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마지막 뜨개질-애니메이션

자몽미소 2007. 5. 25. 13:37

 

 

2007년 5월 23일 수요일, 오후 5-6시: 한라대학 소극장, 애니메에션 축제

제목: 마지막 뜨개질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뜨개질한 목도리가 산 모양이 되고 강을 만든다

그래도 그녀는 뜬다.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바느질을 한다.

뜨개질이 길어지고 길어져 이제 벼랑까지 간다. 그녀가 한 번 뜨개질 거리를 들썩했더니 떠 논 목도리가 벼랑으로 떨어진다.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의 속도와 무게 때문에 그녀는 더 빨리 손을 놀려야 한다.

그러다 문득 실이 떨어져버렸다. 그녀의 손이 잠시 멈칫 하는 사이 그녀가 이제 뜨개질의 마지막 실과 함께 벼랑으로 떨어질 차례다.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이미 자기가 떠 논 것을 벼랑끝에서 올려 보지만 이미 그 무게가 상당하다.

그녀는 그녀의 머리를 잘라 다시 뜨개질을 한다. 뜨개질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그녀.

 

기어코 가위를 들어 자기의 손에서 실을 끊는다.

 

인간의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이 만화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근래 나의 집착을 되씹어 보면...,

 

<블로그>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잊어먹지 않기 위해 매달리고 있다

 

<책>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고 여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애석해 한다. 화도 낸다

 

<인간관계>

사람들 속의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관심을 가진다.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지만 생래적으로는 아주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싫증을 잘 내고 곧 포기를 한다. 나에 대해서 그렇고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자꾸 사람 속의 내 존재를 확인해 본다. 이 모임 저 모임 발을 들여 놓았다가 빼내는 것을 반복한다.

 

<과거>

내 몸은 현재에 있고 마음도 여기에 있다고 여기고 있으나 자꾸만 지난 시간에 묶인다. 꿈에서 나는 딸을 만나고 그 딸이 지금 내 옆에 오는 것을 경험한다. 오래도록 미워해야겠다거나 분노해야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을 꿈속에서는 어이없이 용서해 버리고 웃어 주기까지 한다. 꿈에서 깨면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다시 다짐한다.

 

<종교>

결코 나는 종교인들이 요구하는 신앙을  내 안에서 잘 키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자연의 위대함은 신의 창조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그게 유일신 하느님이라거나 단군왕건의 아버지인 환웅이거나 라고 믿지는 않는다. 예수는 그 당시의 무당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오늘날의 무당은 미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말 그대로의 무당도 그렇지만 교회의 목사도 성당의 목사도 무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 모양과 능력이 다소 다를 뿐, 사제라고 하는 그 일은 지난 세기의 예수가 했던 일을 조금씩  나누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나의 생각은 매우 불손한 것인가? 그래서 성당에 다시 나간다. 회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것은 자만일까? 또는 내 생각에 대한 집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