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범죄와의 전쟁- 집착함의 무상함을 보다

자몽미소 2012. 2. 10. 14:59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1. 아! 맞다, 그때의 그 일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가는 길 중에 한라산을 통과하는 두 길은 5. 16 도로 라는 제 1 횡단 도로와 어리목과 영실과 지나가는 제 2 횡단 도로가 있다. 사람들은 그 두 길이 박정희 때 육지의 깡패들이 만든 길이라고 했다. 육지의 깡패들을 힘이 막강한 정부가 일제 소탕하여 길 닦기 공사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공권력의 현명함을 탄복했을지도 모른다. 나쁜 남자들을 수용소에 가두는 것보다 아름다운 길을 만들도록 하여 형을 감면해주었다면, 참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가끔은 깡패 남자들의 두꺼운 어깨가 생각났고 그들의 노고가 우리를 한라산에 더 가깝도록 해 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약간의 고마움도 느꼈다.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노동 조건이 어떠했을지, 과연 길 위의 노동이 수용소보다 나았는지에 관한 생각은 "인권"과 "복지" 라는 말이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아 일상어가 된 후의 일이었다.

 

어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을 보고 나서도 그때 그 길 위의 깡패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한라산 중턱에서 제주땅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의 노동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그들의 힘을 부리는 이들은 공권력에 구속되어 온 그들을 과연 어떻게 대했을까, 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전해 들은 말도 적거니와 그것만으로는 그때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식으로 알고 있기에  어느 날 종이 위에 적혀 역사가 되는 옛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차용한 이름 "범죄와의 전쟁"은 1991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범죄소탕작전이었다. 영화는 그 작전을 중심에 두고 그 작전 앞 뒤에서 벌어졌던 일과 일에 관련된 사람들, 즉 범죄인인 깡패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에 전두환 대통령은 사회정화를 하겠다며 "삼청교육대"를 만들었는데 그 교육을 받기 위해 동네 깡패란 깡패는 모두 잡아들이는 식이었다. 정부는 살기좋은 나라를 위해 사회를 정화하여야 할 필요로서 깡패들을 소탕했다고 선전했다. 이는 이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했던 것을 모방한 것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는 재모방의 연극과도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1 학년이었던 1980년에 국가 시책이 된 "사회정화 운동"은  우리 교실 안으로도 들어왔다. "정화"라는 생소한 단어를 풀어 설명하는 교사가 있었고, "삼청교육대"에 잡혀가는 꼴과 비슷하니 학생과의  "블랙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의 협박 비슷한 훈시도 있었다. "정화"를 주제로 백일장 대회도 열렸고,  나는 글짓기를 잘해 상을 받은 친구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

무언가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정화" 라는 말은 듣기 좋았다. 우리로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 동안 나쁜 행동을 했던 깡패들이 대학교 비슷한 그곳에 가서 정신 훈련을 받는다면 이사회가 더 좋아질 일이기도 했다.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삼청교육대 교육 장면은 강도 높은 체육 시간 같아 보였고,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육체를 훈련 시키는 일이야 더더욱 좋은 일이었다. 우리들은 이제까지 했던 대로 학생의 본분만 지키고 있으면 '학생과' 선생님이 소지하고 있다는 블랙 리스트 따위는 염려할 게 아니니, 우리들은 대개 국가의 그 시책에 잘 따르던 국민이 될 수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던 그때, 나는 이미 성인이 되어 있었지만 "사회정화운동'의 뉴스를 듣던 때와 별 다를 게 없었다. 되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선포한 그 일은 사회 전체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다시 텔레비젼은 그 성과를 보도하였고, 나는 순진하게도 그 작전으로 조직깡패 같이 무시무시한 집단은 그 뿌리가 모두 뽑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지의 그늘에 햇빛을 비추는 정책은 다시 또 다른 이름으로 이어졌다. '성 매매 업소 강력 단속 ' 같은 식으로.

 

 

2. 쏠쏠 재미나게 하는 소품과 음악과 패션, 연기력

 

 

영화를 보다 재미있게 하던 것은 소품들이었다. 지금 휴대폰의 기능을 하지만 크기가 무척이나 컸던 카폰, 구형 그랜져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뭔가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던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었다.  물건이 많아졌고 호화로워진 지금의 눈으로 보면 찌든 살림처럼 보이지만 세관 공무원 주인공 최익현의 집에 깔려 있던 꽃무늬 이불은 우리집에도 있었던 것이고, 최익현이 아이 셋과 함께 살던 달동네 방에 깔린 비닐 장판도 추억거리였다.

귀를 덮는 남자들의 헤어 스타일, 로렉스 시계, 디스코가 난무한 나이트 클럽, 소방차의 노래와 영화의 배경음악인  함중아의 노래 " 풍문으로 들었소" 조차도  80년 대에 20 대 여자 였던 나에게 익숙하여, 즐거운 영화 보기를 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 때는 그랬지 하는 장면들.

호켈 커피숍에서 직원 엉덩이 만지는 아저씨에게 적극적인 반항을 할 수 없는 여자.

지금은 성희롱과 성추행에 해당되는 일들이 남자들이란 다 그렇지 하는 식으로 넘어가야 하는 여자의 입장 같은 게, 매우 새롭게 보였다. 우리 때는 여자들이 지금과 달랐다는 것, 영화를 통해 새롭게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에 쏙 빠져들게 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80 년대, 경상도 남자를 이만큼 묘사한 것은 보지 못했다. 부산의 깡패에 관한 영화 "친구"가 있었지만, 경상도 남자를 묘사하기엔 이 영화 보다 훨씬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집안 사람' 에 대한 집착, 남아 선호 사상, 의리, 성공하고 봐야 한다는 의식.

이 모든 걸 완전히 버무린 사람이  최민식이 연기한 주인공 최익현이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상도 남자들이 자랑하여 마지않는 집안과 의리는 최익현에게서는 활용하기 좋은 삶의 수단이었고, 끝까지 밀어 붙이는 의지는 자기 성찰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3. 나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의 아버지, 그 피로함의 뒤에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다면, 내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물질적 안락은 정당한 수단으로는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가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남 보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직 나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나, 이 영화는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재밌다.

 

주인공 최익현의 신조는 " 2등은 필요없다. 1등이어야 한다 !" 였다.

그가 깡패 세계에서 자기 길을 튼 후 그는 승승장구하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면서도 누가 제일인가 하는 문제에 집착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의 아버지는 2등이었기 때문에 패배했고 그 여파는 집안을 기울이게 하였다. 누가 1등인가 하는 문제는 최익현으로 하여금 동업자인 깡패 최형배와의 경쟁심으로까지 이어진다.

최익현을 '대부'라고 부르는 깡패 최형배는 지금까지 항상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측근조차 못 믿다가 최익현을 만나면서 믿을 건 가족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 1등인 누구인가' 하는 신경전은 최형배로 하여금 최익현을 버리도록 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국가가 벌인 작전인 "범죄와의 전쟁"을 주변에 두고 이 두 남자의 사이에 오고 갔던  의미없는 전쟁, 그러나 그 두 사람에게는 처절했던 전쟁에 관한 것이다.

 

과연 누가 최종 승자가 되었는가.

최익현은 자기를 구속한 검사와 협작을 하여 깡패 두목 최형배를 잡아들이게 해 주었고, 그일로 모종의 헤택을 입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최익현은 정계와 재계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성공의 가도, 최종주자가 된 듯하다.

그의 아들이 손자를 낳았고, 또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는 최익현으로 하여금 자기 삶이 피로했으나 해볼만 한 전쟁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그가 버린 인물 최형배의 목소리다. 자기 생의 가장 화려한 날에 최형배의 낮은 목소리는 그의 양심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연수원에 갔던 그의 아들이 연수원 졸업 시험에서 차석, 그러니까 2등이었다는 사실은, 시나리오 작가의 사소한 디테일이었겠지만 나에겐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정직과 의리와 성실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 물질적 성공에만 투자하는 인생이 제대로 1등이 될 수 없었음을 영화적 비틀기를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풍요를 위해 가끔은 양심을 저 버리기도 하고, 두루두루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지금쯤 아주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나는 누구를 위해 그렇게 전쟁 같이 살았는가, 삶을 돌아보다 문득 그 말에 붙잡혀 묘한 얼굴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