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이 곧 내마음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감정이입이 지나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주변 사람은 물론 자기가 잘 모르는 상대의 감정 상태까지도 쉽게 파악하고 예측하고 감지한다. 본능적으로 뭐가 잘되고 뭐가 잘 안 되는지를 느끼고, 그야말로 스펀지처럼 상대의 감정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혼동하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이입은 공감이나 연민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침범에 더 가깝다.
그들은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너무나 급작스럽게 상대의 감정에 푹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감정의 침범이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예 사람 많은 곳을 피한다. 사람이 많은 곳은 소리나 움직임 같은 감각 자극이 많아서 힘들고 감정의 침범이 자기 마음을 어지럽혀 피곤하다.
베로니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대형 마트만 가면 안절부절못해요. 그냥 사람들이 다 불안해 보여요. 그래서 대형 마트는 가급적 안 가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그것도 손님이 제일 없는 시간에 장을 봐요. 최대한 빨리, 수첩에 적어 간 것만 골라 담고 얼른 그 저주받은 곳에서 나오죠!”
그렇지만 지나친 감정이입이 호의를 낳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감정이입은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일단 이해하고 나면 판단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다. 그리고 정말로 상대에게 감정이입이 되면 지독한 슬픔에 빠진 사람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있거나 스트레스에 찌든 사람 옆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보통 사람도 그럴진대 감정이입이 지나친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가 결국 자기답게 잘 살려면 주위 사람을 보듬어 주고 화해를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이입이 심한 사람은 남에게 잘못을 하면 자기가 더 괴롭기 때문에 착하고 친절하게 살 수밖에 없다. 고의로 못되게 군다는 것은 이들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천성적으로 이익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편이라, 사람이 비열하고 계산적이며 기회주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이들은 남들도 다 자기 같은 줄 안다. 그래서 친절을 자연스러운 태도로 여길 뿐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컨대 이유 없는 악의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거야말로 이들에겐 넌센스다. 따라서 이들은 사람 심리를 슬슬 조종하려는 사람, 온갖 종류의 협잡꾼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악의라는 걸 모르던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는 배신을 거듭 당하고 나면 결국 의심 많고 성마른 성격, 나아가 피해망상에 빠지고 아무에게도 속을 보여 주지 않고 세상을 혼자 살게 된다. 그에게는 고립이 유일한 방어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능력,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상당수는 이러한 능력을 요하는 직업군에 종사하기도 한다.
누구를 위한 텔레파시인가
정보를 포착하고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 내며 미묘한 표정과 억양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 능한 사람, 타인의 감정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의 생각을 잘 꿰뚫어 본다.
그래서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자연스럽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텔레파시에 성공한다. 그들에게 타인의 감정 상태를 내다보고 상대의 기대와 생각을 아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쏟는 주의력은 꿍꿍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크리스틴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저께 책을 놓아두러 친구 집에 들렀어요. 그런데 친구는 집에 없고 친구 남편이 문을 열어 주더라고요.
친구네 부부는 지금 완전히 갈라섰는데, 그 남편은 아내의 친구들, 특히 제가 옆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라고 앙심을 품고 있죠. 문이 열리자마자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분을 품고 있는지 확 느낄 수 있었어요. 내 앞에선 감히 말 못하지만 온갖 욕을 퍼붓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니까 그쪽도 속을 들킨 것 같았나 봐요. 내가 미움의 불에 기름을 끼얹었구나 싶었죠.
나는 얼른 그 집을 나왔어요. 그 사람이 나에게 떠넘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느라 한참이 걸렸죠."
그들은 사람을 너무 잘 파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잘 파악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 같으면 그들이 일부러 그러는 줄 알고 더 크게 상처 입는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보통 사람들은 비언어적 표현에 둔감하다고, 타인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하지도 못한다고 설명해 주면 그들은 안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남들에게 기울이는 관심과 이해를 언젠가 자기도 받게 될 거라는 기대는 무참히 박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