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영원의 제로 -2014년의 책읽기(3)

자몽미소 2014. 2. 25. 16:03

 

▣책을 읽고 내 생각

 

오늘날, 일본사람들조차도 태평양전쟁 당시의 카미카제 특공대를 <자폭테러단> 으로 생각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 사태 또한 자폭테러단의 소행이었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두 집단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서는 개인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신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은 <광신>이라 한다.

 

그런데 그들을 바라보는 입장이 달라지면, 그런 평가는 부당하다. 이슬람 세계 쪽에서는 세계의 악이 미국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기에 미국은 쳐부셔야 되는 적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도 미국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 죽음을 애석해 하지 않은 것은, 일본이 그들이 행하는 전쟁이 <성전> 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들이 있다.  미국도, 이슬람도, 서구 세계도, 일본과 그들의 카미카제도  집단이다. 거기엔 사람이라는 개인이 없다. 개인이 사라진 집단으로 묶이면 상대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행위도 정당하다. 상대는 악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악은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는 명분을 만들어준다.

 

이 소설, < 영원의 제로>는 집단으로서의 카미카제가 아니라, 카미카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을 다룬다. 이야기의 화자는 카미카제 특공대원이었던 남자의 손자다.  특공대원으로 죽었다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기 위해  손자는 할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찾아나섰고 인터뷰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하나씩 할아버지의 실체가 드러난다. 

 

인터뷰를 통해서는 주인공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다 일본 해군의 속살이 드러난다. 해군의 지도부가 얼마나 우매했는지, 실전에 있어서 얼마나 능력부족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적 해군에 만연한 비비합리와 관료적 군인의 보신 때문에 일본이 점점 전쟁의 미궁으로  빠져들수밖에 없었는지가 보인다. 또한 해군 지도부가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여겨서 인명이 아니라 전쟁물자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던 점들도, 증언자의 목소리로 비판한다.  중일 전쟁 즈음에 <영전>이라는 우수한 비행기를 만들어 낸 일본이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그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자, 그것을 타는 젊은 조종사들까지, 그리고 국민 모두를 전쟁 무기 또는 소품으로 취급하는 동안, 일본의 힘은 알맹이가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카미카제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이 남긴 유서처럼 "천황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여" " 장렬하고 기쁘게 죽었던가".  노병들은 그것이 오해이며, 그러한 유서가 왜 쓰여지고 기록으로 남겨졌는지를 상상력으로 갖고 바라보아 달라고 항변한다. 그 당시의 분위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가질 수 없던 그들은 군대라는 특수집단이 강요하는 애국의 가치관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어느 누구도  목숨을 버리고 싶지 않았고, 행여 특공을 완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라도 그것이 국가를 위해서나 천황을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은 전쟁 중에는  포로가 되거나 불시착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았을 때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왜 죽지 않았냐는 것이다.  아수랑 같던 전쟁이 끝나고 겨우 목숨 부지해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살인자라로 백안시된다.  왜 죽지 않고 살아왔냐고 돌멩이를 던진다.

종전 이후 미국이 심어 놓은 민주주의 교육은 태평양 전쟁에서 종사했던 그들을 <테러집단>으로 몰아갔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그 전쟁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고, 어떻게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을 힘들게 했는지를 알기 ,<카미카제 특공대>의 존재만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국 일본을 혐오하기까지 하고 있다. 평화라는 거울에 비추면 카미카제는 <악>그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지향하는 것은 일본의 전쟁이나 특공에 관한 것이 아니다. 소설은 집단 속에서 <개인>을 보고자 한다. 특공이었던 한 남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파헤치는 과정이 소설의 핵심이다.

소설이 말하는 이야기의 기둥은 <특공이었던 그 남자가 가족과 국가를 위해서 죽으려고 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고자 했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종전 7일을 앞두고, 특공 작전으로 죽었다.

 

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소설에서 말하는 것을 다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만 봐서는, 전쟁의 참상도 잘 드러나지 않고, 어쩌다가는 일본의 자랑거리인 전투기<영전>을 미화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영화의 대사를 다 알아듣지 못하여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다든가 해서 불만을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영화에서는 십분의 일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영화는 완성도 떨어지는 애국영화 같아져 버렸다.

 

책을 덮으며, 생각하는 것은 작가가 이 주인공의 할아버지를 통해 카미카제로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느낌이 든다. 당신들의 슬픔을 아는 후세들이 있다오, 하는 식으로 .

작가는 국가보다 한 개인이 더 훌륭함을 이야기하면서 전쟁 동안에는 개인의 미덕이 집단의 우매를 이길 수 없었지만, 전후에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일본인 개인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전쟁의 참상도 모르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외치면서 일본을 폄하하는 것은 그만두라는 메세지도 뿌리깊게 박혀 있다.  근대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하쿠다는 소설의 힘을 빌려 <일본인 단결>을 외치는 것 같았다. 양 쪽에 사람을 앉히고 가운데서 중심을 세워주던 사람이, 사실은 약간 오른편에 서 있다는 것을 책을 덮으며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