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시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자몽미소 2009. 5. 3. 15:43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 시를 처음 접하던 날,  이 시는 글자로 보이지 않고 소리로 들렸다.

마루를 닦던 물걸레를 조심스레 내려 놓고는 더 잘 듣기 위해 몸을 움추렸던가, 시는 라디오에서 김세원(?)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에 실려 나왔다. 순식간에 내게 달려온 이 시의 구절들을 애써 받아 안았으나  기억 세포 속에는 겨우 몇 개의 문장과 발자국, 문, 세월 같은 단어들만 아득해지고 있었다. 

가끔 들른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면 이 시의 단어와 문장들이 떠올랐으나 나는 시를 찾아 나서지 못했다. 황지우가 누구인지 몰랐고 다가올 날을 희망하는 어두운 시대의 뜨거운 가슴이 이 시 속에서 움틀대고 있다는 문학 비평도 읽지 못했다. 나는 다만 연애하는 감성으로만 이 시를 마음에 담았다.


이 시를 생각할 때면 정말 가슴이 쿵쿵거렸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기다리는 일이 가슴 애리는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 가슴이 쓰려왔다. 이 시의 전문을 발견한 날, 쿵쾅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시를 외웠다. 한동안 나는 이 시를 거침없이 되뇌이곤 했다. 입속에서 시의 문장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가슴이 아파왔다. 간혹 눈물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유행처럼 이 시는 한물 갔다.

나는 더 이상 이 시를 되뇌이지 않았다. 어느 날 부터는 누구를 기다리며 가슴 애리지 않았고,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이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 때로는 유신 시대, 때로는 서울의 봄처럼 7, 80 년대의 시이거나 90 년대의 시이거나, 해서 2000년대의 시로서는 매우 낡은 것만 같았다. 남루한 코트처럼 옷장에 걸어두기만 할 뿐. 꺼내어 입을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러고 보니 이 시가 담긴 시집도 시간의 때를 입어 누렇게 변해 있었다. 94년, 소월시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시를 꺼내 읽으며 기다리는 동안 가슴 애리는 일 없는 나, 시간의 때를 입듯 변해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주 오래 전, 나는 엎드려 걸레질을 하다가 시를 들었고, 기다리는 동안 녹스는 마음을 연민 했었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고 위태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