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영화에 대한 안내가 이렇게 나와 있다.
18세기 프랑스, 악취나는 생선 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천재적인 후각의 소유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 난생 처음 파리를 방문한 날, 그르누이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린다.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한물간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를 만나 향수 제조 방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하는데…
여인의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간절해진 그르누이는 마침내 파리를 떠나 ‘향수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그라스(프랑스 남동부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향수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한편 그라스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모두 잘린 채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의문의 살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세상에는 없는 하나의 향수를 만들기 위한 몰입이 13명의 여자를 죽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책의 부제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이다. 향수를 위해 살인까지 해야 하는 그 남자, 주인공 그르누이의 향기에 대한 몰입은 그의 본능에 다가온 어떤 여자의 기억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향기를 잊고 싶지 않다는 열망, 그녀는 길거리에서 자두를 팔던 소녀였다. 그녀의 향기를 쫓아 그녀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그를 보고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한다고 그녀의 입을 막은 게 그녀를 죽이고 마는 꼴이 되었다. 죽은 그녀의 몸에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여자의 향기를 맡고 여자 몸의 냄새를 탐닉한다. 다시는 그 냄새를 잊고 싶지 않다고 가슴 속으로 여자의 냄새를 받아들인다. 살아있는 여자가 아니라 죽은 여자의 몸에서 그는 처음으로 사람의 향기를 맡은 것이지만 그게 무언지 그때는 모른다.
그는 어머니의 냄새를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고아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그 보다 먼저 4명의 아이를 낳고서 바로 버렸다. 썩은 생선의 창자 더미 속으로 그를 밀어 넣은 어머니는 이번에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낳은 아이를 버릴 참이었다. 썩은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 바닥에서 아이를 낳고 일어서서는 다시 생선을 만지는 그 여자의 눈은 황량하다. 그런데 아기가 첫 울음을 울었다. 아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죽이려 한 여자가 되었다. 아이는 살았고 어머니는 교수형으로 죽었다. 어머니를 죽이고 살아가게 된 아이가 주인공 그르누이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란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면서도 이 세상 냄새에 대해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돌의 냄새와 올챙이의 냄새와 물의 냄새와 나무의 냄새를 맡는다. 그가 속한 자유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들어가면 5년 안에 죽어 나가게 된다는 가죽공장에 팔려 가게 된 그는 끈질긴 목숨을 이어가다가 다시 그의 재능을 탐낸 향수 제조업자에게 팔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향기제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향기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는 향수의 고장인 그라스로 떠난다. 다시 운명의 여신이 보였다. 그녀는 그가 일하는 주인집 외동딸이었다. 그녀를 향한 불타는 눈은 광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향수 라고만 생각한다. 향수를 위해 살고 있다고 여긴다. 향수를 위해 여인들이 있고 꽃이 있고 자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그는 점점 미치광이가 되어 간다. 그는 본격적으로 살인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향수 제조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꽃잎을 꺽듯 한 여자의 몸을 꺽는다. 그에게 여자는 향수의 재료이다.
그러나 그의 살인행각은 마침내 발각되었고 사형집행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향수가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말았다. 단두대의 남자가 무릎을 꿇고 교황은 그를 향해 천사가 왔다고 외치고,조금 전 까지도 끔찍한 죽음을 목격하고자 외치던 군중들도 고요해진다. 그들은 사랑의 마음으로 충만해지고 서로를 위로하고 몸을 벗겨 사랑을 나누고 그를 우러른다.
그러나 모든 권력과 미움 까지도 지배할 수 있게 된 향수를 가진 그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자신이 태어났던 시장거리로 돌아온 그는 13명의 여자 몸으로 만든 향수를 머리에 붓고는 향기처럼 사라진다. 잠시 이 세상에 와서 불행했거나 외로웠던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었을 후회만을 아주 조금 하다가, 홀연 땅으로인지 하늘로인지 모르게 몸이 없어진다. 사라지기 전 그가 만났던 자두 소녀를 떠올리는 그의 볼에 눈물이 흐른다. 맨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떠오르는 건 자폐증이었다. 특수교육장애자로서의 자폐증 아이이기도 하고 타인과 교류하지 못하는 정상인 범위의 자폐증 어른들이기도 하다. 소통을 하고 싶으나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한 모습도 보인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는 건 맹목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나가 범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못하는 건, 18세기 프랑스의 또다른 사회 구조 탓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여자는 아이를 키우지 못하여 버리고, 가난한 고아원은 단지 보조금을 위해서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들인다. 그 속의 아이들은 어딘가로 팔려 가고 어떤 배려도 없이 혹사 되는 아이들이 그대로 거리의 어른이 되어간다. 200년 전의 프랑스 뒷골목엔 고급 계층 여인들의 화려한 삶도 있었지만, 그들 발밑엔 손에 때가 가득 낀 불쌍한 영혼들의 무너지는 몸이 있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짓밟혀지는 사회 구조가 <향수>의 소설적 시간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가난 때문에 영혼이 황폐한 사람들은 많다. 가난의 악순환이 사람으로서의 기본 성정마저 무너뜨리는 세상이다. 뉴스에 한 번씩 올라오는 살인사건과 유괴 사건과 끔찍한 죽음들을 목격할 때마다 두려움 보다는 깊은 한 숨이 나온다. 지나친 부유함과 지나친 가난함, 두루 두루 함께 비슷하지 못하고 격차가 너무 큰 데서 오는 상대적인 불만이 폭력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여, 영혼만은 부자이노라! 이런 말에 획 고개가 돌려진다. 지나친 빈궁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삶의 황폐함이기 때문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 사랑할 수 없었다 는 구태의연한 설명이 이 영화의 골격이 된다면, 화면으로 발산하는 영화의 색깔은 영화의 향기라고 해야 할까? 이 영화에서는 향기를 눈으로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나에겐 어떤 향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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