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 결혼의 변화

자몽미소 2006. 11. 22. 09:18

사랑에 실패한 세 사람,  삶의 지평이 될 결혼에 실패한 세 사람의 고백이 이 책을 이루는 세 기둥이다.

 

1900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작가 산드로 마레이가 1940년대에 집필했고 1970년대에 다듬은 이 소설은 아내 일롱카와 남편 페터, 그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던 여자 유디트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들이 지난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바로 앞에서 그와 그녀들의 친구, 또는 애인이 되어 그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이야기 형식은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아우른다.  소설 속의 청자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나 소설 밖의 독자가 글을 읽는 시간이 같은 특별한 작법의 소설이기도 하다. 카페에서 술집에서 또는 새벽의 애인침대에서 그들은 지난 삶을 이야기하고 나는 의자에서 이불 속에서 또는 새벽의 차가운 부엌책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이야기의 시간은 서부 유럽의 격랑기였던 1940년대가 중심이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이야기이며 이후 유디트의 이야기는 2차 대전 후의 망명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야기 하는 시간은 같으면서도 각각 다르고 회상하는 시간과 공간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느 부분까지는 같은 시간대에 같은 헝가리 땅이라는 공간 속에 살았던 세 사람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이 소설 <결혼의 변화>를 이루는 핵심으로 보인다. 결혼을 이루는 요소는 사랑의 감정만이 아니라 문화와 계급이라는 환경에도 지배된다는 걸 작가는 말하고자 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이 책의 또다른 중요한 인물 라자르로 나오기도 하는데 라자르가 전쟁 때 개인서고가 무너지자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는 소설 속의 이야기는 산드라마리아가  40여년간 이탈리아와 독일 등 유럽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데서 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여자 주인공 일롱카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부자에도 계급이 있다는 그녀. 남편과 결혼해 보고서야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일롱카는 남편을 매우 사랑했다. 신사이며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 페터를 사랑했지만 허전함과 상실감을 겪는다. 어쩐지 남편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그 비밀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는데, 남편의 지갑 속에 보라색리본끈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견뎌낼 수 없었고 남편에게 맞는 여자를 찾아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해 보아도 아쩔 수 없는 남편에게 맞는 여자를 찾아 부어야 한다고 결심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보라색리본끈의 여자를 찾아 내었다.

 

남편 페터는 어떤 질서 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다. 그는 그것을 시민 이라고 칭한다. 시민계급의 질서는 어릴 때 부터 그를 가둔 감옥이었다. 하지만 그 스스로 거기서 벗어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온 여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급이 그녀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한계점이며 결점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을 떠났고 생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자신의 겉을 지켜나감으로서 자신을 이루는 것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의 열정을 되살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아내를 얻었고 그녀가 바로 보라색리본끈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차츰 환멸을 겪었고 자신이 지키고자 했으며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유디트는 하녀출신이었다. 그녀는 기다림을 알았다. 기다리다 보면 원하는 것이 다가왔다. 들쥐들이 모여 들던 땅구덩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였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만의 힘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그런 위험과 매혹을 발견한 남자는 그녀와 계급이 달랐다. 그가 그녀와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그녀는 거절했다. 남자는 여행을 떠났고 그녀도 차츰 기다림에 지쳐 가고 있었다.

그 남자의 부인이 자기를 찾아와 보라색 리본에 대해 묻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그녀는 그대로 하녀의 삶으로 시들어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기막힌 조화도 부리는 셈이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타인의 욕망 때문에 일어나게 되기도 한다.

그녀는 변신했고, 다시 옛남자를 찾아 왔다. 옛남자는 부인을 버리고 자기에게 왔다. 그러나 그녀도 이 남자에게 실망한다. 실망하다 못해서 증오까지 한다. 왜냐하면 이 남자의 계급은 어떤 불의나 잘못 앞에서도 미소를 띠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녀에서 사교계의 여인으로 탈바꿈 해 봤지만 진짜 부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았고, 자신을 위해 남자의 돈을 훔친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다.

 

 

헝가리가 공산화되면서 부르조아지 작가로 분류되는 바람에 해외망명을 했던작가는 시민계급의 문화와 교양이 하루 아침에 권력의 힘에 의해 와해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 간의 계급을 제대로 뛰어 넘지 못하는 일, 계급이 심어 준 자기의 문화를 벗겨 내지 못하는 것들이 인간 삶을 불행으로 만드는 요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교양과 문화란 무엇일까.

작가는 각각의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교양과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공산주의로 변화되면서 겉으로 제도만 바꾸는 이 체제가 인민을 위한(시민을 위한) 다는 혁명의 기치를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거짓일 수 밖에 없다고, 정치와 권력이 범람하던 시대의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하녀 출신의 여자 유디트가 자신의 젊은 애인에게 건네 주는 교양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통찰이다.<교양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민족이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야>.

그녀가 입성해 보았던 부자들의 세계에서 허식으로 둘러싸인 그들을 비웃을 수 있었던 그녀가 얻은 건강한 지혜이고, 진정한 시민이 사라지는 요즘 시대에 되새겨 볼만한 우리들의 교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와 이해 사랑의 감정과 미움이라는 것이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 소설.

 

내가 말하는 모든 것들.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지켜온 문화 라는 것이 한 발자욱 비껴 나와 다른 문화와 삶의 역사를 가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걸 말하는 이 소설. 

 

나에게는 진실했던 것이 다른 이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거나 나에게는 절실했던 것이 다른 이에게는 기이하고 이해 못할 모순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는 이 소설.

 

그래서 우리 삶은 각각의 오해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 소설. 내가 지금 행복하다거나 또는 그때 불행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그렇지 않은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이 소설.

 

그제와 어제, 나의 하루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