 집과 그 전에 알고 있던 읍내의 가게와 그 가게 사람들에게 한 사람씩 찾아가 잘못을 빌라고 하더군요. 무슨 잘못을? 하여튼 잘못을 빌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라고 시켰습니다. 못하겠다고 못했습니다. 일어날 일이 뻔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미친년처럼 맞을 게 뻔한 그 모습을 피하기 위해 나는 가게 마다, 집마다 한 번이라도 발걸음을 했던 곳은 모두 가야 했습니다. 그는 가게 옆에 서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봤구요. 그의 요구는 내가 읍내의 어느 집에도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화장품 가게, 털실 가게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횡설수설 하는 내 말을 들어야 했고, 저 옆에서 노려 보는 그를 의식한 나는  미안하고 창피한 것을 무릅쓰고 뭔가를 말했습니다. 읍내를 다 돌아다닌 다음에도 화가 안 풀린 그는 자기의 누나와 누나의 남편들을 모이라 하고는 나를 성토했습니다. 그가 전 날 화가 나게 한 것 때문에 장독대가 깨지고 집이 난리가 났으니 모든 잘못이 나에게로 모아졌습니다. 그들도 여자가 고분고분 말하지 않았다고 질책하고 간장 독 깨는 걸 말리지 않았다고 질책하고, 두 번째 누나의 남편은 한 번 도망갔던 여자는 항상 도망가는 것이라고, 남자 맛을 아는 여자는 혼자 살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따뜻한 이는 없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는 무서웠고, 죽기 살기를 결심하고 도망쳐 온 제주도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도 무서웠습니다. 눈에서 번쩍 하는 빛이 돌 때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짧았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제주도 집에서는 그를 덜 무서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고 대학을 다니던 대학생에서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2. 위험한 불행


누가 누구를 죽이는 문제는 무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처럼 우리 옆에 늘 붙어있는 위험인 것 같았습니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첫 남자와 헤어지고 도망치듯 결혼한 남자와는 9년을 살았습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이 싸웠기 때문에 이혼하자는 말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혼한다고 할 때마다 언제든지 쿨하게 헤어져 주겠다고 큰 소리 치던 남편은 정작 이혼을 하겠다는 내 의지를 확인하자 치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뒤에 남자가 있다고 그 남자를 잡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하던 일이 엉망이 되고 기울어져 이제 곧 살던 집도 은행 빚에 넘어가게 된 마당에 마누라의 남자관계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남편은 정말 가엾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진 남자는 같은 다세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기 신세 한탄을 하고, 친척들을 만나 신세한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내가 바람을 피운 것 때문에 남자로서 이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밤에 집에 와서는 그 남자와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비가 오던 날 썼던 일기에 <오늘은 하루 종일 나도 젖는다> 라는 글귀를 내밀며 어떤 놈에게 벌려 주었냐고 얼마나 좋았냐고, 그 문장을 쓴 상황을 아무리 설명하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내가 인정할 때까지 고집을 피웠습니다. 자기 눈을 보면서 잘못을 빌라고 자기에게 신통력이 있어서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 다 안다고, 눈길을 피하면 잘못 한 게 있어서 그렇다고 하고  그래 나 그랬다, 하고 대들면 때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더러운 년이라고. 그렇게 술과 자기 연민으로 망가지고 있던 남자는 나의 이혼 제기에 점점 이상한 꼴이 되어 갔습니다. 이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 내가 이제 두 번이나 이혼한 사람이 되란 말야, 하고 외쳤습니다. 그에게 내가 참 잘못 하고 있구나, 내가 살려고 그를 죽이겠구나 싶어 내 말을 거둘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와 똑같은 반복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연민 때문에 이제까지 9년이나 결혼생활을 유지했는데, 그러나 나는 더 독해지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안 끊으면 나는 맨날 똑같은 구렁텅이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 이혼해야 한다고 내 마음을 다졌습니다. 이번엔 끝내자 싶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헤어져 주겠다던 남자는 자존심 때문에 내가 자기를 버리는 걸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나에게 와서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더군요. 애원하다가 위협하다가 남자를 들먹이며 희롱하다가.., 몸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몸이 그를 안고 뒹굴면서 사내애들 붙은 것처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치근덕거리고 칭얼거리는 어리석은 이 남자가 정말 미웠습니다. 나는 힘이 센 남자가 되어 그를 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어린 애 보다 유치한 그의 행동에 화가 나고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내라는 이유로 매일 그를 상대해야 하는 나에게 화가 나고,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이 밤과 밤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때 문을 받히려고 종이로 싸서 방 귀퉁이에 있던 벽돌이 보이더군요. 그 벽돌을 쥐었습니다. 쌍년, 미친년, 화냥년 욕을 해 대는 그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소망과 증오가 머리끝까지 올라갔습니다. 화냥년이라면서 나에게 침을 뱉었을 때 나는 벽돌을 들었습니다. 그의 더러운 입을 찍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고작 이것 밖에 안 되는 너 같은 새끼, 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때 자던 아이가 깨었습니다. 아이는 놀랐는지 가만히 일어나 앉더군요. 어떻게 수습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아이가 잊어 버렸기를 바랍니다. 그 남자는 정말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웠습니다.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은 그랬습니다.


3. 벼랑에서


그러나 미워하는 건 너무 힘듭니다. 오래 미워하려면 내 몸도 미움의 에너지가 계속 나와야 하는 거니까요. 남편과 살던 집을 나와 아이와 둘이서 살았습니다. 옷과 몇 가지의 책만을 들고 나왔습니다.친정 아버지에게서 받은 용돈이 조금 있었습니다. 방값을 주고 나니 손에 십 여 만원이 전부였습니다. 하루라도 안 보고 사는 게 좋았던 나는 무슨 일을 해서도 아이와 나, 둘이서 먹고 사는 일은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자유의 땅을 밟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잠깐의 착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전혀 여성의 입장을 들어 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원하지 않는 이혼은 가능하지 않았고, 그 사이 아무리 내가 맞으면서 살았고, 폭력이 있다고는 해도 그 모든 장면을 기록하여 두지 않는 한 증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딴 집에 살았으나 이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나와 맨 먼저 일을 잡은 곳은 학원이었습니다. 보습학원의 국어선생을 하면서 오전에는 보험회사에도 나갔습니다. 시험을 보고 교육을 받는 동안 그는 내 뒤를 캐고 다녔고 교육생 중에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기만 해도 그 사람과 부도덕한 관계라고 우겼습니다. 보험 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찾아갔던 회사 사장에겐 위협하는 전화까지 해서 내 계약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나를 도와 주던 사람들은 그의 전화에 힘들어 했습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이혼이니 위자료를 달라고 졸랐습니다. 나에게 돈이 없다는 걸 다 알면서도 자기가 피해자니까 위자료를 받아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이혼하고 싶은 사람이 이혼하기 싫은 사람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결혼해서 자기가 손해 봤고,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이 억울하니 위자료를 달라고 했습니다. 10년 후에 다닌 대학, 사실 나는 대학 학자금의 90% 이상을 장학금으로 다녔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만 돈을 벌지 못했던 것 뿐인데, 그는 자기가 대학을 보내 주었으니 위자료를 주어야 한다고 우겼으며, 내 눈 수술에 200만원이나 들어갔다고 그것도 달라고 했습니다.

친정 아버지는 이혼 할 거면 미리미리 왜 준비해 두지 않았냐고 멍청한 딸에게 화를 냈습니다. 딴 주머니라도 있든지,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때렸을 때마다 병원에 찾아가 진단서라도 끊어 두지 않았냐구요. 그와 사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보험회사 외판원과 학습지 선생을 했었지만,사업 한다고 다 날려 버린 사람에게 달라고 할 것도 없었고 그 동안의 살림이 무얼 모으면서 사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퍼렇게 멍든 눈과 째진 입의 얼굴을 하고  병원을 찾을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창피하니까요, 멍이 가라앉을 때까지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결혼 생활 내내 친정에도 숨겼지요. 이혼할 날을 위해서 때릴 때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준비해두는 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나 또한 그랬구요.

그는 별거하는 동안 매일 밤 전화를 해 오고 쌍욕을 하고 내가 살던 집에 몰래 와서 일기장을 찢어 가고 뭔가를 가져 갔습니다.하루는 법원에서 문서 한 장이 날라 왔습니다. 내가 가지도 않은 장소에서 내가 있지도 않은 시간에 나는 어떤 남자와 간통을 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그것은 위자료 2,000만원으로 그의 정신적인 상처를 위로하라는 이혼청구소송이었습니다. 물론 그 재판에 저는 나갔습니다.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요. 그러나 정작 그 소송을 한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그렇게 소송을 냈다는 것만으로 그는 내가 간통으로 이혼을 당하면서 2,000만원을 위자료로 주었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가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물으면 이혼청구소송을 냈고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고 말하고 내가 대학에 다니면서 어떤 남자와 바람이 났다고, 어쩔 수 없이 이혼하게 되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렇다고 믿은 것도 같습니다. 아래층의 여자가 저를 보는 눈초리, 그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되었던 사람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 저에게 보내오던 어떤 경멸, 심지어는 같은 다세대에 살던 아이의 엄마는 우리 집 아들과 놀지 말라고 아이에게 주의를 주기까지 했습니다. 좁은 동네에서 나의 이혼의 이유는 남편이 하도 억울하다고 눈물로 하소연 하는 바람에 남편이 말하는 대로 믿어졌습니다. 그 소문들은 지금도 그렇게 하나를 더 보태거나 줄이거나 부풀리면서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만.

자기의 얼굴을 때린 우리 아버지를 폭력으로 고소하겠다고 매일 전화를 해 왔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놓았다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60대의 우리 아버지, 술을 마시고 찾아 왔던 사위를 내친 적이 있었지요. 그래도 안 나가니 손이 올라갔었습니다. 아버지가 때려서 안경이 깨어졌다고, 안경이 깨지면서 코가 깨졌다고, 그래서 폭력이라고 아버지를 쳐 넣겠다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 다음은 아이를 데려가도 돼? 하고 부드럽게 물어 왔습니다. 아이 문제만 나오면 침착하지 못하는 나를 그는 늘 그런 식으로 건드리고 지치게 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그래 너 새끼니까 네가 데려가! 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데려갈 마음이 전혀 없이 그렇게 말하는 줄을 알고 있었지만, 홧김에 아이 앞에 나타나 데려간다 뺏는다 싸우는 꼴을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약점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같이 살았던 9년 보다 별거를 한 6개월 동안은 환멸에 환멸을 보태는 시간이었습니다.그래서 하루는 제가 저를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더 괴롭히지 마라,나도 살고 싶지 않거든.팔을 그었습니다.피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죽기를 바랐습니다. 더는 치졸한 전화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아이 말만 꺼내면 뺏길까 두려워 고함지르며 싸우는 내 꼴도 보기 싫고, 내 꼬인 인생이 어디까지 꼬이는지 보고 싶지도 않았고,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울다가 위협하다가 때리다가 달래는 남자들에게만 걸리고 마는 내 팔자도 싫었습니다. 서러웠고 잘못 풀리는 실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었고, 고단했습니다. 나를 죽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내가 미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정말 미웠습니다. 피가 났습니다. 그러나 곧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보면서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이상하다며 놀랄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아이가 불쌍해서, 그리고 이렇게 죽기엔 아까운 내가 불쌍해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팔에 붕대를 감았습니다. 그것은 결혼을 후회하며 약을 먹었던 결혼 초기의 자살기도와 비슷했습니다. 두 번 다, 나는 죽겠다고 결심하였으나 결심하는 순간  살아야 될 이유를 정말 열심히 찾았습니다. 난 살고 싶었습니다. 잘, 제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4. 죄인 것과 죄 아닌 것의 경계


나도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법은 나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신문에 내 이름이 올라가면 진실이 내 편에 설까요? 진실이 내 옆에 오려 했어도 어떤 조작이 어떤 불운이 무엇을 어떻게 했을지 그때 아이가 깨지 않았으면 나는 한 남자를 죽여 버렸을까요, 또는 내가 시작해 놓고 그의 손에 죽어 있을지도 모르고요. 죽지는 않았어도 살인 용의가 있었던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부부 싸움 끝에 일어나는 죽음, 형제간의 말다툼이 부른 죽음의 공통점은 정말 우연히 감정의 교류가 혼란스러워진 그때 일어납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는 안 했는데 홧김에 일어난 사고, 내 일이 될 수 있는 것이었죠.

우연인지 다행인지 저는 살인의 장면에서 또는 자살의 장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서 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그래서 아무런 동정을 해줄 필요가 없는 악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법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이름 붙여진 어떤 이들은  사회와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도소의 담장 안에 가두어져 있고 어떤 이는 사형수의 이름으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고, 교도소 벽 하나를 두고 우리는 죄인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 딱지도 받지 않았으니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나쁘지 않으니 착한 사람인 것처럼 하고요.

그러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어쩌다가 범법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떤 이가 불행의 우연이 겹쳐 교도소의 담 안에 있다면, 나는 다행의 우연이 겹쳐 교도소의 담장 밖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교도소 담장 안, 싸늘한 감옥,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 그건 나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운명이었습니다.



5.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죽고 싶어 하던 여자와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의 만남, 공지영의 소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서로 길이 다른 철로에 놓인 듯하던 두 사람의 삶이 어느 날 하나의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서로 진짜 이야길 하기 시작하면서지요.진짜 이야기, 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서로 진짜 이야길 하자구요. 

윤수는 자기를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슬프고 가난한지 왜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랬으므로 그는 모든 슬픔을 미움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간단했으니까요.슬퍼하는 것보다는 미워하는 것이 세상을 살기에 편했으니까요.그러니 자기 가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무도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일깨워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유정은 겉으로 보면, 아무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사는 것 같습니다. 돈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형제들도 판판하고. 그러나 진짜로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기 안의 상처를 내 보일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많은 것이 갖추어진 삶으로 보일지라도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몇 번 씩이나 자살 기도를 하던 그녀는 사형수인 윤수를 만나 자기의 진짜 이야길 합니다.

그 두 사람, 서로 진짜의 이야길 하면서 서로의 가슴을 보았습니다.너무나 굳어 버려 마음까지 죽음이 온 윤수에게 따뜻한 꽃이 있다는 것을,사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유정은 알아 보았습니다. 유정의 가슴 안에 가득한 아픔이 실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윤수가 다시 보았습니다. 그래서 둘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윤수,자기 몫의 죄값으로서 죽어 버리는 것이 제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윤수,세상에 남아 할 일도, 미련도 없다고 생각하던 윤수는 다시 살고 싶어졌습니다. 유정도 이제 더는 자기가 자신을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자기 목숨이라고 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그녀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진짜로 만날 수 있었던 시간, 그 속에 행복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형수 윤수와 그를 사랑하게 된 유정의 시간입니다.



6. 소설의 질문



내 일상의 경계를 넘으면 이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하물며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인간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일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 같기도 합니다.그 일 말고도 관심 가져야 할 세상일은 많고, 관심을 가진다 해도 우리의 일상은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키기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법이 심판하여 죄값을 물게 하는 사형수들이라면,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그들을 무엇하러 봐 줘야 하나요.

그러나 정말 그들은 죽어 마땅한지요, 그것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인간들에 의해 죽는 것인데. 똑같은 죽임이 법에 저촉되었다 해서 그들은 죽고, 법에 의했다 해서 어떤 사람은 일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 지금의 사형제도. 

이 소설은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문제를 묻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 법적이다는 정당성으로 우리 인간들이 계속 지속해도 될 일인가 하고요. 사형수들의 대다수가 기정사실화된 죽음 앞에서 천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사형제도의 엄격한 적용 때문인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형수들은 정말로 선한 인간으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사형수들은 인간에 의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사형수의 딱지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사형수들은 죽어 마땅할 사람인가요,죽어 마땅할 사람은 꼭 사형수 뿐이기만 한가요.법에 저촉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닌 우리들은 그래서 언제나 살아 마땅한 것인가요.

하느님이 보시기엔 다 같은 죄인, 언젠가 죽을 운명의 사형수들인 우리들. 그러나 죽음을 잊고 사는 우리들은 사는 일에 너무나 바쁩니다. 알아야만 하지만 몰라 버리는 세상 일이 많아지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억울한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미움을 키우게 되는 건 아닌지요. 그래서 사실 우리들의 메마름 때문에 어떤 이들은 교도소의 담장 안에 갇히고 우리들은 멀쩡히 교도소의 담장 밖에 있는 건 아닐까요? 인간이 만든 법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거나 인정 없다는 것을 그 죄로 묻지는 않으니까요. 

(2006년 9월 18일, 후니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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