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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연구-기말리포트

자몽미소 2009. 12. 4. 22:02

 

민족지 연구: 기말 리포트

 


제주 전통음식, 무대에 올리다 - D 식당 K씨 이야기


 

차 례

1. 시작하며

2. D식당 K씨

3. 단련의 시간과 가능성의 발견

4. 상품화의 조건 - 선별과 배제

5. 무대 연출 - 고객 확보와 입맛 당기기

6. 무대 넓히기 -믿음과 교류

7. 마치며

 

한국학과정 MJK

(2009.12.5)


1. 시작하며


  음식과 관련해 회자되는 말에는 “음식이 보약이다”,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등 ‘사람이 무엇을 먹고 사는가’에 대한 관심이 담겨있다. 음식이 건강을 챙기는 약이 되고 그 사람의 성품을 알려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법』(박정훈, 김영사, 2002)1) 이란 책은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하고 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에는 빈한한 삶의 그늘과 허기가 느껴지지만, ‘잘 살기 위해 잘 먹어야 한다’는 말에는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딛고 선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잘 사는 일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웰빙 음식(Well-being food)”이라는 말도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후반부터 이른바 ‘웰빙 붐’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웰빙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구체적인 생활면에서 육류 대신 생선과 유기농산물을 선호하고, 단전호흡 · 요가 등의 명상 요법과 여행 · 등산 · 독서 등의 취미 생활을 통하여 심신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잘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사찰음식이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고 채소와 과일이 풍부한 식단이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제주는 전국적으로 볼 때 장수의 섬으로 꼽히고 있었기에 건강과 웰빙 열풍에 제주의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천혜의 자연 자원과 맑고 깨끗한 공기 외에도 이 섬에서 만들어 먹고 있는 음식이 건강에 일조를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제주향토음식전문가인 김지순은 제주 음식이 ‘자연 맛을 살린 음식’2)이라고 하면서 식단이나 조리방법이 단조로우면서도 재료 자체의 자연 맛을 많이 살렸기 때문에 양념이 복잡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중에 “제주음식은 현대인의 천연건강식으로, 빼어난 맛을 자랑하며 새로운 맛을 창출해 내고 있어서 제주의 음식문화를 되살려 내는 것이 현대인들의 신선한 입맛을 회복시켜주는 일”3)이라는 주장도 생겨났다. 각종 공해 음식에 찌든 현대인의 본래 입맛을 되살리는 데 제주의 음식이 한 몫을 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제주에 귀양 왔던 추사 김정희는 “가장 괴로운 것은 조팝(조밥)” 이라며 제주 음식을 먹기가 괴로웠음을 토로했다. 황혜성도 “제주도는 농사짓는 땅이 적어 가정의 식량은 겨우 대는 정도이고, 쌀이 귀하므로 평소에도 보리 ․ 조 ․ 팥 등의 잡곡밥을 많이 짓고, 제삿날이나 비념에 고은 밥(쌀밥)을 지어 먹는다4)”고 했다. 제주 사람들의 식생활을 연구하는 오영주의 조사 자료5)에 따르면 제주도의 주식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잡곡밥과 함께 각종 죽의 종류가 많고 주식에는 곡물 외에도 고구마와 감자 등이 활용되었다. 죽이 많은 이유는 핵심적인 곡물을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제주도의 주식 중에서 ‘곤밥’을 제외하면 쌀을 사용한 주식은 거의 없다. 이 점은 제주 음식이 육지 음식과 다른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1995년에 펴낸 《제주도의 식생활》이란 책에도 제주도 사람들이 즐겨 먹어온 밥에 대한 조사 결과가 정리되었다. 1970년대 이전에 주로 먹었던 밥의 종류는 꽁보리밥 ․ 보리 혼식밥 ․ 잡곡밥 ․ 조밥 ․ 고구마밥 ․ 반지기밥 등이었다. 이에 비해서 조사 당시인 1990년대 초반에 주로 먹고 있던 밥의 종류는 쌀밥 ․ 김밥 ․ 잡곡밥 ․ 보리 혼식밥 ․ 팥밥 등이었다. 이 중에서 쌀밥을 주식으로 매일 먹는 경우는 조사 대상자의 75 % 였다.  현대의 식품영양학자들은 쌀밥 보다는 보리와 잡곡을 섞은 거친 밥과 음식이 몸에 좋다는 말을 하지만, 식량을 겨우 대는 이 섬에서 겨우 제삿날이나 비념을 하는 날에 쌀밥을 먹었던 제주의 사람들이 그런 식생활이야말로 웰빙의 삶이라며 만족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한국사회의 고도 경제 성장 시기였던 1980 년대  중반 이후에야 제주 사람들의 일상적인 주식은 쌀밥으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부식의 소비 방식도 바뀌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제주섬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은 육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쌀을 주식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변화이다.6)

이제 제주의 일상적인 밥상은 특별히 제주적인 것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지방의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생각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 생각의 저변에는 제주사람들이 먹는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제주의 전통적인 음식, 토속적인 제주의 음식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어느 음식을 제주전통음식 또는 제주향토음식이라고 여기고 있을까, 제주에 유배 왔던 많은 사람들이 괴롭게 먹었던 음식, 그리고 이 섬에서 자라고 성장한 사람들의 추억에도 그다지 먹기 좋은 음식은 아니었던 제주의 음식이 어떻게 해서 이 섬을 찾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각광받는 음식이 되었을까, 또한 요사이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먹기 좋은 음식으로 거듭 났을까,

이 글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제주전통음식점을 경영한 K 씨의 식당 운영 방법을 그의 생애사7)와 함께 보려한다. 생애사 속에 내재된 경험과 발견이 현재의 ‘제주 전통음식’으로 변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살펴 보려한다. 또한 60, 70 년대 까지만 해도 제주일반 사람들에게는 결코 돈을 주고 사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 ‘제주 전통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돈을 주고 사 먹는 ‘상품으로서의 음식’이 되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30년 동안 식당 경영에 들어간 개인의 노력과 그것이 사회 변화와 어우러진 결과 현재 제주 전통 음식이 자리하는 위치가 어딘지를 살펴 볼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고달프고 괴롭던 제주 음식, 중앙에서 멀리 있는 가난한 섬의 음식이 근 30 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무대 위에 올라 수많은 이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다. 제주 전통음식을 무대에 올려놓고 지금부터 계속적으로 장기적인 공연을 희망하는 K 씨의 사례는 앞으로 제주전통음식의 발전과 그 방향에 대한 논의 자료가 될 것이다. 

단, 이 글에서는 제주의 향토음식, 제주의 토속 음식, 제주의 전통 음식에 대한 자세한 의미 구분을 하지 않을 것이다8). 이 글에서 K 씨가 말하는 제주의 음식에는 전통적이고 토속적이며 향토적인 의미가 모두 포함되었다고 여겨지고 식당 운영에 있어 그것의 면밀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D식당 K씨


K 씨는 제주전통음식점 D 식당을 경영한다. D 식당은 1978년에 문을 열었고 창업한 이래 계속적으로 손님이 늘어 지난해에는 그동안 운영해오던 시청 본점에 이어 신제주점을 열었다.  D 식당은 시청점은 물론 신제주점까지 제주전통음식에 정통한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지난 달 10월 7일은 신제주점이 문을 연 지 1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면담 요청을 몇 차례 하였으나 K 씨는 자신은 식당 일에 매여 있어 매일 바쁘고 게다가 자기 삶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 사양하였다. 그래도 제주전통음식점에 관해 기록을 해 두고 싶다 하였더니 손님이 뜸한 오후 시간이라면 시간을 내 보겠다 하여 2009년 10월 7일에 면담을 하였다.

기록은 녹음기와 노트 필기를 병행하였다. 녹음 시작을 하기 전에 가지고 간 녹음기를 마주 앉았던 식탁 위에 올려놓자, K 씨는 자신도 녹음을 많이 해 두었었다고 말하였다.


K: 옛날에 저도 녹음기를 많이 사용했어요. 제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 옛날에 있었던 일들,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셨어요?

K: 남기려고 했는데 분실 되어 버렸어요. 다 가져다니면서 이사하면서 분실되어 버리고 아기들 장난 쳐 버리고 해서, 고이 간직해 두면(아이들이) 녹음테이프 지워 버리고.

*옛날에 느꼈던 것들 적어 둔 것은 따로 있으세요?

K: 이야기만 하시면 제가 다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때, 구술자가 처음으로 말하는 몇 마디는 자신의 삶 전체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대목9)이라는 글을 떠올렸다. K 씨가 하려했던 기록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일과 관련한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기록을 남기고 고이 간직해 두려 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매우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무슨 일을 도모하기 전에 준비하고 과정에 성실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단련의 시간과 가능성의 발견


그는 1951년 생으로 상업 고등학교 야간을 다녔다. 밤에는 학교에 가고 낮에는 전기회사에서 노동을 했다. 월 800원으로 시작된 그의 급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을 때 만 원이 되었지만 그러나 그 월급으로는 미래를 희망할 수 없었다.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가 일하던 회사의 부장님이 돈을 꿔주면서 일본에 가서 돈을 벌어보라고 했다. 밀항으로 일본에 간 그는 동경 우에노의 한국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 처음에 갔을 때도 친척이 도와주고 같이 지내고 그랬습니까?

K: 친척이 도와준다. 아니 오히려 더 나쁘죠. 원래 그렇습니다, 재일교포 사회는. 여기 해외 연수생들 그 상황이에요. 밀항으로 가면 마찬가지에요. 일만 하면서 오히려 친척이 나쁜 사람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제일 느끼는 게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건 당 부모가 아니면 일본은 갈 데가 아니라는 것이죠.

* 밀항했던 분들은 힘들었을 거에요.

K: 지금 말하는 것처럼 연수생들 그런 생활이에요 제일 일도 어려운 일, 힘든 일만 그런 것만 하고. 가서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월급 받아서 돈 모아주겠다고 하고 보관해 주겠다고 해 놓고 안 주고.


그러나 그가 일본에서 보낸 7년은 어려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  그럼 거기 음식점에서 쭉 일하신 거네요?

K:그렇죠, 갈비집에서 일을 하면서 거기도 보니까 육지에서 나오는 갈비집 요리였거든요. 갈비탕, 냉면.

* 한국 사람하는 델 갔군요

K: 그렇죠.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 하는 데밖에 못 가죠. 부모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야끼니꾸 집에서 일하면서 계속 거기서 일하면서 보니까 거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주 음식을 굉장히 그립죠. 그리워 가지고 일본 어시장을 돌면서 보니까 갈치도 있었고, 옥돔도 있었고, 고등어도 있었고. 다 있었거든요. 일본 식사가 콤콤히10) 생각을 해 보면 초밥도 최하 생선으로 시작한 게 이제는 최고급 음식이 되었거든요. 서민들이 먹던 식사거든요. 그 옛날에.

나도 갈 때(일본에 가 있을 때) 10엔짜리 초밥이 있었어요. 지금은 회전 초밥으로 변질되어 버렸지만. 그때는 일본 돈으로 10엔이었거든요. 그런 것을 하는 것을 보니까,  동경 우에노에서 거기서 일 하면서 제일 느낀 게 뭐냐 하면 제가 제주도니까 제주도 음식을 내가 이제는 개발을 해야겠다고 마음 깊이 만들기 시작한 거죠. 거기서 일하다 보니까 유명 인사들도 많이 만나고 그러면서 저도 꿈을 키우면서 일을 했는데, 우리 제주도 고향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는 거를 보면 제주 음식을 굉장히 그리워하고 그러니까, 나도 역시 거기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주도 음식을 그리워했죠.  그래서 어시장을 가 가지고 보니까 우리 제주에서 먹는 거 그대로 다 있고, 나도 사다 먹고, 손님도 줘 보고, 요리를 하면서 근데 일본에는 카운타 식, 카운타에 앉아서 손님이 식사를 하잖아요? 앞에서 손님과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만들다 보니까 제주도 음식, 저도 제주 사람이 오면 제주도 음식을 먹어 보라고 하고, 그런 것을 생각을 한 거죠. 해 보니까, 아, 이것이다! 한 것이죠. 그래서 고향으로 들어온 겁니다.


일본 식당에서 일하면서 고향 음식이 그리워진 그는 직접 어시장에 나가서 생선을 사다 조리해 보았고 직접 먹어 보며 제주가 고향인 사람에게 권하기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어릴 때 먹었던 “고향의 음식”, “제주의 전통음식”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된다. 타지에서 그가 맛 본 고향의 음식은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면서도 제주지역에서는 누구도 팔지 않는 음식이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팔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제주의 전통음식”이 일본의 초밥처럼 유명해지고 고향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라첼은 근대 도시인이 지닌 고향에 대한 향수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고향에서 살아온 경험에서 유발된다고 하였다. 고향 또는 고국의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향토음식” 또는 “전통음식” 이라고 하는 것들이 실제로 그 지역 사람들이 먹는 음식 모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고향 사투리와 함께 자신의 고향과 어릴 때를 추억하는 음식의 이미지로 먹는다.11) 그는 타지에서 고향이 그리웠고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타향살이의 서글픔을 달랬다. 그가 음식의 재료로 썼던 옥돔은 제주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해 볼 일을 식당업이라고 여기고 제주의 이미지를 살린 음식, 서민적인 음식을 내놓는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7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같은 마을의 처녀와 결혼을 하고 이듬해 D 식당을 열었다.


4. 상품화의 조건- 선별과 배제


식당을 열고 메뉴를 선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해야 했다. 식당업은 이익을 남겨야 하는 상업행위이므로, 식당 주인에게는 금전적인 이익이, 손님들에겐 가격 대비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


K:처음에는 옥돔미역국을 내놨어요.

* 오자 마자요?

K: 오자마자 했죠. 지금 그 자리에서 오자마자 이 옥돔 미역국을 내놓은 겁니다 그 당시에는 옥돔이라는 게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때는, 손님들도 이건 제사 때만 사용하는 걸로만 여겨왔거든요. 제사 때 먹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산모만 먹는 음식으로 생각했는데.

* 옥돔은 좀 비싸지 않았나요?

K:그렇죠. 옥돔은 그때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알려졌는데 국 종류는 아니에요. 구이용, 구이용은 많이 알려지고 외래에서도 제주도 가면 옥돔을, 건 옥돔(마른 옥돔)을 사 가자, 그런 건 선물용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근데 이런거는 선물용이 안 되거든요. 잘아가지고. 그러면 그런 것을 제가 이용한 것이구요. 장사속이 있어서. 싸게 사서 옥돔 미역국을 제일 처음에 시작한 것입니다.


집에서 먹는 국을 일반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 그 식당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일반적으로 옥돔은 비싼 것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제사 때나 먹을 수 있고, 산모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선물용으로 알려지고 비싸게 팔리던 마른 옥돔에 비해서 크기가 작은 옥돔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옥돔국”을 개업한 식당의 주 메뉴로 내놓게 된다. 그가  옥돔을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것은 가격이었고 손님들은 귀한 음식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사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K:그때 제가 장사를 시작한 게 원인은 뭐냐 하면 이게 우리 전통 음식이고 물건이 싸다는 거, 재료비가 싸다는 게 장점이 있죠. 그래서 내가 이거를 사다가 500원에 팔았죠. 그때 곰탕도 500원 했어요. 갈비탕도 500원이고, 그러니까 나도 500원 받고 판 거에요. 그러면 이익이 좋죠. 2000원 주면 10 마리 사당도12) 실프니까13). 2000원 주면 10 마리 사당도 실퍼요.

* 굵은 게 그래요?

K: 옥돔은(이전에 보여주었던 책을 펴 보이면서)아까처럼 이런 옥돔, 요거는 5마리 기준으로 제가 샀습니다. 1 킬로에, 5 마리 기준이면 크기가 나와요. 근데 제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하면 우리는 큰 거를 살 필요가 없으니까, 작은 거를 숫자로 세서 사는 겁니다. 10 마리면 2,000원, 그런 식으로. 그렇게 해서 생선 종류도 사서 이것도 500원 받고 팔았어요.


영업 이익을 낼 수 있는 가격을 맞추어도 고객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면 음식 메뉴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콩국은 날콩가루와 배추나 무를 넣고 끓이는 국이다. 끓는 물에 채로 썬 무를 넣어 한소끔 끓인 후 생콩가루를 넣어 국자로 풀어준 뒤 다시 끓어오르면 어린 배추를 넣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한다. 제주도의 콩국은 육지부의 비지찌개와 달리 마른 날콩가루를 장만하여 두었다가 가을과 겨울철에 상용하였다. 제주도민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 식품이었다.14)


K:제가 시도한 것은, 공무원들이 500원이라면 가격 부담이 되니까, 그 다음엔 콩국 같은 거, 콩국 아세요? 콩국에 배추하고 무가 들어갑니다. 이것이 참 맛있는 것인데 겨울에 따뜻하게 이것을 판매했고. 그런데 콩국은 손님들이 선호하는 국이 아니더라구요. 상품이 될 수 없는 국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갈치국은 잘 먹고 하지만 지금도 콩국 같은 것은 안 먹어요. 손님들 건강식에는 완전 좋은 것죠. 가끔 먹는 것은 좋지만 내용이 안 좋죠. 그것 때문에 손님들이 상품화를 안 했을 겁니다. 


콩국은 식당을 이용하는 공무원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가격을 낮추어 판매를 해 봤지만, 콩국에 대한 호응이 낮았다. 고객들 입장에서 콩국은 무와 배추가 들어가서 건강에는 특히 좋은 음식이고 투박한 제주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긴 했지만  돈을 주고 사 먹기에는 입맛이 당기지 않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D식당 K씨는 콩국에 대해서는 손님들이 상품화를 안 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고객의 호응이 낮았다는 말이다.

가격과 고객의 입맛에 맞을지라도 꾸준한 물량 확보가 어려워 상품화를 시키지 못한 것도 있다. 그것은 각재기국이었다.


K: 각재기를 많이 팔았습니다. 내가 각재기 국을 낼 때는 언제냐 하면 오늘은 각재기 국입니다 하고 알리고 손님에게 스페셜 요리라 해서 드리는 건데 손님에게 3-4 00원에 판매를 했습니다만은 내가 계속 안 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이건데(책을 보이면서) 이게 각재기가 우리 제주도에 보니까 각재기 종류가 2-30종류가 될 겁니다. 맛있는 각재기 종류가 없더라구요. 국을 끓일 수 있는 참 각재기가. 일본에는 참 많은데 없어가지고, 참각재기를 어떻게 구했냐 하면 정치망 아시죠? 거기만 잡힙니다 참 각재기가. 그런 때 그런 생선을 팔러 올 때는 제가 그것을 사서하고, 그래서 그것을 사시사철 할 수 없을 때는 못하고. 제가 손님들에게 알려진 제주 음식만 딱 뽑아서 한 겁니다. 그래서 관광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니까 조림도 하고, 조림은 처음엔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못하죠. 가격이 너무 먹으니까.  관광 손님이 조림 이런 거 먹기 시작하니까 그래서 이런 거(제주 향토음식 책을 보면서) 다 할 수 있게 되죠. 보통 육지나 제주도나 똑같이 먹으니까. 나도 처음엔 국만 팔다가 구이도 겸해서 팔다가 조림을 겸해서 팔다가. 장사 하는 사람은 가격은 안 따질 수가 없어요. 손님이 부담이 가면 안 되니까, 그것에 맞추어 가야죠. 단계가.


제주의 음식 품목수는 450 여종이라 하여 음식의 고장 전주 285 종, 오끼나와 150 여 종 보다 많다15)는 연구는 제주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다양한 음식 종류가 개발되었음을 반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16). 그러나 식당 경영을 위한 전략에서는 이 다양한 음식 품목 중에서 선별과 배제를 통해 가장 알맞은 메뉴를 선택하게 된다. 선별의 조건은 가격과 호응이다.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이익이 남아야 하고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은  식사 후 만족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식당의 특성상 꾸준한 물량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음식재료의 공급이 원활한 것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메뉴에서 배제된다.  D식당의 K 씨의 경우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제공할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제주의 음식 중 몇 개의 품목을 D 식당 메뉴로 정하게 되었다. D 식당은 '제주 전통음식점‘이라는 식당 명칭을 홍보함으로써 이후 제주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보다 새로운 제주 음식 이미지를 제공하게 된다. 이는 또한 80 년대 이후 제주의 관광이 활성화 되면서 더욱 확산 되었다.


5. 무대 연출 -  고객 확보와 입맛 당기기


어느 지역의 음식이든지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경험 속에서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어떤 지역의 음식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접촉이 드물던 시기에는 대체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게 마련이다17). 그러나  제주도 관광협회가 1996년도에 실시한 관광객 만족도 조사에 보면 ‘제주의 음식은 관광객들의 주요 불만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특히 요금이 비해 질이 낮고 제주의 특색이 없으며 기호에도 맞지 않다’18)는 불만을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이었고 이제 식당에서 사 먹을 수도 있게 되어 반가운 음식이었던 것에 비해 외지인들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음식이었다.

1978 년도에 식당 개업을 한 K 씨는 제주전통음식을 맛보러 온 외지 사람들의 불만에 매우 속상했다.


K: 처음에 옥돔 미역국, 갈치미역국을 손님에게 주니까 육지에서 오신 분, 사업차 오신 분들이 이거 사람이 먹는 음식이냐, 물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럴 정도에요. 그것 때문에 제가 속상한 적이 많습니다. 이 분들이 앞으로 이 음식을 먹어야 할텐데.

*힘들었어요?

K: 제주도 음식이라는 게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처음에 시작할 때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손님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거를 손님에게 알리는 게.

그래서 제가 비장한 무기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로 중요하다 해서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살아남았어요. 신선도가 없으면 모든 생선을 전부 못 먹습니다. 비릿내나서. 제주도는 옥돔을 주낚시로 잡았습니다. 신선도가 좋았습니다 그 신선도를 그거를 유지하기 위해서 제가 이 옥돔을 사다가 일부러 길가에서 잡았어요. 주방 안에서 잡은 게 아니고. 도로변에서, 대 도로변에서. 왜 그러냐 하면 하면 그것이 상술이에요. 그렇게 안 하면 손님들은 모르잖아요. 손님들이 지나가다 보니까  옥돔이 싱싱하다 먹음직스럽다 느끼거든요 그것이 하나하나. 지금 시청이 도청이었습니다. 도청 국장님 과장님들 지나가다보면 먹음직스럽죠. 그게. 그 분들이 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 분들이 많이 도와 준 것이죠.


D 식당은 현재의 제주시청 부근에 있었고 개업 당시에는 제주 시청은 제주도청 자리였다. 이 자리하고 있었다. K 씨의 이야기에서 오래 전 그림이 하나 그려진다. 식당 앞에서 싱싱한 옥돔을 펼쳐 놓고 비늘을 긁고 다듬는 모습이다. 점심 시간 쯤 되어 무얼 먹을까 고민하러 온 도청 공무원들은 싱싱한 생선을 보고 입맛을 다신다. 신선한 재료이면 뭐든지 맛내기가 좋은 제주 음식은  D 식당의 옥돔 미역국을 먹어 보고, 이후 선 보인 갈치호박국을 먹어 본 후 소문을 낸다. 입소문이 맛나게 퍼진 것이다.


 K: 옥돔은 원래는 미역하고, 미역 놓고 그러는데, 원래 제주도에서는 미역 안 놓고 무을 넣어요. 무국이 있어요. 옥돔무국, 제주 말로 놉삐국이라고 합니다,,무가 놈삐에요. 옥돔 놉삐국이라고,,,옥돔무국을 말하는데 그것도 맛있어요 담백하면서. 그래서 양쪽 다 한 것입니다. 손님 취향에 따라서. 보통 국장님도 오시면 옥돔무국을 많이 드셨어요. 옛날 음식이니까 옛날식으로 먹으려고. 그래서 그 후에 미역 놓고 국도 끓이고 했는데 예전에는 이런 해녀가 없고 미역을 중산간 쪽에 가면 제사때 무를 넣고 하면, 미역 넣고 국 끓인 게 아니고 무를 넣고 한 거에요.. 무국 참 맛있는 것인데 손님에 따라서는 달라고 해서 옥돔무국. 옥돔 미역국이 먼저인데 그걸 팔다보면 손님이 달라하면 옥돔무국을 끓여 드리고.


K 씨는 싱싱한 재료로 손님들의 입맛을 당긴 후에도 손님의 취향에 따라서 종류를 달리해 음식을 제공하였다. 또, 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식당 메뉴와 상관없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K:우리나라 교포들 제주에 오면 저를 찾아와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달라고 해요. 그것이 이익을 많이, 예를 들면 김평진19) 회장님, 토종닭을 먹고 싶다 그러면 사다가, 그 분은 우리 제주도식으로 삶아서 먹는 거, 죽도 아니고 삶아서 뜯어 먹는 걸 그런 걸 좋아하셨어요.

* 음식 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어요?

K: 제주도 음식은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죠.  이제 제가 식당에 손을 댔으니까 제가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이 가르치는 걸 보면, 뭐를 보면은 그냥 보아 넘기지 말라고 했었어요. 그것을 유심히 보라 한 거에요. 거기서 뭐가 나온다 하는 것이죠. 그 말을 제가 머리에 박은 겁니다. 음식 아닌 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 만드는 걸 생각하다 보니까 제주도 음식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음식 아닌 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도 물회를 보면 된장이 들어가잖아요? 고추장도 쓰나요?

K: 고추장은 일체 안 씁니다. 다른 집에서는 고추장을 쓰고 저는 된장하고 고춧가루만 씁니다. 제주도 음식을 재현하면서 일반가정집하고 다른 것은 설탕이 들어간다는 것, 일본에서 설탕 쓰는 방법을 알았고 음식에 설탕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일본에서 음식에 설탕 물엿 같은 거 쓰고.

원래는 제주도에서 한치도 원래 뎁혀서20) 했습니다. 살짝 익혀서. 생으로 안 하고. 생으로는 제가 최초로 했습니다. 일본에서 배웠기 때문에. 또 마늘 놓아야 할 때 안 놓아야 할 때가 있고. 저는 젓갈에는 마늘 안 넣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여기서 먹는 게 다른 식당보다 맛이 더 좋다고 느껴요

K: 그건 신선도 때문일 겁니다. 딴 집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저는 고집합니다. 자리물회는 냉동이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자리가 비릿내가 심합니다. 저는 냉동을 못 씁니다. 안 돼요. 이제는 자리도 이제는 사시사철 나니까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신선도만 유지하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요.


고객 확보와 입맛 당기기의 전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 배운 맛내기 기법을 응용하는 게 제주 일반 가정에서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다른 점이고, 그 중에서도 맛을 결정하는 최우선이 신선도 유지에 있음을 K씨는 거듭 강조했다. 90년대부터 어업기술이 발전한 결과 연승어선이 생겨 이제 갈치는 사시사철 잡히는 고기가 되었고 옥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몇 주 전 D 식당에서 갈치구이를 주문했을 때는 갈치 물량이 달려 잠깐 동안 판매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새로 이전한 D 식당 신제주점의 지하층은 냉장시설을 완비했지만 음식 메뉴에 따라 냉동품을 쓸 것과 쓰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 무대 넓히기 - 믿음과 교류


198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사회는 관광 여행이 일상적 생활양식의 일부로 정착하였다. 모든 종류의 여행에 있어서 먹는 일에 상당히 큰 비중을 두는 한국인의 전통적 행위 양태와 결합되면서 각 지방의 향토음식들이 각광받게 되었고 그 지방의 전통 음식(향토음식)이 관광객의 요구에 부응하여 상품화된다.21)  그래서 전통음식, 또는 향토음식에 대한 의미도  그 지역에서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의 의미를 크게 탈피하기 시작했다. 제주의 외식업체 총매출액은 2003년 기준 6천 985억원에 달해 제주 관광객 총 소비액의 약 20 %가 외식비용에 지출되고 있다. 제주전통음식점, 또는 향토 음식점 또한 제주도민의 외식 횟수 증가, 관광객의 유입 등의 수요에 힘입어 업체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제주 외식 산업 시장 규모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외식 산업이 영세한 생업형 경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경쟁의 격화 되었고, 그 결과 경영상태가 나쁜 업체에서는 오히려 관광객들의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22)

D 식당의 경우는 격화된 외식업의 경쟁과 보다 더 다양해진 고객의 요구에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경영에 임하고 있을까.

 

*도라지 식당 이름은 어떻게 해서 지으신 거에요?

K:도라지 이름이 제주도에도라지호라는 연락선이 있었고, 도라지 이름이 민속적인 이름이잖아요. 우리 꽃도 있고 노래도 있고. 뭐 한 번 들으면 안 잊어먹을 정도되는, 받침이 안 들어가니까 받침이 들어가면 발음이 어려우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봐서. 제가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를 생각하면 유심히 생각하라 깊게 생각하라.

* 저는 제주말로 안 쓰고 어떻게 도라지로 썼나 했죠.

K: 나는 처음에부터 제주도 음식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전통음식이라고 적었어요. 멀리 내다봤어요. 최근에야 제주전통음식이라고 적었지. 향토음식이라고도 안 썼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제주전통음식은 좁다 더 크게 보자 그래서 한국음식, 한국전통음식점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제가 지금은 커졌으니까 제주전통음식으로.


K 씨는 식당 이름을 지을 때 누구나 발음하기에 쉽고 잊어버리지 않을 이름으로 지었다. 일본에서 생활 했던 경험 때문에 자신이 만드는 음식을 한국 전통 음식으로 생각하고 처음 개업할 때의 식당 이름은 한국 전통음식점으로 표시했다. 그러다가 현재 신제주점에서는 제주전통토속음식점이라는 표시를 하고 있다.


K: 재료는 85년도까지는 내가 시장에서 직접 구입했어요. 동문 재래시장에 가서. 몇 년이냐 한 7년 쯤은 집에서 마늘 같은 거 다 집에서 심어서 어머니가 다 심어서 만들어 오는 거죠.

* 근데85 년부터는 시장에서 왜 바꾸셨어요?

K: 집을 옮겨서 하기 시작하니까 수요를 따라오지 못했던 거죠23)

* 지금 자리에 옮겨서 하시면서 앞에 그 주차장은 언제 사신 거죠?

K: 90 년도에, 주차장 하려고 90년도에 샀어요. 그 주차장도 90년도에 사고 97년도부터 거기 주차장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시청 마당이 개방이 되었고 차도 얼마 없었지만 거기서 세워 놓고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했는데, 97년도 이후부터는 시청 마당이 막지 않았는데 그 후 부터는 막았으니까 그 때 점포를 헐고 주차장을 만들었습니다.

* 여기 땅을 사서 준비하신 거는 언제부터 하신 것입니까
K:이거는 제가 그 전부터 생각을 많이 했는데 2000년도부터 여기를 오려고 생각을 하였는데 땅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  보려고 하다가 2004 년도에 샀어요. 최고 다 올라야 샀습니다.


1985년도에 D 식당은 중앙일보에 소개된다. 그때부터 전국적으로 알려져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는데 점심 시간에 찾아가면 자리가 없어 앉을 수가 없어 기다려야 했고, 그 바람에 D식당 주변엔 향토음식점을 자처하는 식당들이 생겨났다.


*도라지 식당 말고 다른 식당에서 향토음식 하는 식당이 생긴 거는 어디 입니까?

K: 그 다음은 장춘식당. 신제주에서 했는데. 바로 저 옆에서 다방을, 지금 시청 앞에서 다방을 했었습니다. 한라식당은 한참이나 후에 생긴 것이고.

* 음식 이름부터 맛내는 거 하며 사실은 대부분 여기 와서 먹어 보고 시작했겠네요?

K: 다 그렇겠죠. 아마 말을 안 해도. 장춘도 마찬가지고, 물항도 마찬가지죠. 장춘도 나 앞에서 먹어보고 내가 안 된 점을 보완해서…

* 향토음식을 키워오신 셈인데 앞으로도 하실 거죠?

K: 아들 까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이 일주년이죠?

K: 물론 오늘 10월 7일,

* 기념식은 안 하시죠?

K 뭐 대단한 거라고…,근데 저는 제주도 음식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콤콤히24).  제가 이렇게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하고 있잖아요. 타이틀을 제가 만들어 놨으니까.

* 그렇게 하고 향토음식이라고 하는 게 잊혀지려고 하는데

K: 이제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 서울 사람도 미국 가서 제주 음식을 먹고 싶어 하더라구요.

K: 원인25)은 그런 쪽으로 장사를 돌린 거예요. 재외동포,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제주도로 오게 되면 먹게끄름26), 지금 이렇게 한 것27)도 원인은 그것입니다. 여기에 가게를 한 것도 그런 생각입니다. 밑에는28) 한밭식당 식으로 되어 버리고 해서. 이제는 안 되니까 외국식으로.

*여기선  코스 요리도 하시죠?

K: 원인은 그것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미국에 가서도 알더라구요, 저를 !

*미국에 있는 분들이?

K: 미국에 우리 한인 식당에 갔는데 제가 제주도에서 왔다니까 저를 알아보더라구요. 제주도에서 왔다니까 도라지 식당 아세요? 하면서 대번에 그 소리 나오더라구요. 유럽쪽에서는 날 모를 줄 알았는데 (제주도)위생과장이 유럽 쪽에 가서 제주도에서 왔다니까 어느 식당을 다녀왔다 그런 이야길 하더라고, 제주도 도라지 식당을 다녀왔다 했답니다. 그런  때가 제일 보람이 있죠.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 같아요

* 이 식당이 앞으로 더 바람직한 식으로 간다면 어떻게 가면 좋겠어요?

K:  원칙은 제주도전통음식을 살려야지요

* 이 형태로 유지하는 것으로?

K: 아니죠!  이것보다 상품화가 더 잘 좋게 되어야죠. 저는 생각하는 중입니다 계속, 저는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이 상품만 내놔가지고 그대로 할 게 아니고.

* 지금 현재 상품으로 한 게 여기서 코스 요리 한 게 만 오천원 하고 2만원 짜리 두 개가 있잖아요

K: 만 오천원 짜리는 안 하려구요. 반응이 안 좋으니까, 이 만원 이상으로 그렇게 해서,제주도음식 위주로 만들어 갈 겁니다.


이 면담을 할 당시 D식당은 시청점과 신제주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보충 질문을 하기 위해 다시 찾았을 때는 며칠 전 시청점을 문 닫았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찾아갔던 12월 1일, 아직 이른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주차장의 반이 자가용과 버스로 채워져 있었고, K 씨는 손님 응대를 하기 위해 넓은 홀을 운동장을 활보하듯 분주히 움직여 다녔다. 1951년 생이니 올해 나이도 꽤 들어 있을 것이지만 날렵한 몸 놀림으로 손님들의 밥시중을 들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틈틈이, 또 K 씨가 조금이라도 덜 바빠 보일 때 말을 건넬 수 있을 뿐이었다. 관광 버스가 보여서, 이용객 비율을 물었다. 내지인과 관광 손님이 반반 쯤 된다는 대답을 했다. 버스로 오는 손님들이 여행사의 단체 손님이냐는 질문에는 강하게 부정했다. 여행사의 송객수수료를 감당해야 하는 손님형태는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님들에게 이 식당의 음식 맛을 약속하기 위해서는 가격 갖고 장난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홀에는 제주도민으로 보이는 3,40 대의 회사원 일행 여럿과 혼자 온 중년 남자,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 팀이 여럿 보였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니 2층으로 안내 되기도 하였다. K 씨는 이 식당이 이제 너무나 알려져 있어서 맛이나 서비스가 이전과 달라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말했다. 이 식당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다시 다른 손님들을 안내할 사람이라고 하였다.

신제주의 3층짜리 새 건물로 이사하면서 D 식당은 1층과 2층을 식당으로 쓰는 한편 3층을 회의실로 무료 대여 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터넷홈페이지29)도 만들었다. 홈페이지에는 이 식당에 다녀간 고객들의 인사말이나 인터넷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린  D 식당 이용후기 같은 것을 싣기도 하고, D 식당의 역사와 경영에 대한 안내, 찾아오는 길, 전화 번호, 메뉴 등을 보여 주고 있다.


6. 마치며


한반도에서 제주도로 오는 관광객 이외에도 고향을 찾아오는 교포들, 일본인이나 구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D 식당은 제주의 맛을 대표하는 “제주 전통음식점”이 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제주 지역의 음식점들은 제주의 식재료를 이용한다는 명분으로  “향토음식점”을 표방하였다. ‘향토음식’ 또는 ‘전통음식’, 제주의 ‘토속음식’, ‘재래음식’에 대한 정확한 구분 없이  ‘전통과 향토’는 같은 그릇에 담겨져 소비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용어의 명확한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용어의 구분보다는 60-70 년대 이전까지는 제주에서 일상식으로 먹던 음식의 종류와 소비양상에 변화가 크지 않았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관광과 감귤 산업으로 경제 개발의 혜택을 입었다는 점에 착안, 그 후 부터는 제주사람들의 식생활 또는 음식에 대한 소비가 상당히 변화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한반도 전체의 양상과 비슷하지만 이 글에서는 제주의 전통음식이 어떻게 해서 변화의 물결을 타게 되었는지를 보이고 싶었다. 경제의 풍요와 맞물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변화함과 동시에 먹을 거리에 대한 욕구도 달라졌는데 제주의 전통음식 또한 주변의 변화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일선에 제주전통음식의 상품화에 성공한 D식당이 있었다는 게 이 글의 요지이다.

D식당은 팔아서 이익이 남을 음식과 손님들이 먹어서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기 위해 제주의 전통 음식 중 극히 일부만을 선정하였고, 조리 방법에 있어서도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전통” 이라면 전제되는 재료나 조리법의 정통성을 수정하였다. 그러므로 이 D 식당의 음식이 ‘제주전통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 중 일부는 제주 사람들이 오래도록 먹었던 밥과 반찬이 아니며 일상적인 음식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 식당은 제주전통음식의 상품화에 성공함으로써 이전 세대까지의 제주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상당히 개선시켰다. 이전에는 맛이 없는 음식이었던 제주음식이 맛이 좋은 음식으로 바뀌어졌다. 역으로 몇 개의 음식을 특화함으로써 상품화에 성공하지 못한  제주의 다른 음식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 글은 D 식당 K 씨의 사례를 통해 제주의 전통음식이 “상품화” 된다는 것의 전체적인 흐름과 모습을 보려하였다. D 식당 K 씨는 무대 아래서 보잘것없었던 배우 몇을 유명 배우로 만들어 낸 감독처럼 제주 음식에 대한 연구와 노력을 해 가며 식당 운영을 하였다. 인터뷰 중 그는 ‘상품화’ 라는 말과 ‘연구’ 한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주음식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관객의 갈채를 받기를 염원하는 무대 연출가의 그림이 그려졌다.


  



*참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된 식당 소개 글

도라지 식당 소개

 

30 여년째 제주향토음식만을 취급하고 있는 도라지식당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영업을 해오면서 제주분들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고

으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쇄도할 정도로 유명하면서도 맛 또한 도라지식당만의

특제소스와 각종 맛의 비법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입맛을 자극하고

있으며 시원한 국맛을 내기위한 저희만의 손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도라지식당 신제주점은 각종 단체,연회석이 완비 돼어 있어서

편안하고 즐겁게 식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30 여년 동안 늘 한결같고 훈훈한 인심에 제주 분들과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1978년 이래로 30 여년의 도라지는 참맛을 이어나가며

제주도의 맛을 대표하는 도라지식당이 되겠습니다.


  

- 시청점의 기본 반찬과 메뉴-

  

- 신제주의 새 식당과 로 개발된 코스요리,조금 바뀐 기본 식단-


 

                   -전국의 맛집 책에 소개된 도라지 식당-

 - 갈치호박구,생선미역국, 자리물회가 2500원에서 3000원 사이의 가격-


 

-일본 잡지에도 소개 된 도라지 식당과 메뉴, 옥돔국과 자리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