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드러머-싸움과 북

자몽미소 2008. 4. 2. 09:49

 

          

 

원 제목은 전*고: 싸움과 북 이다.

홍콩, 사업을 둘러싼 조직간의 암투가 있는 곳이다. 아들은 비정한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마음 한 구석의 울분을 드럼을 치는 것으로 달랬다. 이후 그는 드럼 연주자가 된다.  홍콩의 유흥과 그의 드럼은 닮았다.  아들이 어떤 여자와의 관계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그 여자는 아버지가 신세를 지고 있는  두목의 애인이었다.  두목은 자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그 아들의 양손을 원한다. 아버지의 힘을 믿고 까불던 아들, 험악한 아버지이지만 그 아들을 보호하고자 아들을 대만으로 피신시킨다. 마음에 안 드는 딸과 아들에게  화가 난 아버지는 으르렁 거리지만 그런데도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본능, 자식을 어쩔 수 없어 화가 나면서도 보호하고자 하는 동물적 본능이 보인다.

 

대만으로 도망간 아들은 무료하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애인을 만나고 싶지만 그를 감시하는 아버지의 조직원 때문에 불가능하다. 어느 날 산 속에서 울려오는 북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가슴 속 저 너머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북소리에 매료된 아들.

아들은 그 집단 속에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 집단은 홍콩에서 북이나 치던 그와 매우 다른 성질의 사람들이다. 매우 재미있는 것은 그 아들을 수련시키는 그들 집단의 책임자의 온화함이다. 그는 미소지으면서 그를 가르친다.그의 교육법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돌멩이가 마침내  반들한 조약돌이 될 때까지 자기의 돌멩이 자루를 어디든 메고 가야 하는 훈련 같은 것이다. 아들은 잘 길들여지지 않는다. 너무나 이질적인 이곳의 삶의 방식은 아들을 지치게 한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경험한 그들과의  세계를 잊지 못한다.

 

번잡한 홍콩의 거리와 고요한 대만의 숲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조직과의 싸움으로 언제나 위험한 상황인 아버지와 산 속에서 무예를 닦은 지도자, 그녀는 어머니다운 인내로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한 쪽이 음모와 폭력의 도시,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라면, 또 한 쪽은 평화와 본질, 정신의 승화를 위한 삶이 있다.

잠시 비춘 홍콩의 야경, 지난 번 여행 때 봤던 풍경이라 낯익었다. 영화에서 다시 보는 홍콩은 여전히 화려하고 분주했다. 그 속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혹은 영화의 내용처럼 서로 할퀴며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전반을 이루는 건 대만의 숲, 냇물이 흐르고 푸르름이 깊은 계속, 꽃과 작물이 자라는 들판이다. 이것도 또한 좋았다. 실은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내 눈은 가보지 못한 땅의 자연을 훑고 있었다. 영화가 이야기로 보여주려는 게 무엇이었든, 영화를 보는 사람은 홍콩의 거리와 대만의 숲을 한 번씩 따로 따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알아야 할 것을 다 알아 버리는 듯했다.

 

아들은 이후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감옥에서 아버지는 조직원의 사주를 받은 이의 흉기에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남은 선택은 두 가지였다. 아버지의 조직을 물려 받을 것인가. 아들은 거절한다, 두 번째 선택은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여야 하는가,

 

아들은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마침내 찾아 냈지만, 그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려는 순간, 자신의 귀에 당도한 어떤 울림을 감지한다. 풀밭의 풀들의 소리일까,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일까,

 

아들이 발견하는 세상이 열린 듯하다.

" 나도 한 순간, 나와 아버지의 시간도 한 순간"

 

 

영화는 매우 영화적인 문법을 따르는 것 같다. 

재미를 따져 볼 수 없는 영화, 그런데도 남는 게 있는 것 같은 영화였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마음엔 아들이 쳤던 북소리 보다, 또 영화 속의 인물 어느 누구보다도, 영화가 잡아낸 대만의 숲이 기억에 남는다.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북을 치는 일의 예술을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열정도 그들의 것이지 내 것으로 오지 않기 때문일까,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소리보다는 화면 색깔에 매료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