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2011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1. 12. 29. 15:43

 

 

 

 

 

 

책을 읽고 내 생각

 

 우리 옛이야기 속의 거북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인 토끼와 달리기 경주를 하여 이긴다. 재주 많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거북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장수의 동물로 사랑받으며  꾸준하고 성실한 미덕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거북의 성정을 높이 샀다

아프리카에도 거북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의 거북은 우리의 것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 어느 날 하늘 세상에서 하늘의 동물인 새들을 초대했다. 땅의 동물인 거북은 하늘 잔치가 궁금했고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거북에겐 날개가 없어서 하늘로 올라갈 수 없다. 거북은 새들을 찾아가 부탁했다. 나도 꼭 그곳에 가게 해 줘, 그러자 마음 착한 새들이 깃털 하나씩을 뽑아 주었다. 거북은 새의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거북은 새들에게 말했다. 초대 받은 곳에 가면 우리들의 이름을 말해야 할 거야, 그래서 거북은 자기 이름을 지었는데 거북이 이름은 <그대 모두>였다.

하늘 세상에 도착하니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침을 꼴깍 넘기면서 거북이 먼저 나가 하늘 세상 주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굴 위해 이렇게 많은 음식을 차린 건가요? 그러자 초대한 주인이 말했다. <그대 모두>에게 드리기 위해서지요. 거북은 새들을 뒤에 두고 혼자 음식을 먹었다. 자기 배가 부르자 새들에게 와서 먹으라고 하였다. 새들은 몹시 화가 났다. 거북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자고 하늘로 날아온 게 아니었다며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들은 잔치가 끝나 땅으로 내려올 때 거북에게 깃털을 빌려주지 않았다. 깃털이 없는 거북은 하늘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깃털을 얻지 못한 거북은 새들에게 애원했다. 땅에 있는 거북의 가족에게 자기 말을 전해달라고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  부드러운 것이라면 모두 모아서 자기가 떨어질 곳에 놓아달라는 것이었다.그러나 화가 난 새들은 거북의 그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모두 거절을 하자 착한 앵무새 한마리가 거북에게 와서  자기도 친구들처럼 깃털을 빌려줄 수는 없지만 거북의 말을 전할 수는 있다고 하였다. 앵무새는 땅에 있는 거북의 가족에게 거북의 부탁을 전해 주었다. 그러나 말 가운데 '폭신하고 부드러운 것'을 '딱딱하고 뾰족한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거북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거북의 등은 부러지고 터졌다. 가족들이 산산조각이 난 거북의 등을 모아서 이어붙였다. 그 후 거북의 등은 갈라져 흉한 등딱지를 갖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거북은 이 소설의 주인공 오콩고를 떠올리게 한다. 오콩고는 나약한 아버지를 미워했고 자기 자신을 계속 강하게 밀고 나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강함에 압도된 나머지 주의깊지 못한 인물이 되어 버린다. 힘을 갖고 인생을 승승장구하고 싶었했지만 사려깊지 못한 성격 때문에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고 마을에서 추방을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섰고 그렇기에 자기 삶에 온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용맹스런 성격에 대한 합리화를 하려한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했으나 아들을 내쫒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모두 그의 성격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으나 부드러운 사람이었고, 아들은 유약해 보였으나 성찰 능력이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둘을 모두 자기와의 대척점에 두고 미워한다. 떤 집착은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막고 상황 변화에 둔감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는 아들과 마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려 하는 새 세상에 눈을 감고 자기 발등에 스스로 도끼를 찍는 인물이 되고 만다.

소설에 나온 각각의 인물들은 우리 근대화 시기의 인물들과  비슷하여 놀랍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이 소설을 책부족과 함께 읽으려고 했었는지 생각을  꺼내볼 수 없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읽었을 것이다.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었고 아프리카 문학이라는 말도 생소했다. 아프리카는 커다란 대륙의 이름일 뿐이고 그곳 각각의 나라와 그 나라안의 부족에겐 저마다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을 것이지만, 나로서는 나이지리아(작가의 모국) 나 남아프리카나 콩고나 모두 같은 아프리카일 뿐 그들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알아볼 인문학적 지식이 없었다. 어떤  나라의 사람이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아시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얼굴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세 나라의 문학을 같이 말해 버린다면 화가 나고 슬퍼할 것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소설에 대해 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책을 덮으면서 느꼈다. 오히려 어떤 방해를 받았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공간 배경이 아프리카 라는 점 때문에 자꾸만 텔레비젼에서 보이던 원시부족의 모습이 떠올라 소설 속에서 애써 표현하고 싶어하던 그들 삶의 고귀함이 다큐멘타리를 볼 때의 흥미처럼 되어 버렸다. 소설 말미의 치안 판사처럼 인류학자연 하는 식으로 부족간에 서로 다른 삶의 양태를 들여다 봤다. 인물에 대한 공감 부족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역량 부족이나 번역자의 한국말 때문이 아닐까 의심을 해 보긴 하였으나, 그 보다는 내 속에  피부 검은 원시 부족들에게 이미 생겨나 버린 편견이 있어 읽으려고 했으니까 읽는단 식으로 책장을 덮었다.다른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이번 소설읽기의 자세는 매우 무미건조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