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 사랑의 역사

자몽미소 2007. 1. 3. 12:14

사랑의 역사/니콜 크라우스 장편 소설/ 민음사

 

1.사랑의 이야기를 다면체로 바라보기

 

소설을 열면  열쇠수리공으로 살아가는 노인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이 될 때쯤 장이 바뀐다.

처음엔 어리둥절 했다. 누구 이야기야? 화자는 15살 소녀 알마 이다. 알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위해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에 소설 <사랑의 역사> 가 있다.

 

사랑의 역사는 이 소설의 화자들 모두 공통되어 묶인 주제이다. 소설의 화자들은 지금 사랑의 역사 속에 있고, 그 소설 <사랑의 역사>와 관련되어 현재를 산다.

 

알마의 부모가 사랑하게 된 일은 알마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소설 <사랑의 역사>를 선물 함으로써 발생했고, 알마는 그 소설 속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짓게 된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가 다시 사랑을 하여 새로운 <사랑의 역사>를 만들게 하고 싶어하는 딸 알마, 그녀 또한 지금 사랑을 시작하려는 소녀이며 사랑의 설레임과 흥분과 기다림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살피고 연구하던 알마는 부모의 사랑을 만들었던 소설 <사랑의 역사>를 읽게 되는데 그 소설의 번역을 의뢰한 남자가 혹시 어머니의 새로운 애인이 되지 않을까를 타진해 보면서 어머니 대신 연서를 보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번역한 그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 소설<사랑의 역사>의 역사가 몹시 미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레오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 왔다. 도망 온 미국에서 그는 열쇠 수리공이 되었다. 그는 폴란드에 있을 때 아름다운 소녀, 알마를 사랑했었다. 그 죽을 만큼의 위험과 고난 속에서도 그가 살아날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은 그가 사랑했던 소녀 알마 때문이었다. 나치를 피해 달아나고 알마를 찾아나선 레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의 아들을 데리고  재혼한 상태였다. 레오는 아들과 알마를 위해 그의 존재를 감춘다. 그는 폴란드 땅을 떠나오면서 이미 사라진 존재였다. 그 운명을 감수하면서 살아간다. 그에게 남은 희망은 언젠가 자기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로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글을 썼고 지금도 글을 쓴다. 하지만 전혀 빛을 본 작가는 아니다. 처음에 그는 알마를 위해 글을 썼다. 알마를 위해 글을 쓴 것 중에 하나가 <사랑의 역사> 이다. 그러나 그 소설은 그의 친구에게 맡겨 졌었고 그처럼 도망자의 신분에 있던  친구 즈비가 가지고 있다고 출판하게 된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 로사를 위해서 즈비는 친구의 원고를 자기 이름으로 출판하게 되는 것이다. 로사 또한 이후 그 책의 진실을 알지만 함구한다. 그 책으로 하여 자신들의 인생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의 역사를 뒤죽박죽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오가 친구에게 자신의 원고를 돌려 달라고 했을 때도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집에 물을 넘치게 한다. 원고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사랑의 역사>는 원작가의 의도 없이 친구와 그 연인의 사랑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책으로 세상에 나왔던 것인데  헌책방에서 헌 책방으로 돌고 돌던 그 소설책이 어느 이스라엘 청년에게 들어갔다. 그는 그 소설을 애인에게 보낸다. 애인은 그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만의 <사랑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그 애인이 현재 화자로 나오는 알마의 어머니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가끔 내가 읽은 앞의 장이 지금 읽는 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곰곰 생각해 봐야 했다. 실제의 인물이 책 속에 나오고, 가공의 인물이라고 여겼던 이가 실제의 인물임에 놀라게 되는 일은 책 밖의 나와 책 속의 알마가 또한 같이 경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면체의 소설이라 불러도 좋겠다. 들어보고 옆으로 보고 위에서 보면서 읽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소설.  사랑의 역사란 우연과 실제와 거짓말과 진실이 함께 섞이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책이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 주는 것인가?

불행하지만 유쾌하고 농담이지만 슬프고, 어린 소년이 늙은이가 되어 버린 현실이 아프다가도 돌연 젊은 사랑의 씨앗 같은 게 싹트고 있음을 느끼면서 어떤 역사도 끝 없이 순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도 한다.

 

2. 사랑의 역사

 

원래 글을 쓴 이도, 그 글을 보관했다가 책을 낸 이도 사랑 때문에 그 소설과 연관되고 그 소설과 연관된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버린다.

책을 읽은 이와 그 책에서 감명을 받은 이들이 전염되듯 그 책의 이름처럼 그들만의 <사랑의 역사>를 만들고 다시 내가 지금 잡아 읽은 책 민음사 판 <사랑의 역사> 속으로 편입된다.

 

만약 내가 사랑에 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질 때 수많은 말대신 이 책 한 권을 내민다면, 그리고 그 책으로 부터 어떤 인연과 인연이 맞부딪히고 세월을 만들어간다면 나 또한 다시 이 책을 편입되어 갈 것이다.

 

이 책은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생물처럼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이야기의 핵심과 주변이 한데 어울려 어느 것이 시작이고 끝인지를 알 수 없게 한다. 추리와 상상과 낭만이 함께 어울려져 사랑의 설렘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다시 아들이 죽은 것을 알게 된 후의 노인의 심정 같은 것은 그 처리가 너무나 가벼워서 오히려 그 상황을 읽는 이의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기까지 했다. 나 이렇게 힘들게 살았거든 말하지 않는 주인공 남자, 레오는 끊임없이 긍정적이었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른 다른 소설은 한 때 영화가 되기도 했던 <마농의 샘>이다. 그 이야기에도 물론 사랑이 있다.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두 연인의 사랑을 방해 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마농의 샘에도 이 소설과 똑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엔 오해가 따르고 오해의 원인은 사랑의 메신저였던 편지였다.

 

사랑의 역사에도 미국으로 먼저 떠났던 여자 알마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수없이 편지로 알린다. 그러나 레오는 숲 속에서 숨어 있어야 했으므로 그 편지를 받을 수 없었고 답장을 할 수 없었다. 레오의 사랑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알마는 레오가 나치의 엄혹한 환경에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재혼을 한다.

 

<마농의 샘>에도 그랬다. 전쟁에 나간 남자에게 마을에 남겨진 여자는 계속 해서 편지를 보낸다. 그의 아이를 임신하였다고, 그녀의 임신이 그의 아이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는 간청을 담은 편지를 전장으로 보내지만 남자는 그 편지를 받지 못한다. 여자는 동네에서 쫒겨나다시피 하여 다른 곳으로 갔고 아이는 불구가 되었다. 불구가 된 그 아들이 자신의 아들임을 모른 채 남자는 그 아들을 향해 복수를 한다.  자신을 떠나 버린 여자를 향한 미움 때문이었다.

 

사랑에 따른 오해와 사랑을 만드는 역사,

 

비슷한  이야기에서 다른 점은 <마농의 샘>이 몹시 우울한 인간의 탐욕과 비정을 목격했던 것이라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하였던 주인공 레오의 인간성을 보게 해 주었다. 30대 여자(작가)가 만들어 놓은 늙은 남자는 그저 헌신하고 조용했으며, 끝까지 인간적이었다.

 

가공인물이었지만 밖으로 끌어내어 얼싸안아 주고 싶은 인물이었다. 솔직하나 무겁지 않고 깊게 신뢰할 수 있으나 여전히 가여운 존재였다. 아마 사랑이라면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귀한 경험이었기에 이 새로운 인간형이 마음에 와 닿았던 모양이다. 사랑에 관한 믿음을 아직도 갖고 싶어하게 하는 이 소설, <사랑의 역사>를 권하고 싶다. 사랑이 점점 시들해지고 별거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이 시대에 하나쯤 책꽂이에 두고 사랑을 만드는 여러 가지  중, 하나로 기억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