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밤으로의 긴 여로- 책부족, 11월 독후감

자몽미소 2011. 11. 21. 09:04

 

책을 읽고 내 생각

연극 무대를 보는 것처럼 읽었다. <밤으로의 긴 여로>가 희곡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극 무대를 떠올리게 된 건, 일전에 호호야님이랑 대학로의 연극 공연을 여러 차례 봤었기에 가능했던 상상이었다. 낡은 여름별장이 보였고,  배우들의 순간적인 표정 변화, 목소리의 색깔, 과장된 몸짓이 문장마다 배어나왔다. 그랬으므로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 후 내려놓지 못했다. 연극을 볼 때와 똑같았다.

 

<유진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모두 낯익었지만, 이번에 비로소 처음 만나게 된 작가였고 그의 희곡이었다.  읽고 나서 번역자의 후기를 보고서야 이 미국 작가가 얼마나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사람인지를 알았다.  유진 오닐의 희곡 이전 미국의 연극은 통속극이 주류였다고 하는데, 유진 오닐의 작품이 현대의 연극 무대에서도 자주 올려진다는 것만을 봐서도 그가 이전 연극과는 다른 것들을 제공하였을 것이라는 건 짐작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대화 속에는 현대 심리학이 연구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자신의 부족을 합리화 하고 싶어 상대를 탓하는 모습, 욕구 충족이 되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대체물에 의존해 버리는 나약함,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평화를 원하고 또 그렇게 포장하는 위선 등.

어떤 이야기의 공간 또는 시간의 흐름을 잡아 나가기보다 대화와 행간 마다에 심리묘사에 세밀하였기에 인간 내면으로 들어가 비로소  삶의 사소한 상처와 왜곡되어 버리는 운명을 다시 재현해 내었고 그랬으므로 이 희곡은 바로 자기 이야기로 공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가족 이야기 속의 역사, 질곡의 역사 속에서 살아나가려는 고군분투, 거기서 만들어진 사람의 성격, 그 성격의 소유자와 가족을 이루는 사람과의 갈등, 그러나 서로가 만들어 낸 갈등을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 그러니 모두들의 운명이 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 유진 오닐의 사후에 발표된 것으로서 작가 자신은 자기가 죽은 후 25 년간 발표를 하지 말고 무대에도 올리지 말아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작품 속의 에드먼드의 말마따나 <빌어먹을 집구석> 이야기였고, 부인에게 바치는 글에서처럼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극>이었기 때문이다.

 

번역자의 후기에  실린 유진 오닐의 부인, 갈로타의 증언은 작가가 왜 그토록 세상에 내놓기를 주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진 오닐은 이 작품을 쓸 때 "작업실에 들어갈 때보다 십 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 채" 로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한다. <밤으로의 긴 여로> 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름만 다를 뿐,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와 본인이었다.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