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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젊은 소설가의 고백- 2011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1. 7. 21. 19:08

 


젊은 소설가의 고백

저자
움베르트 에코 지음
출판사
레드박스 | 2011-07-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움베르트 에코가 전하는 세상의 모든 지식!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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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밑줄긋기

 

창작이란 무엇인가

 

- 시나 소설을 쓸 때 사람들은 모순 가득한 삶을 대변하고 싶어 한다. 여러 삶의 모순들을 펼쳐놓고 분명하고 통렬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학문에 대한 책이건 일종의 추리소설,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세계 설계하기

 

- 내가 만든 허구의 세계에서는 구획과 배치에 따라 대화의 길이가 정해졌다. 나는 소설이 단지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는 것을 터득했다.

-서사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주가 탄생하는 사건이다. 무언가를 서술할 때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그 세게는 최대한 정밀하여 스스로가 그 안에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허구적 등장인물에 관하여

- 독자를 울리는 허구적 등장인물의 능력이 해당 인물의 특징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독자의 문화적 관습, 다시 말해서 독자가 문화적으로 갖는 기대치와 서사 전략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 현실 세계에서 수백만 인구가 기아로 죽어가는 상황에는 그다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베르테르나 안나 카레리나의 죽음에 크게 비통해 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일까?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의 슬픔을 마음 깊이 함께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햄릿과 로버트 조던, 그리고 안드레이 공작은 둑는다.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갈망하건, 혹은 무엇을 희망하건 상관없이, 그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고 충격적인 경험 때문에 우리는 운명의 손길을 느끼며 전율한다. 우리는 에이햅이 흰 고래를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비딕>의 진짜 교훈은 고래는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 위대한 비극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는 이유는 주인공들이 극악한 운명에서 도망치는 대신, 제 손으로 팠던 수렁의 깊은 심연 속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맹목적으로 달려간 곳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또렷이 볼 수 있지만 그들을 막지 못한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세계에 인지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에 관한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듯 현실 세계에 기생하고 있으면서 우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허구적 등장 인물들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궁극의 리스트

- 진짜 좋은 책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해석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성모 호칭 기도는 불교의 '옴마니반메훔' 같은 주문처럼 암송했을 것이다. '동정녀'가 '전지전능'한지 '은총이 가득'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최면을 거는 듯한 운율에 빨려 들어간다는 점이다. 성인 호칭 기도에서처럼 문제는 어떤 이름들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 이름들이 충분한 시간 동안 일정한 울격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이다.

 

- '열거'는 중세 문학에 흔히 등장한다

 

-좋은 목록이 갖는 단 하나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의 관념과 '기타 등등'의 현기증을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목록을 보면 항상 마음을 빼앗겼다.

-반면 목록은 원시적 문화의 전형이다. 원시적 문화는 아직 우주에 대한 상이 모호하고, 할 수 있는한 우즈의 많은 속성들을 항목으로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한 항목들 사이에 위게적 관계를 세우지는 못한다. 하지만 목록은 중세 시대에도,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다에도 그리고 특히 근대와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도 계속해서 다시 등장한다.

-목록: 읽고 쓰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다.

 

 

 


 

책을 읽고 내 생각

 

-흥미있게 읽다가, 책 중간 부터는 이 사람의 설명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쓴 책들을 인용하여 설명한 부분이 많았는데,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는 책장에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했다.

기호학을 한 저자가 흥미 있게 설명하고 있는데도 기호학이 뭔지 모르는 나는  알아들어 보겠다고 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책을 덮었는데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 바우돌리노>는 또 내 손에 들리지 않는다. 이 책을 다시 읽고 좀 더 이해가 될 때 내 독서의 힘도 나아져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학구적인 자세로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좋았다. 소설을 읽으며  작가와 거리를 느끼게 하지만 작가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듯하기에 쫓아가 모방하고 싶게 만드는 친밀함이 있었고 작가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언젠가는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