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憶の時間/2025년 기록

새벽 침대에 온 기억, 2월 20일

자몽미소 2025. 2. 20. 07:46

1."5년전 당신에게 편지를 쓰세요."

라고 일본 여자가 말했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 들은 이야기는 5년 전 자신에게 쓰는 편지 이야기였다.
구독하고 있는 일본유트브였는데 5년 전, 2020년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어주고 그 해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는 거였다.  어제 잠자리에 누워 듣다가 도중에 끄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15분 가량 듣고 소리를 끈 상태였다.

새벽에 깨면서 이 유트브가 말한 5년 전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2020년은 우선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온 해였고, 매매를 하고 은행대출을 받으면서 큰 돈을 관리해야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퍼지면서 삶의 반경이 좁아지던 해였다.

눈을 감은 채였지만 나는 책장과 책을 보고 있다. 지하실 바닥 가득했던 남편의 책들이나, 옮겨야 할 책들을 나르면서 팔이 아팠던 일들이 생각났다.  
남편 연구실에서 이사할 때도, 우리집에서 이사를 할 때도, 노형집에서도 책을 나르고 정리하느라 힘을 내던 한 해였다.
그 해부터 오십견이 생겼다. 이듬해에는 치료가 잘 되지 않아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갔었다.
5년 전을 생각하고 있으니 5년이라는 간격으로 2015년에는 어떻게 지냈지 생각이 이어졌다.
지금으로부터는 10년 전이라 곧바로 떠오르는 게 없고 그 해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아 까마득해졌다.
2015년에 나는, 그 해의 기분은 어땠던가. 무슨 일에 집착했던가, 어디를 자주 갔고 누구를 만났던가.
봄의 장면에서는 원고를 펼쳐놓고 교정하는 내가 보였다. 이 일은 여름까지 이어졌다. 지인의 소개로 교정교열 아르바이트를 하던 봄과 여름, 그 해 여름엔 八王子에서 지냈고 남편은 남양군도에 관한 첫책의 원고를 쓰면서 바빴었다. 소카대 도서관에서 보냈고 아침과 저녁엔 동네를 걸었고, 먹을 거리를 사러 미치노에키道の駅에 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 여름에 걸어다니던 마을의 길과 다카야마 산성의 축축한 나무 냄새 같은 게 떠올랐다. 그때까지는 블로그도 꽤 할 때여서 일본에 사는 한국여성을 만나러 혼자서 시내에 나가보기도 했다.  

제주로 돌아와서는 오키나와에 가기로 한 12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 연락하지 않던 딸이 연락을 해 와서 육지로 만나러 갔었던 게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때 벅찬 마음으로 딸에게 돈을 주었다. 아르바이트로 받은 143만원에 돈을 보태 200만원을 만들어서 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것은 나를 아주 행복하게 한 일이었다. 딸을 만난 후 내가 번 돈을 떳떳하게 줄 수 있는 게 기뻤던 것이다. 200만원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하는 데 적당한 선물 같았다. 그러나 전업주부인 내가 모처럼 번 돈을 주는 것에 의미를 둔 나머지 나는 혼자 기쁘고 좋았던 것 같다. 몇 년 후에 딸은 이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다가 자기는 100만원을 받았다고 말 했다. 머리 좋은 딸은 자기 기억을 더 믿는 것 같아서  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따질 일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의미를 둔 돈이었지만, 액수로 따지면 200만원은 너무 작고 가벼운 것일 뿐이었다.
5년 전,  2020년에 딸은  재차 연락을 해왔다.  2015년 겨울에 다시 만나고 2017년  봄부터는 다시 멀어졌던 것이다. 멀어진 느낌이라기 보다는 나와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느낌이 강해서 나는 차마 딸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딸이 더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 나와 연락하고 싶어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2012년 이후로 딸이 나와의 연락을 끊고 싶어 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나중에 간단히 딸이 말해주어서 듣게 되기는 했지만, 나는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따져볼 수 없는 것이어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2020년 봄에 연락을 해 왔을 때는 나는 몹시 화가 났었다. 어쩌면 나는 딸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나를 다스려 왔는지도 몰랐다. 딸의 갑작스런 연락은 기쁘기도 하였지만  왜 매번 이런 식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따지고 캐물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논리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연락을 끊고 그러는 거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했고 딸도 그러겠다고 했지만 작년 여름부터 딸은 다시 연락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딸과 소통하면서 뭔가 써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내가 연락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 나는 상심이 크지만  왜 요즘 그러냐고 캐묻지 않는 식으로 딸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결국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니 더는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진 종이 전화처럼 어느 한쪽이라도 줄을 당기기를 멈추면  팽팽하던 줄은 느슨해지고 상대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관계의 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이게 내 삶의 기운을 만들어 기쁘게 살게 하고 슬프게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 중요한 삶의 기둥이 그리 튼튼하지도 못했고 노력을 한만큼 아름답게 만들지도 못하였다는 생각도 든다.

커피를 내렸다. 한 잔을 내려 이 메모를 하기 시작했는데, 스마트폰으로 토닥거리는 사이에 커피를 다 마셨다.

식탁 위에 책이 있다. 어제 읽다가 덮은 소설책이다. 나는 어제처럼 오늘도 책을 읽을 것이다. 어제 읽은 책은 오늘이 되면 잊히고  내일 읽을 책은 나를 기다려준다.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에 충실히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리면서도 나를 기다려주는 책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조금 안심이 된다. 읽고 나서도 매일 잊어버리고 있는데도 나를 읽을 사람으로 여기고 가만히 책장에 서서 나를 기다려주는 게 있다는 게 고마워진다.

5년 전에 나는 이 집에 이사를 왔고, 이 집은 책과 함께 하기에 좋은 집이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5년 전을 생각하고 그 전 5년을 생각하자니 오늘로부터 5년 후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2030년에 내가 살아있을지 어떨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절대로.

내게 오늘이 있다는 것은, 지구별이 아직은 나를 살아있게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느 시기까지 나는 지구의 생존자로서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기억도 하는 것이다.  내일의 일을 오늘 미리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08시 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