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밀란쿤데라/느림- 2011년의 책읽기 25

자몽미소 2011. 6. 11. 14:24

 

책을 읽고 내 생각

 

소설 <불멸>에서 언급했던 사진의 기능에 관해, 그리고 <농담>에서 주인공 야로슬로브의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 만들기를 다시 읽자니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복습하는 것 같다.

 작가가 소설 속에 개입하고 소설 속 인물이 작가의 소설 구상 속으로 끼어드는 즐거운 악보가 여러 군데서 출현하는 이 소설, 상황의 에피소드와 그 안에 스며든 인간 심리, 숨기고 있으나 분석하는 자에 의해 들통나 버린 위엄이 코미디적으로 보여지는 소설. 참 재밌다. (2011년 6월 1일)

 

 

(2011년 6월 11일)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어제 목욕탕에 갔을 때였다. 거품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이 책 제목이 생각났지만 내용이 까맣게 사라져 버렸다. 기억해 내기 위해 더 천천히 몸을 닦아 보았지만 허사였다.

 

오늘 아침 다시 책을 펴들었다. 열흘 전 참 재밌다고 써 놓았던 짧은 문장에 다시 동의했다. 소설 구성과 상상과 그 속에 담은 작가의 주장이 재밌다. 책 중에서 문장을 꺼내 기록해 둔다.

 

에서 옮기다.

 

 

 

작가가 바라보는 역사학자 퐁트벵.

 

p 28

 -그는 파우스트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천사와 계약을 맺은 거야. 그는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며 그 작업을 천사가 돕는다네. 왜냐하면, 잊지 말게, 춤은 예술이기 때문이야!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소재로 보려는 그 강박 관념 속에 춤꾼의 참 본질이 있어. 그는 도덕을 설교하는 게 아니라, 도덕을 춤춘다네!. 그는 제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감격시키고 눈부시게 하려는 거라네! 그는 마치 조각가가 자신이 조각중인 조각상을 사랑하듯 제 삶을 사랑하네!

 

나는 퐁트벵이 그처럼 흥미로운 생각들을 왜 책으로 펴내지 않는지 자문해 본다. ... 그는 그런 일을 끔찍하게 여긴다. 자신의 생각들을 널리 펴는 자는 사실 타인에게 자신의 진실성을 납득시키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기를 갈망하는 자들의 부류에 속하게 될 소지가 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 퐁트벵으로서는, 이는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있는 그대로의 지금 이 세상이 칭찬할 만해서가 아니라 모든 변화는 필연적으로 더욱 나쁜 쪽으로 이끌리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좀더 이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중화된 모든  생각은 조만간 그 생각의 저자를 공격하는 쪽으로 돌아서며 그가 그것을 생각해 냈을 때 맛보았던 쾌감을 앗아가 버릴 것이기 떄문이다. 퐁트벵은 에피쿠로스의 큰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까닭에, 그가 자신의 생각들을 고안하고 발전시킨 것은 오직 그것이 자신을 즐겁게 해준다는 이유에서이다. 갖가지 흥겹고도 심술궂은 여러 성찰들의 무한한 원천에 다름아닌, 이 인류를 그는 경멸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그것과 지나치게 긴밀하게 접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퐁트벵은 길게 뜸을 들인다. 그는 뜸의 거장이다. 그는 오직 소심한 사람만이 뜸들이는 걸 겁내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면서, 성급히 어웅한 문구들을 내뱉어 조소를 자초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벵상은 자기 목소리가 퐁트벵의 목소리에 비하면, 첼로와 경쟁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초라한 피리 꼴임을 알기에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p 83

-벵상은 슬픈 심정으로 자신의 해묵은 생각하나를 떠올린다. 으레 사람들은 사내의 행운은 어느 정도그의 외모에 의해 결정된다고,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추함에 의해, 키에 의해, 혹은 머리숱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바로 목소리다. 한데 뱅상의 목소리는 너무 여리고 너무 뾰족하다. 그가 말을 시작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며, 그래서 그는 언제나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그가 고함을 지른다는 인상을 받는다.

 

:(퐁트벵과 벵상은 선생과 제자 사이다) 

그리고 벵상이 곤충학자들의 학회에 참가해서 어떤 여자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자기 목소리에 대한 자격지심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 주장, 그러나 소통되지 않는 말과 소리에 관한 장면 묘사에서 웃음이 절로 나는, 어쨌든 우리들의 이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작가의 자기 관찰에 관한 부분

 p107,

<또 뭘 꾸미고 있죠? 소설?> 염려스러운 듯, 그녀가 묻는다. 나는 머리를 조아린다

<종종 당신은 내게 언젠가는 단 한 마디도 진지하지 않은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당신의 즐거움을 위한 거대한 장난질을. 그때가 온 게 아닌가 두렵군요. 다만 당신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싶어요. 조심해요...

당신 엄마가 곧잘 당신에게 하던 말 생각나세요? 내겐 그 목소리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들려요. 밀란, 제발 농담 좀 그만둬. 아무도 널 이해하지 않을 거야. 넌 세상 사람 모두를 모독할 거고 끝내는 세상 사람 모두가 널 혐오하고 말 거야. 당신도 생각나세요? 당신에게 경고하겠어요. 진지함이 당신을 보호해 주었어요. 진지함의 결여는 당신을 늑대들 앞에 알몸으로 내버려둘 거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그들이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그 늑대들이> 이 끔찍한 예언을 던진 뒤, 그녀는 다시 잠이 든다.

 

p 48.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p 158

 

-사건들이 너무 빨리 벌어지면 어느 누구도 전혀, 그 무엇이건 전혀,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다.

-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 한데 나는 이 주장을 뒤집어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P 50

- 사진술 발명 이전의 명예가 있고 그 후의 명예가 있다. 체코 왕 바클라브는, 14 세기에 프라하의 선술집들을 자주 드나들며 정체를 숨기고 백성들과 한담을 나누는 데서 쾌락을 맛보곤 했었다. 그는 권력, 명예, 자유를 누렸다.

-영국왕 찰스 황태자는 어떤 권력, 어떤 자유도 없으나 엄청난 명예를 누리고 있다.... 명예가 그의 자유를 모조리 삼켜 버렸으며....

- 오늘날 유명인들은 잡지의 페이지 위, 텔레비젼 화면에 등장하며, 모든 이의 상상력에 침투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한낱 꿈에 불과한 일일지라도, 그러한 명예( -- 찰스황태자의 명예)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근심한다. 이 가능성은 모든 이를 그림자처럼 뒤쫒으며 그 삶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p-59

- 선택되었다는 것은 신학적 개념이다. 아무런 공덕없이, 어떤 초자연적인 평결에 의해, 신의 자유로운, 또는 변덕스런 의지에 의해, 예외적이고 범상찮은 뭔가를 뽑혔다는 것, 바로 이러한 확신 안에서 성자들은 더할 수 없이 잔혹한 형벌들을 견뎌내는 힘을 길렀다. 이 신학적 개념들은 각각 나름대로 모방되어, 우리 인생의 사소한 일들에 반영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의 저열함을 다소간 괴로워하며 이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고양시키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제각기 그 같은 고양에 합당하는, 이를 위해 선택되었고 예정되었다는 다소 강렬한 환상을 경험했다.

 

 

-아마 인간이 선택받았다는 환상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젖먹이 때, 공덕없이 받으면서도 기세도 좋게 요구하던 어머니의 보살핌 덕택일 것이다.

 

 

- 자신이 선택된 사람임을 원하는 자, 그가 자신의 선택됨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일반의 통속성에 속하지 않음을 스스로 믿고 타인에게도 믿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여기서 사진술의 발명에 토대를 둔 시대가, 스타들, 춤꾼들, 유명 인사들과 함께 그를 도우러 오는데, 거대한 화면에 투영된, 그들의 모습은 멀리서 모두에게 보이고 모두에 의해 찬미받으며 또한 모두에게 이를 수 없는 것이기도 한다. 유명 인사들에 대한 숭배적 고착에 의해, 스스로 선택된 자로 여기는 자는 자신이 비범한 것에 속함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동시에 범속한 것에 대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이웃들, 학교동료들, 파트너들에 대한 자신의 거리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한다.

 

-만약 어떤 누가 어떤 유명인과 직접적 개인적으로 접촉함에 의해 자신이 선택 받았음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키신저를 사랑한 여인이 그리 되었듯이 되쫓겨날 위험을 범하게 된다. 이 되쫓겨남, 신학용어로는 이를 전락이라 한다. 바로 그래서 키신저를 사랑한 여인은 자신의 책에서 분명하고도 적절하게 자신의 <비극적>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왜나하면 전락이란 이에 웃음을 떠뜨리는 구자르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정의상 비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p 73

투광기들에 의해 조명되고 카메라들에 의해 관찰된, 1968년의 프라하는 둘도 없는 지상의 역사적 시사 거리였으며, 체코학자는 오늘까지도 이마에 그것의 입맞춤을 느끼며 긍지를 갖는 것이다...

 

체코학자는 대수롭지 않은 지상의 역사적 시사에 은총을 받았던 게 아니라 사람들이 숭고하다 일컫는 시사의 은총을 받았다. 시사가 숭고한 때는 무대 안쪽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리고 그 위로 죽음의 대천사가 배회하는 동안 무대 전면의 사람이 고통받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그 체코 학자는 숭고한 지상의 역사적 시사의 은총을 받았다는 데서 긍지를 느낀다. 그는 바로 그 은총이 그와 함께 대회에 참석한 저 노르웨이인과 덴마크인, 프랑스인과 영국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해 줌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