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서부전선 이상 없다-레마르크/ 2014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4. 10. 16. 17:38

▣책을 읽고 내 생각

   나는 전쟁을 텔레비젼에서 배웠다. 우리집에 흑백 텔레비젼을  들여놓은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전우>라는 티비 프로를 보면서 전쟁에는 반드시 적군이 있고, 아군은 선량한 우리 편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적군의 입장에선 적군이 아군이고, 우리 아군이 그들의 적군이 될텐데도,  적군은 악, 아군은 선이라고 이해했다. 전쟁 드라마는 우리국군의 고군분투 끝에 적군인 인민군을 물리치는 결말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군인들의 전우애를 뜨거운 감동으로 그려놓았다. 한 번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그 드라마에서 적군인 인민군이 국군을 이기는 법은 없었다. 도중에 국군이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정의의 국군이 이기도록 플롯이 짜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는 허구의 이야기였을 뿐인데도 어린 시청자인 나는 남침을 한 북한 괴뢰도당이 언제나 악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를 암암리에 키워나갔다.

   국군아저씨에게 위문 편지를 쓰고, 현충일이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면서 내 또래 아이들에게 그려지는 군인은 드라마에서 보는 인물이었다. 적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은 소위의 이야기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애국이라는 세뇌가 어렵지 않았다.  <전우>드라마는 꽤 오래 방영되었고,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없어진 것으로 안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여름 새벽을 틈타 기습공격을 한 북한의 악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남한의 선이 대결한 것으로 역사가들은 적어나갔다. 학생들은  진실을 교묘히 숨긴 교과서대로 공부하고 시험 문제에 답하였다.

  이어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아픔"을 만들어 냈기에 가장 비참한 전쟁이라는 결론도 내면화해갔다. 그러나 한국 전쟁 후에 일어난 베트남 전쟁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우리나라 국군장병들이 투입되었고,  베트남에서 "따이한"의 용사를 높이 쳐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세계가 공산주의인 악과 자유민주주의인 선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국군은 여전히 용맹한 영웅이었다. 베트남에서 우리 국군이 저지른 악행에 관해서는 결코 이야기되지 않았다. 주민이 단결하여 국가를 지키자는 결의를 한 베트콩에게는  한국의 군인은 적군이었고 악이었는데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으며 전쟁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제 1차 세계 대전 때 전장에 투입된 소년 병사의 이야기이다. 당시의 상황을 잘 그려놓았기에 어떤 이는 이 소설을 '반전 소설' 이라고도 하였다. 소설이 발표되고 곧이어 25개국으로 번역된 소설은 수많은 사람들이 읽으며 전쟁의 비참함을 이해했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로서만 제쳐두고 말았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강한 국가를 원하는 국민들에 의해 히틀러의 집권이 가능해졌고, 세계를 향해 재도전을 시작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독일에서 분서갱유의 수난을 당했다. 그러는 가운데 미국은 대공황을 맞았고, 일본은 러일전쟁과 중일전쟁 이후 세력을 키우며 서양세력을 능가하는 제국이 되고자 하였다. 유럽은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야기된 영토문제와 경제 제재 등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전쟁이란 1차 세계 대전이 끝인 줄 알았지만  동서양의 권력가들의 야망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며, 중동 전쟁이, 그리고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까지,  20세기 이후에도  세계는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절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동시에 무기는 이전 세기보다 더 발달하고 있고,  민족과 국가를 앞세운 대결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1차와 2차에 이어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하다. 동서 냉전이 무너진 이즈음에도 전쟁의 불씨는 도처에 난무하고 있다.  1차와 2차 대전처럼 수많은 나라가 동시에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더라도 자원 문제 때문에 야기되는 국지전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류를 전쟁을 포기하지 않으며 왜 여전히 전쟁은  일어나는가? 작가는 소년병들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말한다.

 

 -책 162쪽-

"우리 우리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프랑스인들도 자기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온 거 있지. 그런 대체 어느 쪽의 생각이 옳은 거야?"

 

-책 163쪽-

차덴이 나타난다. ---- 그는 전쟁이란 대체 왜 일어나는고 묻는다.

" 대체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심하게 모욕할 때 일어나지"

"한 나라가? 그게 무슨 말이지? 독일의 산이 프랑스의 산을 어떻게 모욕할 수 있단 말이야. 혹은 강이나 숲이나 밀밭이 말이야."

"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모욕한다는 말이야"

" 그건 전체로서의 민족이니까 국가를 말하는 거야"

-------

그리고 전쟁은 보통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것임을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보통 사람에서 군인이 되는 순간 적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물리쳐야 할 것이 된다.  전쟁이 아니었으면 독일의 농부가 프랑스의 열쇠공을 죽일 이유란 없는 것이다.

 

-책 163쪽-

" 하지만 좀 생각해 봐. 우리들은 거의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 직공이나 하급 공무원이야. 그럼 무엇 때문에 프랑스의 열쇠공이나 구두 수선공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는 거니? 아니야, 모두 정부가 하는 일일 뿐이야. 난 군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인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대부분의 프랑스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일 거야.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모르고 전쟁에 끌려 나온 거야."

 

전쟁은 개별적 인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적군은 죽어야 한다. 야전병원은 수리 공장처럼 부품으로서의 군인을 수용하고 있지만 기능을 상실한 군인은 폐기된다. 그러한 일을 그들은 전쟁에 끌려와 겪는 것이다.

 

책 207쪽

" --- 이것은 단 하나의 야전병원, 단 하나의 병동일 뿐이다. 독일, 프랑스 및 러시아에는 각기 수십만 개의 야전 병원이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쓰이고, 행해지고, 생각된 모든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이와 같은 대대적인 유혈사태, 수십만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이러한 감옥을 수천 년의 문화로도 막지 못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거짓되고 무의미한 것인가.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바로 야전병원이 보여주는 것이다"

-수년 동안 우리가 해 온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받은 최초의 직무였다. 우리가 삶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다.

 

  소년 병사 파울 보머는 전사한다. 그러나 사령부의 보고서에는 한 병사의 죽음 따위 아랑곳없이 <서부 전선 이상 없음> 이라고  적혀 있다. 

 

  소설은 전선에 배치된 소년 병사들의 모습을 신즉물주의적인 수법으로 담담하게 그려 나갔다.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사실을 바탕을 두어 사실 자체가 진실을 말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파울 보머와 그의 일행들이 먹을 것을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나 죽은 친구의 구두를 탐하는 대화 장면에서 한편 우습고 한편 비장한 슬픔이 전해온다. 소설의 서두에 배가 부르게 먹고 만족해 하는 장면은 이후 본능만이 자신을 살리는 무기임을 사유하는 데로 이어진다. 전쟁의 진창에 빠진 인간의 최대 목표는 죽지 않는 것 뿐이다.

작가의 성찰이 깊어 문장 하나하나에 매료되며 읽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위트와 유머는 쉽게 허물어버릴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까지 생겨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빨리 죽고, 전장에서 먼 장소와 먼 시간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 속으로 사람들을 내몰고 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저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의 제1차 대전 체험을 바탕으로,...
가격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