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12월 첫 주-사려고 하는 책-서평모음

자몽미소 2009. 12. 7. 05:46

 

[손에 잡히는 책] 일본 ‘反빈곤 운동’에 뛰어들다… ‘빈곤에 맞서다’

국민일보 | 2009-12-04 11:18:21

일본은 경제부국으로 알려져있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다. 사회 안전망이 허술해 자칫 발을 헛디디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다. 일본 정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간 격차는 당연하고, 개인들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도쿄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다니다 반빈곤 운동에 뛰어든 유아사 마코토는 구체적인 사례와 객관적인 통계로 일본의 빈곤실태를 밝힌다. 또 시민사회가 '반빈곤 네트워크'를 구축해 빈곤문제에 대처하고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반빈곤'이라는 이슈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자민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 저자는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 내각부 정책 참모로 기용됐다(검둥소·1만2000원).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장석주/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문학의문학)

책소개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있다』는 저자가 청춘 시절부터 읽어 왔던, 동서고금의 보석 같은 명문장들을 엄선해 깊은 사유와 통찰을 덧붙인 책이다. 문학을 짝사랑하며 문학에 운명을 걸기로 결심했던 청년기부터의 독서 이력을 담은 것으로 근 40년 가깝게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도 닦는 명필가를 형성하게 한 피의 유전자와도 같은 주옥같은 명문장 해석 모음집이다.

저자소개

저자 장석주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해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 방송 진행자,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간 낸 책이 어느새 50여 권을 훌쩍 넘었다. 노자?장자?주역 등 심오한 통찰이 담긴 동양 고전을 즐겨 읽고, 제주도?대숲?바람?여름?도서관?자전거?고전음악?하이쿠?참선?홍차를 좋아한다. 경기도 안성 금광호수 끝자락에 ‘수졸재’라는 집을 두고 서울의 작업실을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이즈막에《나는 문학이다》《취서만필》《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등을 펴냈다.

그림 송영방
호는 우현. 1936년 경기 화성에서 출생하여 1960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국전에서 9회에 걸쳐 특선을 수상했으며, 1974년 국전 추천 작가로 선정됐으며, 이후 초대 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84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1972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 이후 국내외서 수십 차례의 초대전에 참가했다. 서울시미술문화상 미술상 및 문화훈장을 받았고, 현재 동국대 예술대학 명예교수이다. 산수화, 인물 및 화조에도 능할 뿐 아니라 누드화, 불화, 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편력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_ 일자무식 혜능만이 내 스승이다

1장 _ 문장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_ 릴케 《말테의 수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_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문체 _ 모리스 블랑쇼 《미래의 책》
자화상 _ 최승자 〈자화상〉
기호의 제국 _ 롤랑 바르트 《기호의 제국》
유용한 것 _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흡혈귀의 비상 _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나의 감방 나의 요새 _ 프란츠 카프카 〈일기, 1922년 1월 27일〉
나는 창조보다도 소멸에 기여한다 _ 고은 《해변의 운문집》
책벌레 _ 이덕무 〈간서치전〉

2장 _ 인생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_ 헤르만 헤세 《데미안》
풋풋하나 비릿한 스물 _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살아남음 _ 엘리아스 카네티 〈살아남은 자〉
인간 _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삼십 세 _ 잉게보르크 바하만 《삼십세》
사월 _ 빈센트 밀레이 〈봄〉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 _ 알베르 카뮈 《이방인》
한심한 청춘아 _ 그레이스 헤밍웨이
팔여 _ 김정국 〈사재〉
여인은 완성되었다 _ 실비아 플라스 〈거상〉
꿈속 미녀 _ 정약용 《다산문학선집》
눈물은 왜 짠가 _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건축은 수정이다 _ 지오 폰티 《건축예찬》
오류선생전 _ 도연명 〈오류선생전〉
십 전짜리 두 개 _ 김종삼 〈장편 2〉

3장 _ 관조
나무를 심은 사람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꿈꿀 권리 _ 가스통 바슐라르 《꿈꿀 권리》
무위의 아름다움 _ 노자 《도덕경》
고요함 _ 에크하르트 톨레 《고요함의 지혜》
걷기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침묵 _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어두운 심연에서 _ 니코스 카잔차키스 《어두운 심연에서》
인생을 탐내지 마라 _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_ 〈죽음〉《탈무드》
뱀 _ 다자이 오사무 《사양》
구두 _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 작품의 근원》
거기 누가 살든가 _ 박용래 〈누가〉

4장 _ 사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_ 정호승 <수선화에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_ 기형도 〈빈집〉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진 상처 _ 에밀 시오랑 《동구로 띄우는 편지》
저무는 가을 _ 마쓰오 바쇼 〈저무는 가을〉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_ 전혜린 〈마지막 편지〉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_ 박정만 〈종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_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_ 이상 〈날개〉
새장에 갇힌 봉황 _ 굴원 〈회사〉
사부곡 _ 고성 이씨 〈편지〉
우정 _ 연암 박지원 〈경보에게〉
사랑 _ 미시마 유키오 《우국》

출판사 서평

동서고금 명문장의 치명적 유혹에 빠지다!
세상의 전설이 된 내 인생을 뒤흔든 세기의 문장들!

우리 시대 최고의 다독가이자 명문장가로 꼽히는 문학평론가이자 북 칼럼니스트, 소설가, 방송인,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장석주 시인이 청춘 시절부터 읽어 왔던, 동서고금의 보석 같은 명문장들을 엄선해 깊은 사유와 통찰을 덧붙인 《장석주의 문장 예찬 -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를 출간했다. 문학을 짝사랑하며 문학에 운명을 걸기로 결심했던 청년기부터의 독서 이력을 담은 것으로 근 40년 가깝게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도 닦는 명필가를 형성하게 한 피의 유전자와도 같은 주옥같은 명문장 해석 모음집이다. 특히 문학을 지향하고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수혜를 입었을 세계 문학 속 화룡점정들을 가려 뽑아, 수행하듯 살아온 시인의 내공이 물씬 풍기는 해박한 지식과 문사철로 이어지는 인문적 교양, 성찰의 기쁨을 선사하는 인생의 지혜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정화와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철학 인문서이자 잠언집이라 할 만한 감동과 울림이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밤에 이유 없이 웃고 있는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걷고 있다
정처도 없이 걷고 있는 사람은
내게로 오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_ 〈엄숙한 시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첫머리에 나오며 이 책의 제호가 되기도 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엄숙한 시간>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릴케는 전 세계 모든 문학인과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세기의 시인 중 한 명이다. 장석주 시인 또한 릴케의 그 유명한 《말테의 수기》를 읽으며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을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_《말테의 수기》

이 문장을 인용하며,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함께 아름다운 사유의 세계를 탁월한 철학적 해석을 담아 풀어낸다. 시인을 꿈꾸던 청년 시절에 『말테의 수기』를 읽었다. 내 마음은 불에 덴 것처럼 아팠다. 나는 시인 중에서 가장 하찮은 시인, 시인 중에서 가장 못난 시인이 될 것이란 직감이 번개처럼 내 마음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갔다. 나는 아마도 ‘사막의 눈 먼 사자들이 필사적으로 샘물을 찾는 것’(레온 블로이)처럼 시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과연 나는 그로부터 서른 해가 넘는 지금까지 시를 찾아 헤매고 있다. 나는 육조 혜능(慧能)의 길이 아니라 조주(趙州)의 길을 따를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다. 나는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겨 그것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니체의 어법을 빌리자면, 나는 내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그 사자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이 운명을 고요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릴케의 <엄숙한 시간>에 담긴 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 세상의 어느 하나도 저 혼자 고고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다. 만물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내가 가축 같이 비천하게 떠돌 때 저 먼 곳에서 수를 놓는 중국 소녀는 눈물을 흘린다. 내가 술에 취해 거리에 쓰러져 있을 때 저 먼 곳 마추비추 산정을 오르는 인디오 원주민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웃는다. 지금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울고 있는 것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길 잃은 자가 한밤중 굶주림과 추위로 홀로 땅에 엎어져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자신의 시 <엄숙한 시간>에 적는다.

명문장을 예찬하는 속에 저자 자신이 명문장가로 승화되는 놀라운 숙성의 시간!
“프랑스에 베르나르 피보가 있고, 일본에는 다치바나 다카시(《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저자) 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장석주 시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출판계에 회자되듯이, 3만 권의 장서가인 장석주 시인이 수많은 문장가들의 글에 감화 받아 문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젊은 시절, 귀신에 홀린 듯 밑줄 그어가며 애독한 책에서 시인의 심금을 진하게 긋고 지나간 명문장들을 가려 뽑아 자신의 감회를 섞어 우리 앞에 드러내었다. 장석주 시인 자신의 저작물만도 50여 권이 넘고 그중 대부분이 북리뷰 형식의 독서일기였던 것에 반해, 이번의 저서는 시인에게 있어 멘토이자 스승 역할을 한 고은 시인부터 비평의 스승인 가스통 바슐라르와 김현과의 영감, 문체에 대한 창작자의 정신을 일깨우는 모리스 블랑쇼,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들을 필사하던 시절의 추억, 노장 사상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도덕경》, 도저한 자의식과 천재성의 폭발로 비범한 삶을 살았던 동료 시인(기형도와 최승자)들과의 우정과 교감이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시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 숙명적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창작의 고통과 가난, 절대 고독의 경지를 즐겨야 하는 지혜 등을 심오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니체에서 들뢰즈를 지나 노자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소설, 시, 인문서, 역사서, 논쟁집, 에세이, 예술서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명문장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이후 그 문장이 어떻게 사람을 취하게 하였는가를 정연히 이야기한다.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문장에 대한 감각 역시 엄정하고 생생하며 정치하기 이를 데 없다.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문장 속의 작가와 충분히 교감하게 하면서 단 한 줄의 아름다운 폭력을 절감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도 읽어 보았을 책에서 그저 스쳐 지나간 문장들이 그의 시선 안에서는 어린왕자의 장미꽃처럼 의미가 되고 친구가 되고 놓칠 수 없는 반려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또 문장을 대하는 그의 시선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금 그의 생각의 흐름을 추적하게 된다.

시인은 이 책의 서문에서 책에 대한 자신의 향일(向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수많은 불행과 고통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거대한 책이다.
나는 책의 광야에서 헤매는 사람이다.
그 광야에서 굶고 또 굶었다.
나는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 수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방팔방에서 번뇌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감히 그 화살들을 꽃잎으로 바꿀 재주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굶주린 채 걷는 일이었다.
나는 종달새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고, 늑대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었다.
고맙다, 책들아!
책은 웃음, 천진함, 무, 다정한 저녁들, 텅 빈 충만, 대숲에 이는 바람의 직계直系다.

이제 이 책에서 우리는 시인이 “엄정하게 말하자면 책읽기에의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력은 퇴화하고 피안은 점점 멀어진다. 그래도 숨결 이어지는 동안에는 이 근면과 열등함을 유지하려 한다”고 고백하면서 관계해 온 그의 책읽기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
문장.인생.관조.사랑이라는 주제별 분류에 따라 총 4장 49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꼭지별 도입부엔 동서고금의 주옥같은 명문장을 발췌 소개한 후 그 문장의 작가 소개와 장석주 시인 본인과 그 책, 그 문장과의 추억이나 에피소드, 그리고 인생의 지혜와 깨달음, 인생의 의미 해석 등을 탁월한 필력을 바탕으로 방대하게 전수하고 있다.

1장 문장 _ 책읽기, 문장 강화, 문체 이야기 등 문학을 탐식하고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문학도로서의 자신의 지난 궤적과 함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가려 뽑았다. (릴케, 나탈리 골드버그, 모리스 블랑쇼, 최승자, 롤랑 바르트, 김현, 프란츠 카프카, 고은, 이덕무)

2장 인생 _ 알을 깨고 나오고자 하는 청년기의 몸부림부터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 등 시인이 펼쳐 보여 주는 삶의 명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지식의 숲을 거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헤르만 헤세, 폴 발레리, 엘리아스 카네티, 프리모 레비, 잉게보르크 바하만, 빈센트 밀레이, 알베르 카뮈, 헤밍웨이, 김정국, 실비아 플라스, 정약용, 함민복, 지오 폰티, 도연명, 김종삼)

3장 관조 _ 인생을 건너다볼 수 있는 나이나 상황, 자리라는 것은 그만한 대가가 내재해 있다. 희비애락의 다리를 건너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음에 대해 예시하고 있다.
(장 지오노, 가스통 바슐라르, 노자, 에크하르트 톨레, 다비드 르 브르통, 막스 피카르트, 니코스 카잔차키스, 니체, 다자이 오사무, 하이데거, 박용래)

4장 사랑 _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등 사랑이야말로 문학에서 영원한 생명의 샘이다. 외로움, 상처, 사랑의 몸부림의 명문장들이 시인의 눈에 띄는 순간 독자들에게 바이러스처럼 전파된다. (정호승, 기형도, 에밀 시오랑, 마쓰오 바쇼, 전혜린, 박정만 고정희, 이상, 굴원, 고성 이씨, 연암 박지원,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말 중에서
일자무식 선사 혜능慧能만이 내 스승이다. 혜능은 책 한 권 읽지 않고 단숨에 책의 바다를 건너갔다. 미천함을 딛고 미천함을 넘어간 것이다. 혜능은 스스로 피운 불길에 제 일자무식의 존재를 불태우고 재가 되었다. 혜능은 재가 된 다음에 재 속에서 새롭게 일어서 사람이다. 꿈같은 일이다. 책 앞에서 나는 굶주린 손님이었다. 늘 염치불구 허겁지겁이었다. 무슨 착오가 있었던가. 내 유산의 상속권을 박탈당한 채 굶주린 사람으로 나는 이 세상에 초대를 받았다. “굶주린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식사라도 음미하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 빵 한 조각과 고풍스런 만찬은 단지 배를 채워 준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그 때문에 까다로운 예술가는 굶주린 손님을 식사에 초대하지 않는다.”(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오로지 굶주림만이 내 번뇌력의 근원이고 내 여여(如如)함의 내역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들이 있다. 내가 읽은 책들과 내가 읽지 않은 책들. 내가 읽은 책들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산 책, 빌린 책, 훔친 책. 그 세 가지의 책들을 핥고, 물어뜯고, 씹고, 갈아 마셨다. 그것들은 내가 먹은 밥, 내가 마신 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덧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엄정하게 말하자면 책읽기에의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력의 퇴화, 그리고 피안은 점점 멀어진다. 그래도 숨결 이어지는 동안에는 이 근면과 열등함을 유지하려 한다."
_ 저자의 말 중에서

책속으로
……《도덕경》을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서울에서 안성으로 거처를 옮긴 뒤다. 생계의 버거움을 뒷전으로 밀쳐두고 벌과 나비가 꿀을 탐하듯 《도덕경》에 매달렸다. 거기에 살 길이라도 있는 듯 내 의지는 자못 삼엄하였다.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라고 했다. 물의 부드러움은 세상의 굳셈을 이긴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강한 것을 꺾는 데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나는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혼자 밥을 끓이며 조석(朝夕)으로 《도덕경》을 읽었는데, 내 기와 혈의 흐름은 순조로웠다. 큰 불만들을 내치지 않고 마음에 들여 대접하니 작은 불만 따위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뒤뜰에 심은 영산홍이 몇 번이나 피었다가 졌다. 그 붉은 영산홍 피었다 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중략) 나는 종일 물만 바라보며 세월을 보내고, 지천으로 돋아난 풀을 뜯어 소박한 밥을 먹었다. 가끔 혼자 산을 헤매고 다녔다. 산길을 헤매다 돌아온 날 밤에는 기절한 듯 쓰러져 깊은 잠이 들곤 했다. 나와 크게 어긋났던 세상을 향한 원망이 잦아들자 먼저 내 눈과 귀가 순해졌다. 지나간 시절의 내 실패와 비굴들은 더 이상 쓰라리지 않았다. 마음 안에 잡혔던 물집들이 아물고, 나는 보다 의연해졌다. 봄마다 돋는 풀들과 나뭇가지에 날아와 우는 새들이 고마웠다.
_ 180~181쪽, 3장-관조, <무위의 아름다움> 중

……모든 가치 있는 말들은 그 침묵에서 흘러나온다. 침묵은 말들이 태어나는 자궁이다. 침묵은 자궁을 가졌으니 말들을 낳는 어머니다. 피카르트에 의하면 침묵은 진리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움이고, 진리 그 자체다. 이 말은 어머니는 곧 진리라는 뜻이다. 침묵을 머금지 않은 말들이란 비천하고 뜻 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말들을 소음에서 구해 내는 것은 그 말들이 담고 있는 진리성이다.
_ 196쪽, 3장-관조, <침묵> 중

……외로움의 본질은 타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자기 안의 충만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자기를 바라봄이다. 외로움(Einsam)이라는 독일어는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외로움은 사람의 바다에서 무리에 종속되지 않고 저 스스로 자의식의 주체로 꿋꿋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감정이다. (중략) 사람은 늘 자기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체내 시계가 끊이지 않고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는 존재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자기 스스로 고향이 되어 거기에서 안식을 취하라. 외로움에 실존의 뿌리를 내리고 정주하는 ‘있음의 고토(故土)’, 즉 이상향으로 가꾸라. 그때 외로움은 존재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라 자기 안의 충만, 허무와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_ 240~241쪽, 4장-사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

 

 

[책과 삶]“백석 시는 마음 달래는 요리”

경향신문 | 2009-12-04 17:33:14

▲백석의 맛…소래섭 | 프로네시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시인 백석은 시 '선우사(膳友辭)'에서 흰밥과 가재미를 혼자만의 쓸쓸한 식사에 함께 해주는 친구라 부른다. '선우'는 '반찬 친구'라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 소래섭은 백석이 반찬이 되는 동식물을 친구로 호명할 정도로 음식과 맛에 천착해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는 서문에서부터 "백석 시는 마음을 달래는 요리"라고 말문을 연다.

이 책은 '월북 시인'으로 낙인찍혀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백석의 시를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끈질기게 연구한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각색한 것이다. 저자는 7편의 시에 쓰인 메밀국수, 청배, 가재미, 수박씨와 호박씨, 무이징게국, 달재 생선, 떡국 등 토속적이고 평범한 음식을 소개한다.

책을 읽다보면 음식과 맛을 둘러싼 사유와 읽을거리가 이토록 흥미롭고 다양하다는 사실에 다소 놀라게 된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삶을 같이하는 어떤 존재인 '국수', 성문의 하늘빛과도 같이 신성한 정신을 표상한 '청배', 세상 모든 것을 외면하고 가난해져야 하는 순간에도 높고 굳센 마음을 유지하도록 소망케 하는 꼿꼿이 지진 '달재 생선'….

백석은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차원이 아니라 문화와 삶을 머금은 존재임을 시 속에 오롯이 녹여냈고, 저자는 시 속에서 그 깊은 성찰과 사유를 맛깔나게 읽어낸다. 저자는 "백석이야말로 근대 문명이 도입된 이래 불과 얼마 전까지 음식에 관해 가장 깊은 사유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 밖에 백석의 여행과 사랑 등의 이야기를 담은 '백석여담', 1920∼1930년대 음식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한 '음식소사'도 이 책의 또다른 재미다. 음식이 단지 허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소비와 쾌락의 대상이 된 오늘날, 백석의 시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는 우리의 허기진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1만3000원

< 이고은기자 freetr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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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성격의 탄생’…성격 알고보니 유전

헤럴드경제 | 2009-11-26 13:22:32

성격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결정적 기회를 잡지 못하는 등 손해를 본다고 여기며, 외향적인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성격심리 책들을 들춰보며 조직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진화학자이자 '행복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대니얼 네틀에 따르면 근본적인 성격은 바꿀 수 없다. 성격은 유전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윈의 갈라파고스의 핀터 새 부리를 예로 들면서 성격이 자연선택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즉, 부리가 두꺼운 유전자 변형체를 갖고 태어난 핀치가 그 섬에 더 적합할 경우 자연선택이 그 유전자 변이를 키질해 그 개체 수는 계속 증가하지만 다른 개체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자연선택의 이런 키질효과는 유전적 차이의 다양성을 감소시켜야 마땅하지만 갈라파고스의 핀치 부리는 여전히 다양하다.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떤 해에는 최적의 크기였던 부리가 다른 해에는 최적의 부리가 되지 못해 비일관성을 보이기 때문에 한 가지 타입으로 수렴되지 않고 유전적 차이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니얼은 '성격의 탄생'(와이즈북)에서 한 개인이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을 모아 성격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즉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 등 5가지로 이들 각각의 유형은 하위 개별행동들에 대해 공통된 뇌회로를 형성한다. 가령 섹스나 여행, 사교활동, 경쟁심 같은 일련의 심리활동은 서로 느슨하게 어우러지면서 외향적 성격을 이루는데 이들은 모두 동일한 뇌의 보상회로와 연결돼 있다. 즉, 뇌의 동일한 보상회로가 아름다운 얼굴, 돈, 음식에 공통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모험, 섹스, 유혹, 사교 등에 대한 우리의 복잡한 심리는 종족보존에 유리한 것을 택하도록 한 훨씬 원초적인 메커니즘, 자연 선택의 결과인 셈이다.

성실한 성격도 마찬가지다. 성실성은 직업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은데 이는 확률상의 얘기가 아니라 유전적 결과다.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성격의 유형별 특징과 다른 성격과의 관련성 등을 흥미롭게 제시한다.

사이코패스와 훌륭한 공감자를 가르는 친화성과 공감능력, 성실맨과 알코올 중독자를 가르는 절제와 충동적 성향, 개방적 기질에 따른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에 대한 탐색과정을 보면 결국 성격차이는 뇌 기능의 차이로 나타난다.

성격이 유전된다면 환경의 영향은 어떤가. 저자는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양육과 가족,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형제 서열, 태아환경, 키, 몸매, 매력, 지능 등의 육체적 특징이 성격형성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폭넓게 다룬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가족환경이나 가족관계가 성격형성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우울증과 이혼을 겪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똑같이 우울증과 이혼을 겪기 쉬운데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애당초 그런 유전자를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형제 서열 등 다른 요소들도 성격과 상관성이 미미하거나 없다.

그렇다면 성격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얘기인가. 근본적인 성격은 바꿀 수 없지만 자신의 성격을 표현하는 행동과 자신의 삶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는 바꿀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즉, 행동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성격이 가진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다. 예컨대 외향적인 사람의 경우,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을 택함으로써 장점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성격에 역행하는 행동이나 취미를 통해 단점을 최소화하는 식이다.

성격결정론은 다소 비관적 전망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성격을 알면 인생의 방향을 조절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자신을 아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성격에는 혜택(장점)과 비용(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좋은 성격이란 없으며 결국 인생이란 자신의 성격에 맞는 틈새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말도 이런 맥락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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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최초·최장수 브랜드 '활명수' 톺아봐〈〉

예종석 지음/리더스북·1만3000원

 

"아, 드디어 사랑하는 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의 그날이 왔건만 난 어찌하여 미련하게 과음 과식을 하였단 말이냐?/ 아이고 배야!/ 그러나 여기 활명수가 있는 것이었으니 시원하고도 뒤가 깨끗하구나./ 아 잊으랴 잊을쏘냐?/ 배 아픈 데 활명수, 부채표 활명수!" 1960년대 말 동화약품이 텔레비전에 내보낸 '부채표 활명수' 광고다. 속이 더부룩할 때 '까스활명수' 한번 안 찾아본 이 없을 것이다. 예전엔 콜라·사이다보다 더 맛있는 '청량음료'이기도 했다. 활명수의 인지도가 97.9%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글을 뗀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장수 브랜드인 활명수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 나왔다. 예종석 교수(한양대 경영대학장)가 낸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은 경영학으로 톺아본 활명수 이야기다.

지은이는 궁중 비방에서 탄생한 활명수가 시대를 앞선 경영에 힘입어 '히트 상품'이 된 계기부터 일제 말기, 한국전쟁, 5·16 쿠데타 등 한국사의 곡절을 거치며 겪은 역정을 10개의 장으로 나눠 살폈다. 장마다 '활명수 경영 레슨' 꼭지도 덧붙여, 읽는 이들이 생각을 가지런히 다듬도록 도왔다.

"오늘의 험난한 기업 환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경영자들이 한 세기 전의 선조에게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온고지신이다. 112년간 80억병이 넘게 팔리며 사람들의 속을 다스린 활명수에 비춰 회사 경영,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우자는 말이다.

활명수는 조선 말 선전관(왕명의 출납을 맡은 무관)을 지낸 노천 민병호가 궁중 비방을 변형해 만든 약품이다. 창업 연도는 1897년으로, 아스피린보다 2년 이르다. 당시 가장 흔한 병이 위장장애(소화불량)였고 치료가 지금처럼 수월하지 못했으니, 목숨을 살린다는 뜻의 활명(活命)이 지나친 이름은 아닌 셈이다. 전통 한약재와 수입 약재를 섞고 멘톨(박하뇌)을 넣어 독특한 풍미를 입힌 활명수는 탕약을 달이는 번거로움을 없애 곧바로 큰 호응을 얻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부채표라는 이름도 큰 몫을 했다. <시경>의 '지죽상합 생기청풍'(紙竹相合 生氣淸風)에서 따온 말로,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만나니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활명수는 당시 조선에 분 '의약품의 새바람'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부채표와 활명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패가 된다.

지은이가 보기에, 활명수가 걸어온 길은 경영의 각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선구적이다. 강력한 브랜드 네임·마크를 통한 차별화, 초기의 고가 전략으로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은 점, 각 지역의 유지들로 튼튼한 유통망을 꾸린 것, 지점·특약점을 통해서만 제품을 공급해 중간상인의 이익을 보호한 영업 전략, 과감한 광고와 판촉으로 거둔 시너지 효과, 당시에 부족했던 생필품 등을 함께 공급한 사업 다각화, 공익성 경품 행사로 한 학교에 재정을 후원한 사회공헌활동 등 100년 전에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창의적이고 정교하다. 일찌감치 사규를 만들고 사원 복지를 체계화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활명수의 동화약품이 빛나는 지점은 민족기업의 면모다.

창업주 민병호의 아들 민강은 일제강점기 대동청년당을 중심으로 상해 임시정부와 비밀리에 연락하며 군자금과 정보를 대는 몫을 맡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순화동)에 약방으로 위장한 연통부를 만들기도 했다.(연통부가 있던 순화동 터는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생가가 있던 곳이며, 서울시는 1995년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런 일로 '불령선인'이 된 그는 여러 차례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끝내 48살의 이른 나이에 숨지고 만다.

사정이 이러해 경영 위기에 놓인 회사를 구한 이가 보당 윤창식이다. 그 역시 조선산직장려계·보린회를 이끌며 물산장려와 빈민구휼에 앞장선 애국지사였다. 동화약품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덕망과 능력을 두루 갖춘 윤창식에게 회사 인수를 제의한다. 이로써 1937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수·합병(M&A)이 성사된다. 이후에도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1930~40년대 전시경제의 극심한 물자 부족과 탄압에서도 살아남은 생명력이 곡진하다. 탁발한 리더십의 결실이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요컨대 지은이가 가리키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다. 활명수의 112년 역사를 일군 '사람들'의 지혜에 주목할 때 '장애'를 겪는 기업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훌륭한 리더의 덕목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결과가 나쁠 때는 창밖이 아니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라." 물감어수 감어인(勿鑒於水 鑒於人), 맑았다 흐렸다 하는 물이 아니라 한결같이 올곧고 어진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라는 교훈이 담겼다. 경영자에겐 '활명수'가 그러하겠다.

전진식 기자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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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동화약방의 역사·경영철학은…

한국일보 | 2009-12-04 17:45:18

[화제의 책]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예종석 지음, 리더스북 펴냄
브랜드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시대다. 코카콜라ㆍ맥도날드ㆍ디즈니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가치는 부동산과 금융 자산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에도 삼성ㆍLGㆍ현대차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날이야 브랜드의 중요성이 당연시되지만 100여년 전에는 지금과 사정이 크게 달랐다. 국내에서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반세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112년 전에 동화약방이 소화제 '활명수'를 내놓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만 해도 브랜드라는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양대학교 경영대 교수이자 경제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활명수'라는 브랜드에 숨겨져 있는 브랜드 역사와 경영철학을 흥미로운 방법으로 풀어낸다.

오늘날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은 1897년 국내 제1호 브랜드인 '활명수'를 개발해 시장에 시판하기 시작했다. 한말 궁중의 선전관(宣傳官)이었던 민병호 선생은 평소 의약에 대한 관심 많아 전의(典醫)들과 교류하면서 궁중 비방을 습득해 이를 서양 의약과 결합해 활명수를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활명수는 설렁탕 2그릇 가격에 해당하는 고가 전략을 구사해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며 성공을 거둔다. 오늘날 가격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값인데도 불티나게 팔렸던 배경에는 '궁중 비방'이라는 마케팅 전략이 깔려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가 전략이 '궁중 비방'이라는 신화와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적중했던 것.

브랜드에 대한 동화약방의 선구자적인 면모도 눈길을 끈다. 1910년 8월15일 '부채표'를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로 등록했고, 1919년 활명수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활명액'이라는 유사상표를 방어용으로 등록했을 정도로 브랜드에 대한 높은 인식을 보여줬다.

동화약방은 창립자인 민병호 선생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후 경영 상황이 나빠지며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민 사장이 돌연 사망하면서 회사는 큰 위기에 직면해 활명수는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하지만 민족주의 기업인 보당 윤창식 선생이 1937년 회사를 인수하면서 회사는 대전환을 맞는다. 윤창식 선생은 기업 인수 이후 여성 지점장을 만주 지역에 임명해 진출하며 해외 사업의 초석을 닦는 등 탁월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보당은 74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매출과 당기순 이익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며 동화약품을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세로 이어진 경영은 순조롭게 이어져 기업을 더욱 탄탄하게 해 활명수를 포함해 헬민ㆍ알프스디ㆍ홈키파ㆍ후시딘 같은 효자 상품을 내놓으며 입지를 굳혔다.

한편 저자는 각 장의 말미에 '활명수 경영 레슨'이라는 코너를 마련해 활명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독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한다. 1만3,000원

안길수기자 coolass@sed.co.kr