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일어날 수도 있는 기적- 일본영화

자몽미소 2012. 2. 13. 15:16
어린 아이들 가슴 속을 들여다 봤다.

음악을 하는 아버지,  경제적인 게 해결 되지 않자 화가 많아진 어머니,

부부의 갈등 때문에 서로 헤어져 살게 된 형제지만, 영화 속 아이들은 본연의 생명력으로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참 부러운 아이들의 건강한 힘!

 (2012년 2월 12일)


 

(2012년 2월 13일, 다시 씀)

 

 

영화 속 아이들은 대개 고만고만한 아픔을 안고 있다.

스낵바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거나 아버지가 허구헌날 파칭코에 가 버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온화하지 않다. 더구나 영화의 주인공인 고이치는 오사카에서 가고시마로 이사했기에 가고시마의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가고시마 앞에는 사쿠라지마가 있고 이 활화산은 언제나 화산재를 이 근처 도시로 날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큰 불평 없이 살아가고 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오늘은 "화산재가 좀 있군!"  하거나 " 오늘은 화산재가 없네 !" 라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뿐이다.

어머니를 따라 외가인 가고시마에 온 지 6개월, 고이치에겐 헤어져 사는 엄마 아빠가 합치고 동생과도 한 집에서 사는 게 소원이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커다란 일이 생겨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고이치는 가고시마 앞의 활화산이 어느 날 뻥 하고 터져서 세상이 다시 정리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데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것도 같다. 후쿠오카에서 가고시마까지 신칸센이 개통이 될 것을 뉴스로 들은 데다가, 친구의 말에 따르면 신칸센이 처음 운행을 할 때 두 기차가 서로 스치는 지점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말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고이치와 친구들은 소원을 생각해 내고 두 기차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엔 떨어져 사는 동생 류도 합류할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  여행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 경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형과 아우의 방식이 각각의 성격만큼이나 다르지만, 아이다운 기발함에선 같아 웃음을 선물해 준다. 

 

영화는 길로 나가는 아이들의 모험과 그 속에 내재된 아이다움을 잘 그려 내었다. 아이들의 영화이지만, 영화는 주변 인물인 어머니, 아버지, 동네 어른과 할머니, 교사 등 그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도 보게 해 준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아이들의 보호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돌봐 주어야 하는 대상이 된 것 같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생 류 는 타고난 명랑함으로 아내 없이 지내고 있는 아버지의 곁을 지킨다.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저녁밥을 먹고 혼자 마당의 채소를 가꾸며, 늦잠 자는 아버지 대신 쓰레기를 치우고, 알아서 가방 메고 학교에 간다. 그러나 이 아이에겐 이 모든 일이 어렵거나 하기 싫은 일이 아니다. 고작 10 살 꼬마 아이인데도. 가끔 형과 통화를 하면서는 어머니를 걱정하고, 형으로부터는 아버지를 잘 보살펴 주길 부탁 받기도 한다.

어른들은 어쩐지 삶이라는 광장에서 겨우 몸을 지탱해가며 위태롭게 비틀대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이런 부모를 너그럽게 봐 준다. 어른을 모두 다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에 토를 달지 않고 함께 있어줄 뿐이다. 그 외의 일은 각자 알아서, 아이는 아이의 일을, 어른은 어른의 일을 잘 하고 있노라면 모두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가족 구성원을 느슨하지만 튼튼하게 묶어 놓는다. 그렇게 믿고 있기에 아이들은 자기의 할 일을 불평없이 해 내고 있다. 자기 환경이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속상해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줄 텐데도  짜증내지 않는 꼬마들은 어른들의 어른처럼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이들이 보여주는 이 힘이 어쩌면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도 뉴스는 후쿠시마 원전의 온도가 높아졌다고  보도한다.  작년 3월 11일 쓰나미로 페허가 되어 버린 땅, 그리고 방사능 위험 지역이 된 후쿠시마, 지금도 화산재를 뿜어 올리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을 안고 사는 일본의 여러 지역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한 단면이면서 또 전체이다.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만 듣는다면 곧 일본이 침몰하여 버릴 것 같지만, 그 곳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동요하지 않는다. 소란을 떨지 않는다. 일이 생기면 그때 해결할지언정 지금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뿐인  영화 속 아이들처럼, 일본인에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는 조금은 다른, 그래서 전체적으로 매우 다른 모양을 띠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여행 후, 형 고이치는 사쿠라지마 가 뻥 터지길 바라면서 그렸던 그림을 버린다. 위험한 소원을 빌면 안 되겠다는 건 가족만이 아니라 세계를 생각하라고 한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형도 동생도 " 세계" 란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버지와의 전화대화에서 따 온 단어 " 세계"는 아이들의 세상을 세계와 통하게 하는 첫번째 단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그들의 부모를  더 잘 보살필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위험한 주변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를 잘 보호하는 임무가 자기들에게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의 자기 일이라는 납득을 하고 나니, 형제는 전보다는 평안하게 주변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떨어져 사는 부모, 그래서 갈라져 살고 있는 형제, 화산재가 날리는 동네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나면 꿈꾸는 것에 대해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어떤 기적은 소망 그 자체가 아니라, 소망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떠나는 길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이 영화도 은연중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이들의 작은 여행으로 변형되어 보여 준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 나는 일본적인 것들에 숨은 작은 힘이 세계와 마주하여 미소짓는 모습으로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