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

자몽미소 2008. 4. 10. 20:26

 

 

 

 

 

 

 愛と死をみつめて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전 후한 이야기다.  그 당시 일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도쿄 올림픽은 생의 목표나 되듯이 앞으로 전진하려는 이들이 바라보는 지침목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이 오륜기에서도 휘날리고 있는 것 같았다.  

희망!

어떤 이에게 희망은 현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미코가 그랬다. <연골육종>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살려면 얼굴의 반을 깍아 버려야 하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반 년 밖에 살 수 없는 여자, 그녀를 사랑하게 된  마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짱짱한 대낮처럼 환하디 환하게 남은 이들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희망>, 살 수 있다는 희망 뿐이었다.

 

이들이 처음 서로를 알게 된 것은 병원 안에서였고, 자신의 병이 중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미코는 마코와 편지를 주고 받고 싶었다. 첫사랑의 시작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후 그녀는 자기 삶이 그에게 누가 될까봐 그를 피하고, 반쪽의 얼굴로는 살아갈 수 없음으로 수술을 포기한다. 삶을 포기할 때 물론 마코에게도 냉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생명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에게 헌신하는 마코의 사랑을 믿고 수술을 하고 사는 동안만이라도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주인공의 착한 모습, 사랑을 믿고 그 사랑에 헌신하는 주인공들이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는 열일곱살, 열 여덟살, 그리고 흘러흘러   스무살 스물 두 살...그 후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짧디 짧은 사랑은 비극적인 것이지만, 주인공 미코가 스스로를 일컬어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고 되뇌는 모습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 순수한 사람의 순수한 사랑이라 할만하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감정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사랑을 그들이 하고 있어서 속물이 아닌 그들이 더욱 사랑스런 연인으로 보였다. 어떻게 한 여자는 이렇게 착하고 한 남자는 그렇게 헌신할 수 있을까.  <진실한 사랑>의 교본을 보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  사랑에 관한한 내 가슴은 더웠던가 과거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인공 어머니가 딸이  마코의 사랑을 믿고(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 수술을 결정하노라는 말을  하였을 때는 ( 내 나이가 이미 그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으므로), 이런 사랑이야기가 그저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허구의 순애보 라고 한 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던 것을 어머니에게 옮겨보면,  철없을 땐 다 저렇게 되지! 저렇게 해서 결혼하고 살겠다고 해도 결혼 후엔 변하는 게 인간이지 하면서 냉소적인 얼굴을 하다가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내가 다시 열일곱의 주인공이 되어 그녀와 그의 감정에 몰입하기를 반복했다.  

 

아들이 이 영화를 먼저 봤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주인공하고 자기 여자친구가 닮았다는 것이다.  얼굴인지 성격인지.. 하여간.. 병에 걸린 건 아니고.., 그렇다면 아들은 이 영화에서  자기의 감정과 닮은 마코를 봤나 보다.  아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란 이런 것이야>의 정답을 배웠겠고 여자친구에게 향하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보기도 했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러해야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건 책과 영화의 이야기이고,   그 복잡하고 힘든 사랑의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이제 막  길을 나서는 아들을 보니, 한편 이 영화에서 마코가 겪는 열정과 고난이  우리 아들도 겪어야 할 일이라 안쓰러워진다.

 

 <우리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라면, 복잡한 사랑 같은 건 안 할 거에요!> 라던 여주인공, 미코. 물론 그렇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나도 꼭 죽을 것 같아, 그 사람이 없이 산다는 것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야!, 그렇게는 살 수 없어!> 라는 감정이 생길 때, 불꽃 튀기는 그 시기에 불나방이 되어 보는 것, 앞 뒤 재지않는 감정의 몰입, 그래서 청춘의 한 시기에 <사랑>을 해 보는 일은 스스로를 <생명>으로 만드는 일인가 보다. 죽음과 삶을 뛰어넘는 생명, 그래서 몸이 죽어도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고, 추억 속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이 되는 일은, 주인공 미코가 그랬듯이 살아 있을 동안 사는 것처럼 살아야만 오는 행운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주고 받은 편지는  380여 통, 실지로 만난 날은 56일.

그래서 남은 남자는 여자와 주고 받은 편지를 책으로 낸다.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이 때문에 예상치도 못할 일들이 겹쳐 일어난다. 책은 계속 출판되지만 마코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비난을 받고, 그나마 독자들로부터의 편지가 위안이다. 그리고 그 중에 자신을 조용히 질책하는 독자가 한 명 있고...

 

삶은 계속 되어야 하고 사랑은 그러므로 언제나 필요한 것이며, 추억은 영원토록, 적어도 살아가는 동안 죽지 않는다.  는 것을 이 영화에서 봤다. 어떤 이의 독특했던 사랑 이야기, 그 추억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더 뚜렷이 보이는 이야기는 남자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남자는, <네가 죽으면 나는 못 살 거야!> 라던 남자는 여자친구와의 편지를 책으로 냄으로서 세상의 이목을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버렸다. 그 남자가 겪었던 사랑과 그 사랑을 찬미하는 많은 독자들이 모여들기도 했지만 언론은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죽은 그녀를 배반한 자라고 남자를 응징하려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 남자는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감싸주는 여성이 나타났다.  미코가 죽어 버린  일도 힘들었지만 그 후 책이 잘 팔린 일도 힘든 일로만 여겨지던 남자는 다시 조용히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우는 힘을 느낀다. 마침내 자신에게 기댈  내 준 여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한다. 이 일로 그녀도 다시 언론에 시달린다. 앞으로 그 두 사람은 살아가는 언제까지나 죽은 미코와 함께해야 할 처지다.

새로운 사랑은 마코에게  말한다. <당신 곁엔 언제나 미코가 있을 거에요>.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하는그 곳엔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더 어려운 건 여기서부터이지 않는가,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그 다음이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지나간 과거는 추억이 되면서 책이 되고 영화가 되고 주인공이 원하지 않았지만 비극의 여주인공이 되어 언제나 청춘을 살아내지만, 그 추억을 안고 사는 그들, 살아남은 자는 매일매일 늙어가야하는 것이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도 함께 받으면서 이겨내야 할 것들을  발걸음 디디는 곳마다 발견하면서.

 

영화는 영화로 보여주고 말하기 때문에 60년대의 허름했을 병원도 정갈한 방안처럼 고왔고, 병원 옥상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언제나 다사로워 보인다. 미코가 병원 사람들과 지내는 오래고 더딘 시간마저도 유쾌한 농담으로 발랄하다. 실지로는 병원에서의  투병생활을 그렇게 아름다움으로 변환시켜 낼 수 없는 우리로서는 다만, 좀 더 길게 살아가야 하는 지리멸렬함을 잠시 잊고자 시작과 끝이 있던 이야기에서 사랑의 낭만을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낭만은 타인의 삶이 글로 재탄생되고 영화 화면에서 색깔이 입혀진 후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어제와 오늘을 보내는  그렇고 그런 평범함조차도 영화적 색깔을 입혀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받았던 울림을 이 시간에 매달고 카메라가 포착한 구도와 색감을 이 공간에 붙잡아 보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동이 지속되는 며칠 동안만이라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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