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자동차, 문명의 이기인가 파괴자인가/스키타... [책읽기]

자몽미소 2003. 8. 2. 17:00

자동차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라는 자본주의 경제법칙과 고도 성장기의 시대 정신에 가장 잘 맞는 상품이다.
그렇다면 자동차란 무엇인가?   자동차가 이기심을 확대하는 도구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는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악영향, 약자에게 미치는 악역향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며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미 가해자의 위치에 있으며 자동차 이용에 대한 가치관이 바르지 못하다면 오염된  세상을 더욱 오염시키게 됨을 지적하고 있다.


이미 이 사회는 각종 제도와 법규, 도시 계획과 도로 건설 등에서 보행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기 전에 자동차의 권리  즉, 자동차를 가질 수 있는 강자, 자동차 기업을 우선하고 있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배기가스의 매연과 소음이 유발하는 불안, 스파크 분진과 같은 것으로  도로가 침식당해 보행자로서의  권리를 빼앗겼고 사람이 살아야 할 거리는 자동차가 중심이 되어 다니는 거리로 위치 바뀐 지 오래다. 도심화가 심해질수록 인간은 없고 자동차만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놀라게 되는 것은 내 속에 이미 뿌리 깊게 자리잡은 자동차중독이다.
첫째,  나는 도시 외곽으로 가서 도로를 접하면 곧잘 추월하고 과속을 하기 일쑤다. 나의 작은 차 티코는 그렇게 경망스럽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해도 체면에 먹칠을 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가며,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쏙쏙 빠져나가는 자동차 경주를 하고 있는 기분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아뿔사! 나는 공격형 운전자가 되어 있으며, 자동차 종합 보험에 들어 있으므로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안이한 미신까지 믿고 있었다.
하물며, 자동차 종합 보험이라는 것도 사람을 치고 어쩌면 사람이 사망할 것을 전제하고 들어있기 때문에 자동차 보험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위해서라기 보다 자동차를 위한(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이다. 만약에 차 사고가 나면 내개 해결할 수 없는 보상비, 도덕적 책임감 등등을 내가 가입한 기업에서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둘째, 나는 꼭 자동차를 탈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님에도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다. 날씨가 더우니까 걸어가기 싫어서 목욕갈 때도 운전하고,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의 여러 곳(서점, 영화관, 마트, 헬스센타, 커피�)에 갈 때 조차 자동차를 탄다. 여름엔 얼굴 그을릴까, 겨울엔 추워서 소름 돋는 게 싫어서, 등등 아주 사소한 이유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버릇.


그래서 이번 참에 자동차 이용을 자제하여 볼 요량으로 시간을 다투지 않는 일은 걸어서 다닌다는  나름대로 소박한 자동차 운행 원칙을 세워 보았다.


그러나 곧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보행자가 되는 순간 나는 여러 가지의 권리를 박탈 당하고 있으며,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자동차와 사람이 다니는 길 위에서 매우 약한 존재임을 느껴야 했다.


우선, 자동차 매연이다. 지나가면서 내뿜는 자동차 냄새와 소음은 거리의 공기를 숨이 콱 막히게 해 놓았다. 집 근처는 양옆으로 주차된 차들 때문에 길 가운데를 다녀야 했는데 자동차가 오면 피할 데가 마땅치 않았기 �문에 바로 옆에서  기분 나쁜 자동차 냄새를 들이마셔야 했다. 동네에서도 물론이거니와  큰 길에 가면 도시의 나쁜 냄새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다 맡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니 가로수로 심어 놓은 나무들이 힘들어 하지.
저기 저렇게 가는 저 사람들이 모두 긴박한 일로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을까 의문이 갔다. 아닐 것이다. 저들도 어제의 나처럼 영화관에 가거나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현대 산업 사회의 상품들은 모두  화물차로 실어나르는 유통의 산물이고 또다시 그것들을 실어 나르려 마트로 행차하는 차량들, 거기 소비에 중독된 인간들이 타고 있다.


또한, 길거리에서 나는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의 면적을 자꾸만 침해 당했다.  도로 양옆으로 세워진 자동차들 때문에 주택가에서도 자동차들은 엉키게 마련이고 나는 그 자동차를 피하며 걸어야 했다. 어떤 아이가 자동차의 크랙션에 노출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는 이제 골목길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들의 공간을 잃어 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문제만 꺼내놓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ㅇ는 무책임한 책이 아니다. 저자는 해결방향을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행동방법까지 제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대로 그대로 진행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만약 내가 어떤 독재자라도 된다면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주택가엔 자동차 접근 금지 한다 는 명령을 내린다면 1가구 2-3대의 자동차 보유 같은 요즘의 자동차 소유 현상 같은 걸 줄일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집 앞 까지 자동차가 오지 않는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게 낫겠네 하고 자가용을 포기해서 동네 공기를 조금 더 깨끗하게 하고 동네에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게 할 수는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실상 나의 그런 독재정치는 굉장한 저항을 맞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동차, 자가용 자동차와 관련하여 산업을 일으킨 기업에서의 저항,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문제 때문에 저항이 일어나고 자동차와 관련한 각종 보험회사, 부속 공장, 하물며 세차장 사업자까지 들고 일어난다면 나는 한 3일쯤 독재 정치를 폈다가 물러나는  생명 짧은 독재자가 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자동차 없는 세상은 팥앙꼬 없는 찐빵이다" 하고 아우성 한다면 아이구!!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의 소박한 반성을 혼자 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는데 나는 이 책의 핵심을 자동차가 나에게 무엇인가에서  이런 시대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으로 바꾸어 읽었다. 대량 소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한 삶을 질문한다면 , 자동차란 무엇인가의 질문은 우리 삶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 대치시킬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 2003|08|13 16:3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