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단순한 열정/ 2019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9. 6. 17. 18:32

 

 

 

 

 

 

다시 읽기,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글쓰기

 

P14

* 나는 종종 내가 저지르서아 당할 다소 비극적인 사고나 질병을 상상해서 그것으로 내 욕망을 저울질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이는 상상을 통해 내가 그 댓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내 욕망이 운명에 대항할 만큼 큰지 그 정도를 측정해보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완성할 수 있다면 내 집이 불에 타 버려도 괜찮아" 하고 상상하는 식이었다.

 

P26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 잘 알 수가 없다. 증언의 형식으로 쓸 것인지. 아니면 여성잡지에서 흔히 보듯 고백 수기의 형태로 쓸 것인지. 아니면 선언문이나 보고서 또는 해설서의 모양새를 한 꾸밈없는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언제' 와 '어느 날 '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씌어진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아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나는 내 열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정당화되어야 할 실수나 ㅁ 질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글을 쓰는 데 내게 미리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시간과 자유일 것이다.

 

P38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씌어지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터이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을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아 혁명이.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P47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앞에서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더. 남성의 육체가 갖는 아름다움을 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토록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라워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

* 같은 경우로는 나는 쿠르베의 그림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여자에 의해 그려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웠다. <세상의 근원> 이라는 제목이 붙은 쿠르베의 그림은 누워 있는 여인을 그린 것인대, 여인의 알굴은 보이지 않고 전면에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가 마치 글을 쓰듯이 피렌체에 나의 열정을 새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을 때나 박물관을 둘러볼 때나 A의 영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그 사람과 함께 보고, 그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그 사람과 함께 아르노 강가에 있는 시끄러운 호텔에서 잠을 잤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 이야기를 읽으려면 피렌체로 다시 오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였다.

 

P 72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어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릉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