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바나나와 일본인-2015년의 책읽기(8)

자몽미소 2015. 2. 17. 04:18

 

마트나 시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바나나, 일본의 시장에 나온 바나나의 90%가 필리핀의 민다나오섬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명치 유신 이후 일본에 들어온 바나나는  대만에서 생산된 것이 주류였는데, 이차 세계 대전 후부터는 필리핀 산 바나나가 일본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맛에서는 대만 산이 월등하기 때문에 과일 가게에서는 일부러 대만산 바나나 라고 적어 놓고 팔기도 하였지만, 점점 필리핀산 바나나가 일본인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바나나라고 해서 원래의 필리핀 바나나는 아니다. 남미가 원산지인 바나나가 필리핀에서 재배되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그 속에는 다국적 기업의 암약과 농원 노동자의 빈곤과 고생이 있다. 일본인에게  바나나는 값이 싼 과일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바나나의 한 껍질을 벗기면, 알고 싶지 않은 바나나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 책은 세계로 유통되는 <바나나 상품>의 진실에 관한 것이다.

 

글쓴이는 현재 다국적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필리핀의 바나나 농원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취재하고 조사하였다. 이 조사는 일본에서의 바나나 유통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시작된 것인데, 필리핀에서의 바나나 농원은 역사적으로 1920년에서 패전 시기까지 필리핀에서 발달했던 일본 마 농장의 역사도 짚어가게 되었다. 마 농장의 농장 경영방식은  필리핀에서 일본이 물러난 후 현재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바나나 농장 경영방식에 차용했다.

필리핀의 농장주 대부분은 다국적 기업의 전략 앞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땅이 자기의 삶의 터전이라 땅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국적 기업의 가장 아래 단계의 조직으로 편입됨으로써, 자기 삶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긴 농업 노동자들이다. 이 책에서는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착취되고 있는지 소상히 그려내었다.

 

바나나가 상품화 되어 시장에 나오면서 생기는 이익은  값이 싸든 비싸든 상관하지 않고 다국적 기업의 손으로 들어간다. 필리핀의 생산자나 일본의( 또는 세계의) 소비자들은 다국적 기업이 손쉽게 매기는 가격 조작에 의해 항상 지배당하는 입장이다.

필리핀에서 다국적 기업이 암약이 쉬웠던 것은 필리핀 정부 및 고위 관리들이 다국적 기업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1960년대, 필리핀의 관리는 미국에 수출하는 사탕수수가 곧 관세가 매겨진다면서 사탕수수 대신 바나나를 심을 것을 주장하였다. 사탕수수 대신 바나나로 작물이 바뀌어지긴 했지만, 시장이 새로워진 것도 아니고 이익은 여전히 미국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농민들의 자기 주장은 여러 폭력 장치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바나나와 일본인>이라는 제목이지만 <바나나와 한국인> 이라고 해도 읽어내야 할 것은 같은 내용이다.  이 글은 1980년대에 쓰여지고 출판된 것이지만,  저자가 사망하고 나서 몇 십 년이 흐른 뒤에 읽는 독자에게 먼 옛날의 이야기로 읽히지도 않는다. 한국에 들어오는 바나나가 여전히 다국적 기업에 의해 유통되고 있고, 소비자인 우리로서는 여전히  쉽게 상하지 않고 값싼 바나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바나나 만이 아니라 모든 상품이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내 몸에 걸치는 공산품 모두가  유통 이전에  생산 과정이 있다는 것과,  생산과정 속에는 노동을 하는 생산자가 있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하였다.

 

1920-40 년대까지의 이야기는 공부하듯 읽었다. 남편이 조사하고 있는 일본의 시기와 그 시기의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게 많았지만, 메모만 해두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다른 책, < 동남 아시아를 알다>, < 코코스 섬 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