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넙치/알아듣지 못하는 지루한 수다

자몽미소 2009. 9. 27. 16:30

 

 

              

 

 

 

 

<내가 읽는 책 이야기 부족>의 독후감 주소

 

동우님:  http://blog.daum.net/hun0207/13291005   (1) 넙치는 맛이없다

                http://blog.daum.net/hun0207/13291006  (2) 넙치는 맛이없다

              http://blog.daum.net/hun0207/13291007  (3) 넙치는 맛이없다

              http://blog.daum.net/hun0207/13291008 (4) 넙치는 맛이없다

 

도치님:  http://blog.daum.net/shave4ever/17145112  프롤레타리아의 사랑과 배고픔

 

민정님: http://blog.daum.net/crabbit/16522578 

                                                   어째서 우리는 이 길고 더럽게 재미없는 책을 읽어야 했는가? (넙치)

 

쟁님   http://zanygenie.tistory.com/18 (2)-나를 눌러버린 넙치

            http://zanygenie.tistory.com/16 (1)- 돌틈에 낀 넙치

 

샛별님 http://blog.daum.net/gniang/16150185   / 넙치, 당신이 나를 여자이게 해

 

 

후니마미는 이렇게 읽었고.

 

어린 날에 읽은 동화에 숭어와 어부 이야기가 있었다. 숭어를 잡고 보니 너무나 잘 생겼고 말까지 한다. 그래서 어부는 숭어를 풀어준다. 그 다음 이야기는? 있겠지만 이제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읽은 동화책엔 백의민족의 백성답게  허름한 한복을 입고 나온 어부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므로  어린 나는 그게 우리 나라 전래동화인줄만 알았을 것이다.  찾아보니 일본 동화1 (어부와 그의 아내)에도 있는데, 그건 아마 <그림 동화>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인가 보다.

 

  세계문학읽기 모임에서 『넙치』를 읽기로 할 때만 해도 도대체 <넙치>의 무슨 이야기인가 전혀 알지 못하였다. 대강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오늘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옛말에 보태진 우리 시대의 또다른 동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릴 때 읽은 <어부와 숭어>, 또는 <착한 어부 이야기>가 <그림 동화집 >속 <어부와 아내 이야기>의 한국판 동화라면, 『넙치』는 귄터 그라스 식 <어부와 그의 아내> 이야기가 되겠다. 동화적 상상력이 너무나 뛰어난 작가는  동화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더 길게, 권터 그라스 식으로 사방팔방을 오고가는 달변으로 2 권짜리 소설을 만들어냈다. 그 뛰어난 상상력과 달변은 그러나 그를 턱믿고 책을 펴든 독자들을 힘들게 한다.

  

1, 2 권을 다 읽는데 보름 이상이 걸렸다. 1권을 잡은 날 새벽까지 읽을 때만 해도 은근히 재미있다, 이 책! 하였더랬는데, 넙치 재판이 길어지고, 넙치의 수다가 장황하여지는데가, 작가든 넙치든 4000년을 지나온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독자의 하품이 잦아졌다. 세계사 시간에 졸았던 것처럼 넙치가 이야기 할 때 많이 졸았다. 잘 모르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래도 소설 부분마다 꺼내어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 알맹이들이 몇 개 있었다. 졸지 않고 읽은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 이 세상에 불이 어떻게 온 줄 알아? 

 불은, 옛날엔  사람은 못 가지고 늑대가 가지고 있었어. 사람들은 원래 화식을 한 게 아니고 생식을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우리들의 어머니인 아우아란 여자가  불을 가지고 있는 늑대를 찾아서 하늘로 올라가 봤어. 가 보니까 늑대가 잠을 자고 있었어. 늑대는 조금 전 까지  불 위에다 고기를 얹어 놓고 스테이크를 해 먹었던 거야. 배가 불러서 잠을 자고 있던 거지. 먼 길을 오느라 배가 고팠던 아우아는 우선 늑대가 먹다 남긴 고기 부스러기를 먹어 봤어. 그리고 너무나 놀랐어. 구운 고기가 안 구운 고기 보다 무지 맛있었던 거야. 그래서 부리나케( 이거는 정말 불이나게 빨리 라는 뜻이 맞지) 불씨들을 자기 주머니에다가(자궁)담고는 꼬매 버렸어. 늑대가 뺏어 가지 못하게 말야. 그리고는 오줌을 쫙 누어 버렸지 남은 재 위에다가. 그 소리에 늑대가 깨어 보니까 자기 불이 없어진 거야. 늑대는 정말 화가 났어. 하지만 아우아가 자기  불을 가지고 자궁에다가 담아 버렸기 때문에 도루 뺏을 수가 없잖아. 그때부터 인간은 아우아가 가져온 불을 가지고 화식-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고, 늑대는 그때부터 익은 고기를 먹지 못해.

 

 * 불은 어떻게 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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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불로 요리를 했어. 음식을 만들었지. 이전에는 젖이 셋 달린 아우아가 풍족하게 젖을 주었는데 어느 날 부터 젖이 말라 버리니까 먹을 게 부족하게 된 거야. 그때부터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어. 여자들은 이제 인간에서 여신이 된 아우아를 숭앙하는 뜻에서 불을 아주 소중히 다루었어. 불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남자를 멕이고 살려주고, 남자가 맘에 안 들면 자기가 만든 음식으로 맘에 안 드는 남자를 조용히 제거하기도 하였어. 여자들은 음식으로 권력을 얻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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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은 그 불로 무기를 만들었어. 불은 원래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하는 성질이 있어, 그리고 식으면 더욱 더 단단해지지. 그래서 남자들은 돌을 쇠로 만들어 냈어. 돌이 쇠가 되자 쇠는 무기가 되었고, 보다 더 넓은 땅을 가꿀 수 있는 농기구도 만들어 낼 수 있었지. 그래서 남자들은 더 넓은 땅을 차지 하고 싶어서 무기를 더 정교하게 만들었어, 전쟁이 끝나지 않았어.

 

 *늑대라는 건

 늑대는 인간에게 뺏긴 불을 도루 가지고 가고 싶었어. 해서 슬며시 인간 옆으로 찾아 왔어. 어부에게 낚인 거야. 물고기로 말야, 그리고 말을 했어. 나 살려주면 복을 줄게, 그 말을 들은 어부가 신기하거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든 거야, 원래 남자들이 도박을 하는 데 용감하잖아. 말 들어 봐서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 뭐야? 말해 봐! 했더니 "너희들이 여자 치마 꼬리 붙잡고 살지 말고 내 말을 들으면 이 세상을 지배할 힘을 얻을 텐데!" 이랬던 거지.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돼?  어부가 물고기의 지혜를 빌려서 지혜로운 남자가 되기 시작했어. 꼬드기는대로 잘 듣는 남자, 물고기가 원래 늑대인 줄을 몰랐던 거야, 아니 늑대인 줄 알았어도 할 수 없었어. 불을 가지고 올 때 아우아의 배속에다가 늑대가 마구 씨를 뿌려놔서 인간 남자들은 어쩌면 늑대의 유전자가 있었던 거지. 그래서 지금도 남자를 일컬어 늑대라고 하지. 여우라고는 안 하거든. 그 늑대가 집에서 말을 좀 듣다가 개가 되었는데, 원래 늑대적버릇이 있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씨를 뿌리고 다니기도 해. 그럴 땐 개버릇이라고도 하고, 개같은 남자라고도 하는데. 피장파장이야

 

 

 *이야기 하기에 따라서

<넙치>가 늑대가 변한 것이라는 건 사실, 귄터그라스 라는 폴란드사람의 생각이고 그 이야기이지, 꼭 그게 정답인 건 절대 아니야. 그의 소설 <넙치>엔 넙치의 항변과 주장이 지루하다고 할만치 길고, 어떻게 보면 무지 똑똑한 물고기라는 인상이 짙어. 하지만, 어부를 찾아온 물고기 이야기는 원래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우리도 잘 몰라. 어떤 이야기는 물고기 이야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어부의 마누라 이야기가 더 길기도 하니까, 실제 무슨 이야길 하려고 <넙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인지, 귄터 그라스의 속셈을 우리는 잘 모르지. 하지만 세계문학전집에 올려지는 바람에 전세계의 독자들은 귄터그라스의 뜻이 무엇인지 힘들게 연구를 하게 생겼어.  우리 모임 사람들도 아마 이번 9월은 이 <넙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을 거라. 에이, 집어 쳐 버려! 하고 탁 덮어두었다가 그래도 뭐 끄적거릴 거라도 있지 않을까 책을 열었다가 하면서 2 권의 책을 낚아보다가 버려두다가 했을 거라. 어떤 이는 회를 쳐 먹겠다고도 하고 구이를 해 먹겠다고도 하던데, 그도 저도 영 맛은 없었나봐.  다른 책 같으면 벌써 둑후감이 주루룩 올라와 있을 월말이 다 되어도,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 거냐? 다 읽지도 않았는데 그냥 패스를 할까 싶기도 하고, 괜히 이런 걸 소설이라고 쓴 귄터그라스라는 할배가 밉기도 하는 거야. 뭔 말을 이렇게 어렵게 했다냐? 니네 동네 이야기라고 그리 마구마구 쏟아내도 되는겨? 그래 나 니네 동네 이야기 공부는 했는데도 잘 모르겠다, 독일시가 어떻고 라틴어가 어떻고 언어면 언어, 역사면 역사, 도대체가 확 다가오는 것이 없는 거는, 뭐냐, 저 <넙치>가 가르쳐준 것이냐? 독자를 휘어잡는 힘은 <알쏭달쏭>하게 말하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지식을 진짜 지식처럼 말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여. 하여간 이 책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게 무지무지 많도다 여겼으니까, 만족한 것이요?  귄터그라스가 되었든 넙치가 되었든 두 권짜리 수다를 떨어준 이에게 묻고도 싶고 말이지.  그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하기로 하고 책 두 권 덮으면서 드는 딱 한가지 생각은 수다라는 게 여자들의 것이라고 알았거늘, 늑대가 불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고 와서 여자들의 전유물로 우리들의 수다를 가지고 되돌아갔나? 싶었던 것, 들어보니 어떻냐고? 아이고 지루한 남자의 수다.

나는 역사는 역사책에서, 요리는 요리책에서, 신화와 설화는 옛이야기 책에서 시는 시집에서 소설은 그냥 소설책으로, 또 사회혁명에 관해서는 사회학 이론서에서  따로따로 읽고 싶은 거 있지,  그 이야기의 틀이라는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부은 이 책 <넙치>가 말야, 그 안에 들어 있던 요리만큼이나 식욕이 안 당기는 거라. 뭐시기라, 소머리 속의 양고기 요리라든가 양배추와 돼지고기의 궁합이 도대체 맛은 나는 것이야 아니야, 입에서 군침도 안 돌던데, 그러다 보니 이 책 <넙치>도 이야기 내용은 물론 이야기 방식도 여럿이라서 다 먹고 나니까 뭐를 먹었는지 모르겠는 부페식당에 갔다온 느낌도 들고, 다 먹지도 않았지, 훌쩍 훌쩍 뛰어넘으면서 잘 안 읽어서 그러나 소화가 안 되어서 그럴거야,  에고고 트림이 고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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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요리들은?
메밀, 기장, 감자, 순무, 양배추,  돼지고기와 양고기.                            나에게 익숙한 재료들이었지만 이걸로 만들어내는 수많은 요리들엔 군침이 돌지 않아. 작가네 동네의 요리법이 우리네와 달라서 그런 건지, 어쩐지 알 수가 없어.

 

 

  

 

*반성한 넙치가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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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평화를 지키자고 선포해 놓고서도 무장을 하느라 헐떡거리면서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앵무새처럼 평화라는 말을 계속 지껄여대면서도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즉 이러한 삶은 실용성과 도덕성을 앞세우고 오로지 남자들의 의해 진지하고도 단호하게 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 또는 저런 종교의 성직자들의 축복을 받아가면서 이 모든 것은 가끔씩 있어온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남자들에 의해 예산이 짜이고 또한 의미가 부여된 것입니다. 나는 전쟁과 평화를 조장해 왔습니다. 내가 남자들에게 마구 충고를 해대면서 거기에 집착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날짜를 표기하는 역사 기술이 계속되는 한, 겁없이 의기양양하고 무식해서 용감한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멸로 극복하며너 과거에도 돌진하였고 앞으로도 돌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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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재판소는 신의 영광을 위해 고문 방법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습니다. 단두대는 인도주의적인 진보로 찬양되었습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보여준 공개 재판은 식자층이드 아니든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았습니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는 죽음에 대한 세뇌 교육이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차가운 정열을 지닌 채 믿음으로 불타올라 늘 정의를 내세우며 시선은 최종 목표에다 고정 시켜 놓고  마치 천사장처럼 눈곱만큼의 인정도 없이 인간들의 죽음을 본래보다 앞당겨 놓은 것은 언제나 남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전쟁에 반대하는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해댄 남자들과 평화의 사도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남성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진지한 마음으로 인간 사회의 갈등을 해결해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를 외치거나, 궤변을 동원하여 옳은 전쟁 혹은 그른 전쟁을 구분짓는 일밖에 성취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웃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해방 전쟁이라는 말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 시장 경제 원리는 수백만의 인간들에게 영양실조를 의미했습니다. 굶주림 역시 전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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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밖에서 넙치를 보니

 이렇게 전세계적인 문제를 거론한 덕분에,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지고 출판된 것이  20 세기였던 1970년대였음에도 그 후 30년도 더 지나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딱 들어맞는  훈계가 된 덕분에, 소설『 넙치』는 그 지혜로움을 인정받아 계속하여 팔리고 있고, 우리 나라의 권위있는 출판사인<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의 대열 64 번으로 단단히 도장까지 찍어주었다.

 그래서 넙치는 여성 해방을 외치는 여성들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오히려 감동을 주는 바람에 자기가 왔던 바다로 풀려났다. 그러나 넙치의 본래 성격은 남 가르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바다로 가기 전에 몇 천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주인공 남자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던 늙은 물고기가 다시  육지로 나타났을 때는, 이제 새로운 아우아, 새로운 일제빌이 된 여자의 품에 포옥 안겼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이 세상을 지배하라며 꼬득이는 말이 무엇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어부와 넙치 이야기>가 아니라 판본을 달리하고 이야기 방식을 달리해  <어부의 아내와 넙치 이야기> 또는 <여자를 꼬시는 물고기 > 같은 이름의 소설들이 나올 때쯤이나 늙은 넙치와  여자 사이에 체결된  새로운 계약이 이 무엇인지 우리 독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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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의 질문?
1. 넙치는 이제 불을 가지러 온 늑대가 아니고, 세계 평화를 위해 여자들을 도와 줄 조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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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아내 일제빌이 출산 후 뱃 속에 돌멩이가 들어간 까닭은?그리고 왜 주인공 나는 그걸 비밀로 부쳤을까? 돌멩이가 의미하는 것은?

 

 

 http://contents00.bebeline.co.kr/story/

 일본동화로 소개된 어부와 그의 아내 이야기

 

  1. http://contents00.bebeline.co.kr/story/js030.swf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