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 외출

자몽미소 2006. 11. 18. 09:05

어제 온 소포 중에 외출이 있었다.

주문해 놓고는 언제 주문을 했었는지를 잊어 버린 책이었다. 어디선가 이 책을 소개한 글을 보고 주문을 한 것이리라. 작가는 김형경, 책 표지를 보면서야 아! 이 책이구나 했다. 이 책인 줄 알았으면 굳이 살 필요는 없었겠는 걸.

영화를 봤었다. 지난 겨울이었다, 일본으로 오기 전으로 기억한다.

배용준과 손예진이 나왔다. 영화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잘 만들고 내용이 어떻고 하는 걸 떠나서 꼭 보고 싶은 영화이거나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가 아니어서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말이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을 것이지만  이 영화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공부용 교재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예진과 배용준이 데이트를 할 때 동어 반복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용준이 무슨 말을 하면 손예진이 다시 그 말을 받아서 물어 보는 대화법은 한국어 교재로는 그만이지 않나? 했다. 곧 일본으로 떠날 계획이었던 때이고 일본에서 한국어 교사를 해도 좋겠다 여기던 때였다. 그러나 했던 말을 또 받아서 이야기 하는 방식을 지루해 하는 나로서는 영화가 그저 그랬다. 또 편견이 있다면 배용준의 말없음표와 손예진의 착한표 연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두 배우를 모두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영화에서 그 둘을 봐도 그 배우 때문에 영화가 더 좋지 않다 느낄 때도 있으니, 내 편견이 영화 감상을 방해한 것도 있을 터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했던 말을 또 하고 썼던 단어를 다시 쓰면서 블로그를 한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내 놓은 것은 트집을 잡는 나, 인정한다.

 

책은 영화의 내용과 거의 같았다. 영화에서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것을  작가가 개입해서 말해 주므로 주인공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자꾸 영화의 배용준과 손예진이 겹쳐왔다.  그리고 겹치는 건 또 있었다. 작가 김형경의 말이다

그녀는  주인공들이  주변상황을 보다 빨리 파악을 해 버렸을 때 <중요한 일일수록 아무도 일러주지 않아도 곧장 핵심에 도달하게 되기 마련이다>를  세 번인가 네 번을 썼다. 똑 같은 표현을 여러 번 설명을 하는 작가의 글쓰기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것 또한 내가 이 김형경 작가에게 가진 편견 중의 하나다

그가 쓴 초기의 책은 자전적 소설(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이었다. 국민일보 문학상 수상작이었던 그 책은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그래서 나도 사서 읽었는데 내 경우는 작가의  자기 연민이 강하게 느껴져서  흥미가 떨어졌었다. 두 번째로 읽은 그의 책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이었다. 역시 이 책도 광고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심리학 공부 했다는 증거를 여기 저기 남기는 통에 지루했다. 그래서 김형경에게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책 소개에 이 소설을 읽어 보고 싶게하는 글귀를 만났고 어제는 이 책을 읽었다.

 

영화 보다 소설이 먼저 였으니 영화가 소설이 그려냈던 것을 잘 못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마음의 색깔과 길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각각은 나름대로의 빛을 가지고 있고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배우자가 자기 이외의 사람을 사랑하였던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의 분노와 좌절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이후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심리묘사도 좋은 편이다.

 

불륜을 한 배우자의 배우자끼리의 불륜.

 

그러나 불륜이라는 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도 이 책 속에는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불륜을 한 배우자의 배우자들은  자기들이 한 일은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뜨겁게 확인하며 다시  만날 것도 같다. 소설의 결말은 1년 후의 그들 두 사람을 우연히 추억의 장소에서 만날  것 같은 예감을 남기고 끝났으니까.

 

주인공 서영의 감정은 고요한 물빛 같았다.  주인공 인수는 사려 깊고 다정하여 언제나 찾아가면 그 자리에 있는 나무의자를 닮았다.

 

그런데도 내 호의는 주인공 서영과 인수에게 보다는 그들의 각각의 불륜을 한 배우자인 경호와 수진에게 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아픔이 아니라, 경호가 점점 나빠지는 지점에 있었다. 경호는 아내 서영이 자기를 두고 다른 남자의 품에 있을 때마다 나빠지다가 결국 죽었다. 수진은 차츰 깨어나긴 했으나 회복이 되고 난 후 경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남편이 옛날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래서 이혼한다.

 

내 경우의 기질은 수진 쪽인 것 같다. 오래 참고 기다리고 사랑을 아파하며 뒤돌아서는 쪽은 절대 아닌 모양이다. 서영의 행동은 이해는 했지만 공감이 되지는 않았고 되려 수진 쪽의 노랑색이 마음에 들었다. 수진은 아마 결혼 후에 옛 사랑을 만난 것 같다. 책에는 그런 언급이 없다. 책은 오직 주인공 서영과 인수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그들의 심리묘사와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안심에만 몰입해 있어서 수진과 경호의 이야기는 뒷 배경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뒷 배경의 수진과 경호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수진은 경호와도 사랑을 하고 결혼한 남편도 사랑했던 여자다. 남편에게 숨길 수 밖에 없지 않나? 자기에게 나타난 사랑을 말하면서 괴롭힐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살면서 사랑했던 여자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진 관계도 빨리 깨치고 이혼을 결심한다. 그래서 나는 서영보다 수진이 더 좋다.

 

서영에게 경호는 매우 멋진 남편이고 자상했으며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자였다. 서영은 남편의 외도 장면에서 전혀 다른 얼굴의 남편을 목격한다. 자기 앞에서 보여주던 남편의 모습은 항상 예의 바름 뿐이었지만, 다른 여자와는 장난꾸러기 남자이며 열정적인 모습의 남자, 그 남편을 보고 서영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음에 괴로워한다. 평온했던 결혼생활이 사랑이 아니었단 사실에 화가 나고 왜 그런 것인지 묻고  싶다.

남편 경호의 입장에서 왜 아내 앞에서는 예의 바른 남편이기만 했을까, 수진을 만나면 열정이 일고 천진해지는 그는 왜 아내 앞에서는 그저 성실하고 예의바른 사람으로만 살았을까.

 

 

열정, 친밀, 책임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 얼핏 스치기도 하는 4 사람의 불륜과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였다. 책을 덮으며 만약 이 책의 사실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면 이라고 상상해 봤다. 대부분은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사해 볼 거겠지만 어쩐 일인지 손예진이 연기한 서영은 내 몫의 역할이 아닌듯하다. 역시 나는 서영의 역이 아니라 수진의 역에 나를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어 봤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병원에 누웠는데 당신 눈에 들어오는 여성이 있었어 그래서 어쩌고 저쩌고 했거든.

남편은, < 아, 그런 일 없어!> 한다. 남편이 소설 속 인수의 말법으로 이야기 하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남편을 만들기 위해 인수의 대사 몇 개를 가르쳐 주었다. <당신은 오른쪽 볼이 예뻐요> <당신 몸은 몸 이상이에요> <당신 몸에서는 과자 냄새가 나요> 이런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