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매트릭스2-리로이드

자몽미소 2003. 6. 19. 22:28

매트릭스2-리로이드

 

 

생이 운명지워진 인간에게 기회란 무엇인지?



우리 나라에 오신 하버드졸업생 현각 스님께서 한겨레에 글을 남기셨는데, 매트릭스를 너무나 재미있게 봤다네,

어라, 1편을 보아하니 2편도 어떻게 갈지 예상되는 터이라 헐리우드영화 보고 나올 때 느낄 여러가지 복잡 미묘함을 다시 겪지 않을 양으로 아들이 함께 가자고 하는 걸 뒤로뒤로 미루고 있던 참이었는데

현각 스님 왈, 한국에서 이 영화를  종교 문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다나, 그래 스님의 글을 유심히 읽고 있던 중에  마침 저녁 밥도 먹었고, 밖엔 비가 오고, 아들은 보아하니 느슨한 저녁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눈치라 얼른 " 너 영화 볼래? 매트릭스!"

" 오케이" 목소리가 높아진다. ㄴ

아들과 나 , 함께 영화를 봤지



물론 영화는 재미있었고  사람 이름과 지명들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오고 가고 상징들은 불교의 철학과 내가 알 수 없는 이러저러한 철학과 학문을 두루 두루 쓸어담는 것 같더군.

나도 함께 심각해졌지.

"우리 모두는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유를 알기 위해 너는 문으로 가야 한다." 하는 말에선 신과의 만남에 대해서 읽고 있는 근래의  나의 독서가 생각의 행간을 메우고,

"믿음"을 강조하는 모피우스의 태도는 성당에서 마음 내키지 않는 미사를 하고 있을 � 겪게 되는 갈등을 생각나게 했지.

강론 중에 믿음이 있는 신자라고 표현되는 이들과 미사에 결석을 잘 하는 나 같은 이가 비교가 될 때마다

" 믿음"이란 게 뭐지? 무얼 믿지? 믿어야 하는 게 있는 걸까? 뭘 믿고 싶은 거지?

뭐 이런 저러한 생각들이 나는 게 사실이니까.

네오를 구원자 (The one)로 믿고 있는 모피우스의 말, "세상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 하는 말이나  "'자유의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살아있으니까" 하는 말들은

근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과도 연결이 되어 사뭇 진지하게 영화를 봤는데



네오가 가까스로 소스로 들어간 후 만나는 시스템의 창조자를 마주하면서 괜히 기분이 나빠지더군.

네오는 창조주와 만나 매트릭스, 네오 ,  또한 인간의 공간인 시온까지도 6번이나 만들어졌었다는 이야길 듣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하느님 또한 인간의 불확실성, 프로그램의 불확실성 때문에 실수를 계속 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그러니 이 세상은 하느님의 실수의 연속일 수 있겠다는 말이 되는 군. 이 영화에서는 말이야.

네오 또한 구세주가 될 수 없으며 창조주로서는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 그러니 "사랑" 이라는 더더욱 불확실한 변수를 가지고 있는 이번 여섯번째의 네오는 인류에게 " 사랑"을 설파했던 예수가 우리 시대의 구세주로서 끝을 내고 새로운 예수나 부처나 마호메드나 공자라도 나오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현각 스님의 글 을 읽어서 그런가 이 영화를 또 이렇게 하느님이니 예수님이니 이렇게만 보게 되는군. 어 나의 머리에 현각 스님이 심어 놓은 프로그램이 입력 되어 버렸다. 하긴  주체성 없는 사람들은 복제도 금방 바로 되어 버려서 원본과 구별하지도 못하는 앵무새가 되곤 하지,  스스로의 힘에 대해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우매하기가  쉬운 법.

시스템의 창조자가 네오에게 말하는 건 인간의지의 문제 였는데, "자유의지를 가져 너의 뜻대로 하라" 라고 주문 하지만,

선택은 언제나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 네오는 그 갈림길에 있다.

창조주의 욕망은 완전한 프로그램과 시온을 만드는 것이니

또다시 일곱번째의 네오는 나올 것이고, 인간은 또다시 네오를 필요로 하게 될 터이다. 왜냐하면 시스템은 계속 업그레이드 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것이고 프로그램은 복제의 힘이 더욱 강해지면서 더욱 위협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세계인 시온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창조주의 몫인 것 같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악을 선과 함께 만든 것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걸까

내 머리로는 감당이 안 되는 과부하가 걸렸다

역시 나는 기능이 저조한 프로그램인가 봐.

나오면서 생각나는 건, 구세주로서의 네오도 창조주로서의 그 남자도 모두 백인. 훤칠한 키의 백인이었다는 것과 우직하게 자기의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모피우스나 프로그램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충실히 자기 직분에 목숨을 거는 인물은 유색인종이라는 것.

힘있는 자 들은 그게 악당이든 아니든 백인이라는 사실은 이것이 우리 의식을 통제하고 있는 또다른 인종적 편견의 프로그램 같다는 거지.

마치 자선과 만용이 함께 가는 미국인 것처럼, 이 헐리우드 영화는 이 세상의 창조와 멸망, 인과 관계, 믿음과 의심,  종교와 인간 등등 온갖 것들 다 가져다 놓은 잘 차려 놓은 밥상 같았어. 채식과 육식이 함께, 날 것과 익힌 것이 함게,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함께, 스프와 된장을 함께 올린 밥상처럼 언뜻 잘 꾸며놓았으나 모르는 곳에 여러 개의 독들이 숨겨진 영화였지



우리 아들이 집에 돌아와 말하더군

엄마! 나는 영화 보는 시각이 유치한 걸까?

왜!

나는 시스템 창조자 남자가 저기선 뭐 먹고 살지? 뭐 이런 것만 생각하게 되던데!



나는 그 말을  늦은 설거지를 하면서 들었는데

바로 그게 내가 이 영화를 본 이후 내려야 할 대답인가 보다



이 세상의 존재 이유, 나의 존재에  대해서 물어 보려면,

그걸 깨달으려면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 보려면 먼저

오늘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처럼 저녁밥을 먹고 씻고 자야하는 일이 남았다. 야생의 인간으로 그 본연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영화의 어느 누구도 밥을 먹지 않았는데 그거야 그건 게임이고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지.



세상을 구해 줄 이가 예수이건 네오이건 아니면 또 다른 네오나 아니면 영화가 비틀어 보여준대로 제 7의 부처님이 된다 한들

우주의 한 존재인 내가 오늘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살릴 일이다. 먹고 버리고 자고 일어나는  가장 원초적인 일로서

자신의 구원을 준비할 일이다.  몸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모든 것이 나에게로 와서 구원이 되고 있다면 하루를 여는 아침과 몸을 누이는 저녁마다 나는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하리.

매번의 하루를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일이 창조주가 우리에게 마련하신 기회라는 걸 나는 이 영화의 작은 메세지로 받아들인다. 그게 이 영화를 창조한 이의 뜻과 맞든 안 맞든 그건 알 바 아니고.

# 03|06|19 01:5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