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민족지연구 쪽글 (2강)

자몽미소 2009. 9. 7. 15:20

 

<처음 만나는 문화 인류학- 1장, 2장, 14장>을 읽고,


 


1.앎의 확장


 연 회원으로 등록하고 사우나목욕탕에 다닌 적이 있다. 운동 시간과 목욕 시간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가족 보다 더 자주 얼굴을 보게 되더니 두 어 달이 지날 즈음에는 사는 동네, 남편의 직업, 아이가  몇이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더 나아가서는 친정 동네이름까지도 알리고 싶지 않으나 알리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낯을 가리는 나에 비해서 성격이 활달하거나 또는 성격 좋아 보이는 여자들이 먼저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뜨거운 목욕물에 몸 담그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게 민망해서 그런지 상대에 대한 관심을 신상파악으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상대에게 물어 본 게 없는데 상대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여야 하거나, 듣고 싶지 않은데도 물통 속에 맨몸을 담근 아줌마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매일 반복적으로 계속 되었다. 어떤 나이든 여자는 사람들이 왕 언니 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매일 설탕 넣은 커피를 한 통 가득 가지고 와서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는 커피를 안마시겠다고 하면 섭섭해 하기 때문에 설탕 넣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매번 고맙다며 왕언니의 커피를 얻어 마셨다. 서 너 달이 지나자 왕언니는 나를 부를 때 내 이름대신 “야!”라고 부르거나, 대화 때는 반말을 했다. 반말은 친해졌다는 표시였다. 제주도 아줌마들끼리 표준말로 “~ 어요” 체를 쓴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게 되니, 제주말로 이야기 하게 되는 것인데 나이든 쪽에서 반말을 한다는 것은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렇게 믿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 많은 사람에겐 “언니!” 라고 부르고 존대말을 했고 가며 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다. 셋 이상이 모이면 목소리가 커졌고, 나누는 대화도 드라마 내용에 관한 것이라든가, 연예인의 가십거리 등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말 말고 강정 해군기지에 관한 것을 이야기 해 보자거나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관해 토론해보자 하지는 않았다.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은 눈치 없이 잘난 척 하는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류의 이야기가 전혀 안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는 정치 이야기도 뜨거운 것 같았다. 얼음 가득 채운 커피를 마셔가면서 열심히 주장하고 반박하는 목소리가 사우나 밖에서도 들렸고 얼음으로도 식히지 못하였는지 사우나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냉탕에 들어가서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 있었다. 무슨 이야길 저렇게 열심히 하나 귀 기울여 본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대개 어제의 뉴스를 오늘 다시 제주말로 재방송 하는 정도의 이야기이지 토론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대개 설탕커피를 얻어먹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의 목청이 크고 당당하다.  ‘여러분, 오늘은 저의 설탕 커피를 드십시오’ 라며 선심을 쓰지 못한 나는 한 번도 내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만났던 사람들과 1년여를 함께 했으나 그들에 관해 아는 것도 없었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이지 서로 만나는 사이,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 다녔던 일터의 동료를 목욕탕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왕언니와도 아는 사이인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는 걸 보던 왕언니가 둘이 서로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오래 전 동료였던 언니가, “ 잘 아는 사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왕언니도 덧붙였다. “ 나도, 이 애 완전 잘 알아!”

사실 나는 두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오래 전 일터의 동료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이름을 잊었고, 목욕탕의 그녀는 모두 ‘왕언니’로 불러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 겪어본 결과 성격이 무난하다 싶었고, 오전 내내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봐서 크게 어려운 것 없이 살겠거니 하는 짐작, 얼굴을 구별하여 알고 있고, 뒷모습을 봐서 아, 그 사람이구나 할 정도의 앎 밖에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들과 한 번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눈물 흘리며 과거의 아픈 시간을 고백하여 본 적도 없다. 지금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으며, 어제 읽은 책이 무엇인지 나의 미래를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도 말하여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나를 잘 알고 있다 하였다.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안다하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모르고 있는 나를 그들이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한편 찝찝한 기분도 들었다. “안다는 것”이 의미가 서로 달랐을 수도 있다. 내가 안다고 할 때의 척도가 그들과는 다른 데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나는 <문화인류학>에서 우리와 다른 문화, 우리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연구하고 알게 되는 일이 혹시는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안다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그리고 연구자의 저작을 읽은 우리들 또한 연구자의 언어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만을 갖고 <그들을 안다>고 하는 건 아닐까? 자기가 만든 연구 성과물을 연구 현장에 들고 가서, 현지인들을 모아 놓고 나는 너희들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알려주거나 현지 사람들에게 오해한 것은 없는지 검토를 요청하는 문화 인류학자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기우는 문화인류학에 대한 편협한 나의 생각에서 비롯하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문화인류학은 다른 문화를 아는 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를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되면서 문화 상대주의의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자문화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한경구)


“현지조사를 통해 문화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사람들을 연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홍석준)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는 한마디로 현지문화에 대한 폭넓고 깊은 참여를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자 현지에 간다”(홍석준)


“현지에서 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책이나 다른 문헌 연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의 미묘하고 세밀한 측면들, 그와 관련된 인간 행위와 사고 방식의 미묘한 차이점들, 그것에 담긴 상징적 의미들을 현지인의 시각에서 포착해내는 작업인 것이다” (홍석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보존하는 방식인 인류학적 민족지는 현재 사람들이 처한 조건을 이해하고 미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인류학은 모든 종류의 문화를 연구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실제로 이 시대에 어떤 것이 선택되어 일어나는지를 찾는다. 나아가 인류학은 가능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유철인)


사람들은 문화인류학을 통해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다른 문화의 사람들로부터 우리 인간의 문제를 이해하고 배우게 됨으로써 미래를 만들어 용기와 방법을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은 그래서 단순히 어떤 문화와 어떤 사람들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2.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문화인류학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글을 읽으니 이번 문화인류학 강좌를 통해, 또한 현장연구의 방법을 배우고 이후 현장연구자가 된다면 내 자신을 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문화인류학은 ‘인간의 거울’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구태여 다른 문화로 현지 조사를 떠나는 것은 자신의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즉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한경구)


문화인류학은 인간의 거울이며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것이라 하니, 이 소중한 경험을 통해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를 만날 수 있을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인류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어떤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관찰하고 귀담아 듣는 능력과 경험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유철인)


어떤 문화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그 경험을 통해 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문화인류학 공부는 어떤 종교의 기도와 수양보다 한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 사귀는 일이며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이며 어려워하는 내 성격으로 현장 연구자는 고사하고 이번 학기 말미에 낼  사례 발표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부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염려도 크다.


“현지조사자는 매사에 흥미가 많고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 관용적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고 남을 존중할 줄 알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다른 사회에서 온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홍석준)


홍석준의 글처럼 나는 가끔 흥미를 가지는 일이 있긴 하지만 매사에 흥미가 많지는 않고, 특히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긴 있으나 선을 그어 놓고 하는 사랑이지 다른 많은 사람들까지 포괄할 만큼의 에너지는 없는 사람 같다. 게다가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다른 사회에서 온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여야 하는 것인데, 토론을 하려고 하다가도 남의 주장을 듣다 내 생각이 뭔지를 곧잘 잊어버리는 나,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원래 따져 물으려했던 것은 고사하고 감동까지 하고 마는 내 성격으로, 현장 연구에서의 정체성 유지가 가능한 일인가 싶다. 내가 물어 보려고 했던 것을 끝까지 잊지 않고 있다가 질문하며 내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 그런 연구자의 모습은 용감하고 지적으로 보이나 사십 몇 년을 살면서 보아온 내가 나를 알건데, 참 힘든 노릇인 것이다. 게다가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가장 중요한 조사 도구는 인류학자 자신이기 때문에, 인류학자는 현장에서 자신의 체험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경험 세계를 차이점에 주목해 들여다보게 된다. 이때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알아내는 능력이 곧 인류학적 감수성이다. 인류학적 감수성은 경험에 대한 자기 성찰의 노력으로 얻어진다.”(유철인)


감수성이라면, 여자로서의 감수성, 즉 남편과 아들이 내게 거짓말을 하나 안 하나 하는 것에는 촉수가 귀신처럼 발달했지만, 인류학적 감수성이라니, 뇌세포가 머리카락 빠지는 것보다 더 빨리 쇠약해지고 있는 내 나이에도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여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이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인 만큼 인류학적 감수성은 학문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발달한 학부생들, 파릇한 20대의 대학원생들에게나 적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덕목이 아닌가, 책을 쓴 이들도 노쇠한 아줌마에게가 아니고 대학교 교정에서 피어나는 어린 꽃과 나무 같은 아이들에게 이 말을 했을 것이라 짐작을 해 본다.


3. 문화인류학, 그 거울을 통해 봐야 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홍준의 책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인용되었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하던 조선 문인의 명언을  떠올린다. 문화인류학 또한 낯선 문화의 낯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려면 현지인과의 감정 교류와 솔직한 만남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그 무엇도 알거나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전제하는 것이다.

여전히 모자라고 작은 사람인 내가 고작 한 학기의 강좌, 문화인류학 엿보기를 하면서 평생을 이 학문에 몸 바쳐 살아온 인류학자의 덕목을 미리 갖추었거나 곧 갖추게 되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희망이다. 인류학자들조차도 평생 익숙한 곳을 떠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배우길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이 내가 이 강좌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내 자신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보는 일일 것이다.  연구서를 쓰기 위한 현장연구가 아니라, 사람들을 낯설어하는 내 소극적인 성격을 변화 시켜 보는 일에서부터, 40대용 뇌세포만큼이나 굳어 버린 내 편견의 그물을 조금씩 걷어 보는 것, 그래서 나와 다른 소중한 타자를 만나는 일을 즐거워하는 내가 되기를 문화인류학 공부에 첫 발 디디며 소망해 본다.

 

 

(2009년 9월 8일 발표용,원고지 분량 35 쪽)

 

*발표후 토론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