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炎を越えてー杉原美津子/2014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4. 10. 11. 17:20

 

책을 읽고 내 생각

-1980년 8월, 신주쿠 서구쪽 버스 정류장에서 승객이 탄 버스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여섯 명이 사망했고 수십명이  큰 화상을 입었다. 이 대형 사고에서 80 퍼센트 이상의 전신 화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여성이 있었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스기하라 미쯔코씨였다.

그녀는 이 사건 후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확 바뀌어 버린 현실에 아연하면서 왜 자신에게 이 일이 닥쳤는지를 자문하는 한편 희생자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에 절망한다. 수십 차례의 피부이식 수술과 성형수술을 거치지만, 사고를 만나지 않았을 때의 자신의 인생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좌절과  주위의 시선에 대한 압박으로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자살은 미수로 그치고 그 경험을 쓴 <살고 싶다 다시 한 번>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 된다. 그녀는 다시 삶을 추스려 자신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를 만나러 교도소를 찾아가고, 거기서 " 범인만이 나쁜가" 하는 자문을 한다.

화상의 몸을 하고 그녀는 넌픽션작가로서 활동을 하며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생활을 하다가 화상 치료 중에 받은 수혈 때문에 C 형 간염 환자가 된 것을 알게 되었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그후, 자신의 운명을 다시 질문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2014년 2월에는 NHK 스페셜에서 < 듣고 싶다 마음의 소리를-  신주쿠 방화 사건 피해자의 34년> 에 출연해 수많은 사람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책표지에서 요약

 

 

-9월 여행 중에 신문에서 이 책의 서평을 읽는 순간,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잡아 끈 글자는 越える였다. 어떤 것들을, 특히 마음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생각하고 있던 차라 다른 이들의 마음을 보고 싶었다. 서평을 본 날 저녁에 바로 신주쿠의 키노구니야 서점으로 갔지만  서평이 나온 날이라 그런지 키노구니야에서는 사지 못하였다. 이틀 후에는 좀더 큰 서점인 이케부쿠로 중쿠도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찾았다.

  저자는 자기에게 다가온 이 불우한 사건 이후 한 번도 그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세상은 그녀를 피해자로 범주화 시켰고 그녀에 따르면 " 피해자는 피해자처럼 살아야 할 새로운 운명을 짊어진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화상의 후유증으로 보기 흉해진 딸을 보고 "집에 가만 있으라" 고 주문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딸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부정을 인정하면서도 가족 안에서 자기의 존재가 무거운 짐이 되었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그래도 죽은 사람도 있는데 살았으니 감사하고 살라" 고 당부한다. 그녀는 죽지 못하고 살아나 피해자 역할을 해야 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저자는 그 후 가해자를 면회한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조서를 읽고 그의 성장사와 함께 왜 그 사건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읽으며 가해자를 용서하고 만다. 그녀의 인식은 "어떤 사회가 범인을 만드는 데 동조해 놓고도 범인만 가해자로 몰아간다"는 것에 이르고, 자기 자신도 알게 모르게 어떤 가해자의 역할을 하였음을 고백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여운 삶을 살았던 범인,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의 조건 가운데 어쩌다 마추진 냉대가 쌓이고 쌓여 한 개인의 울분을 키우고 그것이 대 사회적인 분노로 이어져 사건을 만든다는 것이 저자가 발견한 사건의 진실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무기징역을 몇 해 남긴 어느 날 돌연 감옥 안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죽음 앞에 저자는 크게 분노한다.  범인이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던져버릴 수 있는가에 격노하는 것이다.  이후 저자는 소년원 아이들과도 만나며 어떤 이들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간다

 이 책은  불우한 사건과 조우해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34년간의 과정을 담은 글이다. 여명이 얼마남지 않은 가운데 써 내려간 자기 고백서 속에는 죄와 용서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풍부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러면 그녀는 왜 이것을 써야만 했는가. 피해자의 반복적인 이야기에 질린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 하라고 소리치 피해자를 지겨워 하는 데도 그녀는 왜 이야기를 해야만 했는가.

 

" 문자를 배운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는 쓰지 않은 때가 없었다. 알고 싶기 때문은 아니었다. 창작도 아니고 전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써내야만 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자신을 향해  나만의 것을 쓰고 있었다. 내 일인데도 내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내 속에 언제나 알 수 없는 기분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일을 내가 예측을 못하였다. 그 불가사의와 불안과 호기심 때문에 내가 신경쓰였기 때문이었다."

" 내 여명은 반년, 벌써 얼마 안 남았다. 끝은 좀 나중에 라고 치워두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용서 뿐.  목숨이 끝날 때가 되었으니 그럴 때도 되었다. 죽을 때까지, 그 마지막 길을, 살기 위해서 나는 계속 쓰고자 한다."- P256

 

 어제 쓴 글에 내 블로그 십 년 친구인 동우님이 그러셨다. 오랫동안 내 블로그로 마주했던 단어들을 어제 글에서 또 읽으며, 그러나 이제 빠른 속도로 회복을 하고 있음에 기쁘다고 하셨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운명을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자신을 위해 쓸 수 밖에 없었으나 그것을 읽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었다. 이 과정은 그녀의 평생이 걸린 일이었다. 그러면서 넘었다. 글쓰기만이 자기 삶을 망가뜨린 무서운 불길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분노의 불길을 넘어 고요해진 그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