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서원 출판사 堂山書院/남양섬에서 살다

출판사 서평- 남양 섬에서 살다 조선인 마쓰모토의 회고록

자몽미소 2017. 10. 10. 12:54

출판사 보도자료(서평)

 

한때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평안도의 오산고보 24기 졸업생이었는데 중학 시절에는 홍준명, 이중섭과 함께 임파 임용련 선생의 그림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그림은 취미에 그쳤다. 이중섭은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화가가 되었다. 그 또한 일본으로 유학하였지만 동경고등척식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생 전경운은 스물 다섯이 되던 1939년에 사이판섬으로 간다. 태평양의 섬들을 남양군도라고 칭하며 세력을 넓혀가던 일본 제국은 태평양의 섬을 개간할 회사로 남양무역주식회사를 지원했고, 그 회사에서는 그곳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전경운은 남양무역주식회사의 사이판 지점에서 야자원 관리인이 되었다.

 

전경운은 일본 회사에 입사한 조선인이면서, 야자원에서 일하는 원주민 인부들에게는 일본인 관리자였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 또는 일본인이라는 입장에서보다는 어떤 조직의 관리자로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에 대한 열중한다. 그는 사이판섬 북쪽 5도에서 근무하며 야자원 관리에서의 효율화를 꾀한다. 그의 방법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빠르게 변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다. 사이판섬 또한 전쟁터로 변했다.

그가 있던 사이판의 주변 섬에는 미군이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군은 그를 포함한 농장 인부들을 동원하여 미군의 공격에 대비하려 한다. 그는 징집 명령을 받게 되었고, 일본 회사의 사원이었다가 일본군의 명령을 받는 존재가 된다. 그는 야자원에서 일하던 인부들을 인솔하여 일본군을 도우러 나갔고, 비행장 공사와 일본군의 식량조달 등의 일을 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미군은 그를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으로 분류한다. 그는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의 결혼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후로 그는 티니언섬으로 이주해 갔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친다.

1939년에 조국을 떠난 이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은 그로 하여금 지난 삶을 기록하게 한다. 1981년에 쓴 그의 회고록의 제목은 <남양살이 40년을 회고>였다.

10여 년이 지난 후, 자신이 쓴 첫 회고록을 잃어버린 그는 두 번째의 회고록을 쓴다. 10여 년 사이 그는 조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고, 6.25 때 월남하여 한국에서 살고 있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남 이후, 그는 첫 번째의 회고록에서는 쓰지 못했던, 평안북도 정주에서 살던 시기, 오산학교에 다니던 때의 추억을 덧붙인 두 번째의 회고록을 쓰게 된 것이다.

 

그가 볼펜으로 쓰고 여러 번 복사해 묶은 회고록은 그 후 한국의 방송이나 역사가들에게도 전해졌고, 그가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정착해 살았던 티니언섬에도 일부 지인들에게 남아 있었다. 남양군도 연구, 특히 일제 강점기에 남양군도에 갔던 조선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조성윤 교수가 전경운이 남긴 회고록을 입수하였고, 내용을 편집하여 <남양 섬에서 살다, 조선인 마쓰모토의 회고록>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를 살던 어느 조선인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그가 묘사한 사소한 장면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당시의 노동자 임금이나 물자의 가격, 일본군과 일본 회사의 경영 행태, 남양군도에 가게 된 조선인들과 그에 수반하는 모집책, 일본과 조선, 태평양 섬을 이동하는 교통편이나 남양군도에 살던 현지 주민의 삶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그의 자필 회고록은 개인사 속에 펼쳐진 역사가 구체적이고 생생하기에 마치 어제 일을 보는 것처럼 잘 읽힌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개인이 보고 느낀 남양군도의 사회와 문화 및 역사를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전하고 있어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살던 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나 인간적인 모습 등은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의 삶이 모여 역사가 되고, 개인의 기록이 모여 역사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해야만 그 시간이 사라지지 않고 후세로 이어진다.

그의 회고록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백성이었던 조선인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다양한 모습에서 복잡하고 다채로운 인간,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 어떤 사람의 개인사 속에서 사람을 보고, 그 너머의 역사를 보는 경험을, 이 책에서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